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뻔뻔한 얼굴로 순하게 불어올 것이다"
[時]"뻔뻔한 얼굴로 순하게 불어올 것이다"
  • 시인 변정숙
  • 승인 2012.11.13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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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에서> 변정숙 '폭 풍'

시인 변정숙

 

 

 

 

 

폭 풍

변정숙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낯을 가리고

가까이 아주 가까이

우리 곁으로 내려온 날

막무가내의 바람이

서슬 퍼런 갈기를 펄럭이면서 달려왔다

바다를 할퀴고 왔는지
사나운 갈기에서 소금냄새가 났고

성난 파도 소리도 났다

사람들은

견고한 문 뒤로 숨어들었고

더러는 바람보다 빨리 도시를 빠져나갔다

달아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길 위에 서 있는 나무와

앞집과 뒷집 우리의 울타리들은

막무가내의 포악에
상한 짐승 같이 넘어지고 허물어졌다

시계가 멈춘 것인가

광분한 바람의 무리는 떠나지 않고

부숴야 할 것이 더 있다는 듯

문밖을 휘젓고 있다

나는

바람이 조용해 질 때까지

거미 같이 엎드려서

초침이 가는 소리를 듣는다

달팽이보다 느리게 가는 시간

검은 하늘같이 어둡다

광란의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부서진 담장은 더 견고하고 아름답게 세울 것이고

나무는 허리가 부러진 자리에 무성한
초록 잎새를 피울 것이고

시계는 다시 제 속도를 찾아 달릴 것이고

바람은

뻔뻔한 얼굴로 순하게 불어올 것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변정숙 프로필 /창조문학 등단, 美國 동부문인협회 회원, 문학동인 글마 루 회원 현 N.Y 거주, jungsook.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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