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에서> 변정숙 '폭 풍'
폭 풍
변정숙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낯을 가리고
가까이 아주 가까이
우리 곁으로 내려온 날
막무가내의 바람이
서슬 퍼런 갈기를 펄럭이면서 달려왔다
바다를 할퀴고 왔는지
사나운 갈기에서 소금냄새가 났고
성난 파도 소리도 났다
사람들은
견고한 문 뒤로 숨어들었고
더러는 바람보다 빨리 도시를 빠져나갔다
달아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길 위에 서 있는 나무와
앞집과 뒷집 우리의 울타리들은
막무가내의 포악에
상한 짐승 같이 넘어지고 허물어졌다
시계가 멈춘 것인가
광분한 바람의 무리는 떠나지 않고
부숴야 할 것이 더 있다는 듯
문밖을 휘젓고 있다
나는
바람이 조용해 질 때까지
거미 같이 엎드려서
초침이 가는 소리를 듣는다
달팽이보다 느리게 가는 시간
검은 하늘같이 어둡다
광란의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부서진 담장은 더 견고하고 아름답게 세울 것이고
나무는 허리가 부러진 자리에 무성한
초록 잎새를 피울 것이고
시계는 다시 제 속도를 찾아 달릴 것이고
바람은
뻔뻔한 얼굴로 순하게 불어올 것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변정숙 프로필 /창조문학 등단, 美國 동부문인협회 회원, 문학동인 글마 루 회원 현 N.Y 거주, jungsook.byun@gmail.com
< 저작권자 © 에브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기사제보 : 편집국(02-786-6666),everynews@everynews.co.kr >
저작권자 © 에브리뉴스 Every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에브리뉴스 EveryNews에서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받습니다.
이메일: everynews@kakao.com
에브리뉴스 EveryNews에서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받습니다.
이메일: everynews@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