‘자살’ 군인도 국가유공자 인정…직무수행과 인과관계 조건
‘자살’ 군인도 국가유공자 인정…직무수행과 인과관계 조건
  • 표민혁 기자
  • 승인 2012.06.1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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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혁 기자] 군 복무 중 장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도 교육훈련이나 직무수행과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자살이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이면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에 해당해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된다거나, 또는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삶을 포기할 정도에 이른 상태에서의 자살이 아닌 한 국가유공자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 사건개요 J씨는 1998년 5월 공군에 입대해 항공기 기체정비병으로 근무하던 중 1999년 4월 중대내무반 지하화장실 출입문 문틀 가로대에 군용허리띠로 목을 매고 숨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이에 J씨의 모친인 A(59)씨는 순직군경에 해당한다며 대구지방보훈청장에게 국가유공자 유족등록신청을 했지만, J씨의 자살은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자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인 대구지법은 A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인 대구고법은 “망인의 자살은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이후 A씨는 2006년 4월 군의문사진상위원회에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줄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위원회는 2008년 12월 “망인은 지휘관의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임병들의 상습적인 구타, 가혹행위, 욕설 등 언어폭력과 부대원들에 의한 집단적인 따돌림, 중대장과 선임병 등의 위법한 지시에 따른 대리시험 발각 등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와 인격침해를 받아 사망하게 됐다”면서 국방부장관에게 재심의를 요청했다. 이에 A씨는 2009년 2월 대구지방보훈청에 군의문사진상위원회의 결정문을 추가 자료로 제출하면서 다시 국가유공자 유족등록신청을 했지만 “위 결정문은 법원 판결 내용을 변경할 만한 요건 변동 사유로 볼 수 없다”며 또다시 등록을 거부당했다. 그러자 A씨는 다시 소송을 냈다. A씨는 “망인이 소속된 부대는 엄격한 군기강 확립을 위해 강도 높은 ‘군차려’가 실시됐고, 업무 특성상 일과 관련된 구타 등의 가혹행위와 고참들의 질책이 많아 망인이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고, 더욱이 선임병들로부터 상습ㆍ지속적으로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했고, 후임병들로부터도 무시당해 인격적 모멸감, 좌절감, 무력감 등을 느끼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망인은 이러한 심리적인 고통을 겪던 중 부득이하게 장병학술평가에 선임병을 대리해 응시하다가 적발돼 후임병들이 보는 앞에서 시험감독관에게 욕설과 구타를 당했고, 이후 대리시험 발각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 중대원들에 대한 죄책감, 불안감 등으로 인해 정신질환에 준하는 심리적 공황 상태에 이른 나머지 정신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됐으므로 자해행위로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1심인 대구지법은 2010년 6월 A씨가 대구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요건비해당결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고, 항소심인 대구고법도 2010년 11월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의하더라도 망인이 소속된 중대에서의 구타나 가혹행위, 집단따돌림의 정도가 망인이 도저히 수인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대리응시 행위로 망인에게 가해질 상급자들의 질책이나 시험감독관의 망인에 대한 처분의 정도 역시 통상의 군인이라면 충분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것으로 보여 위와 같은 스트레스 및 정신적 부담감이 망인에게 우울증 등으로 인한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삶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에 이른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망인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망인을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가혹행위 등과 자살행위의 시기, 망인이 자살하기 전에 남긴 유서 내용과 그로부터 짐작할 수 있는 망인의 정신상태 및 심리상태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망인의 자살은 나약한 성격으로 인한 것이기는 하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으로 보일 뿐, 그것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정신적 스트레스 및 부담감 등으로 인해 정상적이고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 따라서 망인의 사망은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 종전 대법원 판례 변경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18일 항공기 기체 정비병으로 근무하다 자살한 J씨의 모친 A씨가 대구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요건비해당결정처분 취소소송 상고심(2010두27363)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군인이 군 복무 중 자살로 인해 사망한 경우,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데도 그 사망이 자살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자유로운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의 자살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와 달리, 군인의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자살로 인한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살이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이면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에 해당해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된다거나 또는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삶을 포기할 정도에 이른 상태에서의 자살이 아닌 한 국가유공자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취지의 종전 대법원 판례는 이번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안에서 모두 변경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자행행위로 인한 사망’에 관한 해석ㆍ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망인의 자살이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자유로운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한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에 해당하고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에 해당하기만 하면 국가유공자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법리를 전제로 판단하고, 망인의 직무수행과 자살로 인한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심리ㆍ판단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며 파기환송 이유를 설명했다. ◈ 전수안 대법관 “군인 자살을 개인 의지박약이나 나약함 탓으로 돌리면 안 돼” 전수안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군인이 선임병 등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거나 직무상 스트레스나 과로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기도 하고, 군대라는 특수한 여건 때문에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거나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이를 호소하거나 적절히 진단받고 치료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자살하기도 하는 일이 현실로 존재하는 한 이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군대 내 자살에 대해서도 그것을 개인의 의지박약이나 나약함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며 유가족에 대한 적절한 위로와 보상은 국가의 책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군입대자 대부분이 18~25세 사이의 젊은이로서 청소년기에서 성년기로 이행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있다는 점과 현재와 같은 징병제 하에서 군 복무 여부를 본인의 의사에 따라 선택하거나 개인의 적성에 따라 복무의 종류와 강도를 달리하지는 못한다는 점, 군사 목적의 효율적 훈련과 교육을 위한 군대 내 고유한 지휘체계 내지 계급제 등의 특수성, 친구들과 사회ㆍ가정으로부터 격리돼 일체의 생활을 부대 내에서 하게 되는 과정에서 개인에 따라 적응의 정도와 적응기간에 차이가 있고 특히 입대 초기의 적응단계에서 정서장애, 행동장애 등을 겪을 수가 있으며, 실제로 군대 내 자살자의 대부분이 사병으로 그 중에도 이병과 일병의 비율이 높은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안대희ㆍ양창수ㆍ민일영 대법관 “자살한 군인은 국가유공자 인정해선 안 돼” 반면 안대희ㆍ양창수ㆍ민일영 대법관은 “국가유공자법이 순직군인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취지는 군인이 국군의 사명인 국가의 안정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에 국가를 위한 그의 희생과 공헌의 정도에 상응해 그에 대한 보상을 하려는데 있다”며 “군인이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자살한 경우는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그런 군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보상하는 것은 법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어 “비록 작년 9월 국가유공자 제외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가 삭제되긴 했으나, 이는 별론으로 하고 적어도 개정 전에는 국가유공자법이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를 제외사유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었던 이상 그런 국가유공자법 하에서는 자살한 군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6항 제4호는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의 경우를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않는 사유로 규정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9월 법이 개정됐다. 자해행위자를 국가유공자 지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 법률은 7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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