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아내’ 살해 의사 징역 20년…대법원은 ‘무죄’ 왜?
‘만삭 아내’ 살해 의사 징역 20년…대법원은 ‘무죄’ 왜?
  • 표민혁 기자
  • 승인 2012.06.2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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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혁 기자] 만삭인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던 의사에 대해 대법원은 “법관이 유죄의 확신을 가질 만한 살해의 증거가 부족하다”며 사실상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유명대학 병원 의사 A(32)씨가 지난해 1월14일 새벽 서울 마포구 도화동 자신의 집에서 아내 B씨와 다투던 중 격분해 만삭인 아내의 목을 졸라 질식으로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기소했다. B씨와는 6년 연애 끝에 결혼했고, B씨는 당시 임신 9개월의 만삭이었다. 1심인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한병의 부장판사)는 2011년 9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에게 “피해자의 사망원인은 목 눌림에 의한 질식사인 액사이고, 피해자는 피고인이 집을 나가기 전에 피고인에 의해 액사당했다고 충분히 인정된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범행을 부인하는 A씨는 “살인에 대한 직접증거 없이, 의심의 여지가 많은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반면 검사는 “피고인이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보인 태도 등에 비춰 보면 1심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각각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6형사부(재판장 이태종 부장판사)는 2011년 12월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 형량을 유지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의사인 피고인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해 출산을 한 달 남짓 앞둔 아내를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해 태아까지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서 비난가능성이 매우 큰 점, 그럼에도 피고인은 사건 직후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고 밝혔다. 또 “사건 이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애도를 표하거나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등의 행위를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 대한 방어에만 몰두해 있다”면서 “피고인의 범행에 부합하는 수많은 간접사실과 정황에도 불구하고 합리성이 결여된 변명만하고 있어 개전의 정히 현저히 부족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죄질 및 정상이 매우 무거워서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그러자 A씨는 “사체에서 액사(목 눌림에 의한 질식사)의 경우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액흔이 발견되지 않았고, 사체에서 발견된 뒤통수부위의 상처, 멍, 사망 후 발견될 당시 피해자가 취한 자세 등에 비춰 볼 때 사망원인은 액사가 아니라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라며 상고했다. ◈ 대법원은 왜 무죄 취지로 유죄 원심 뒤집었나? 대법원 제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 28일 만삭의 부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의사 A(32)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공소사실이 인정되려면 사망원인이 단순한 질식사가 아닌 액사라는 점이 확정돼야 하는데, 피해자는 사망 후 매우 특이한 상태로 발견됐다”며 “당시 자세가 피해자의 오른쪽 목 부위에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었을 것임은 분명하고, 이로 인해 질식사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은 검찰이 신청한 증인(이윤성 서울대 법의학 교수, 최영수 국과수 수석법의관)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피해자의 사망원인인 질식상태가 사체 발견 당시의 이상자세가 아닌 그보다 선행하는 다른 원인, 즉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조른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의 소견이 관찰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외에 액사에서만 특유하게 발생되는 소견이 확인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사체를 부검한 부검의가 어떤 것을 유력한 사망원인으로 지시한다고 해 그 밖의 사인이 존재할 가능성을 가볍게 배제해서는 안 되고, 특히 형사재판에서 부검의 소견에 의지해 유죄를 인정하려면 다른 가능한 사망원인을 모두 배제하기 위한 치밀한 논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목 부위의 피부까짐이 최초 사체 검안 당시 존재했더라도, 해당 부위가 목이 접히는 부분이라면 타인의 손눌림에 의한 손상이 아닌 피해자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질식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 “피해자 뒤통수 부위 외부 상처와 피를 흘린 자국이 사체가 발견된 욕조에서 발견된 점 등에 비춰 설령 내부출혈이 외력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사망 직전 욕조에 넘어지는 과정에서 어딘가에 부딪힌 결과일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고, 피해자의 얼굴에 난 여러 상처와 멍이 설령 피고인의 가격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망원인인 질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원심은 피해자의 병력이나 건강상태 등을 볼 때 욕실 내에서 실신해 넘어졌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하고 있으나, 임신 중인 여성 5%가 실신을 경험하고 28%가 실신과 근접한 경험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고, 이에 대해 피해자는 과거 갑상선 중독증으로 치료받은 병력이 있는데다가 부검결과 감상선염을 앓고 있었음이 밝혀졌다”며 “이런 임신이나 갑상선 기능 이상 등은 모두 갑작스런 심장기능의 저하나 실신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사체가 발견된 장소도 욕실인 점까지 고려하면 당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 작용으로 피해자가 실신하거나 낙상을 입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입은 머리 부위의 충격과 무력감 등으로 경부압박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질식사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살해동기에 대해서도 “원심은 전문의자격시험이 어렵게 출제돼 합격 여부나 수도권에서의 군의관 근무 여부가 불투명하게 됐고, 피고인이 평소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 있었던 점 등으로 인해 아내와 다툴 여지가 있었고, 그런 다툼 끝에 순간적으로 격분해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할 만한 동기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으나, 그런 사정은 부부 다툼의 동기가 될 수 있을지언정 살인의 동기로서는 매우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건 당일이나 그 이후에 제3자가 보기에 상당히 의심스러운 태도와 행적을 보이고 있음은 원심이 지적하는 바와 같고, 피고인이 제기한 사망원인인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가 피해자의 사체에 대한 부검결과에 나타난 모든 소견을 완벽하게 설명해 준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는 이상 피고인이 의문점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고 해서 객관적 증거에 이에 기초한 치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 살인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의 쟁점인 피해자의 사망이 액사인지 여부와 범인이 피고인인지 여부에 관해 치밀한 검증 없이 여러 의문점이 있는 소견이나 자료들에게만 의존해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봐 유죄로 인정했으니, 이런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입증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거나 논리를 비약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채증법칙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며 “따라서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법원으로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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