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선거사-10> 제4대 국회의원 선거-2
<대한민국 선거사-10> 제4대 국회의원 선거-2
  • S. doctor 김
  • 승인 2012.11.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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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국회의원 선거-2

보안법파동 
 
제4대 총선 결과를 주시하던 자유당은 부정선거에 대한 야당과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한 점을 들어 차기에 전개될 대통령 선거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 연유로 제4대 대통령 선거 준비 단계로 야당과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공안 정국 조성을 위한 법 개정을 선택한다. 

결국 후에, 1960년에 실시되는 3· 15 부정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이어 4· 19 혁명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데 주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일어났기 때문에 (신)국가보안법파동, 또 12월 24일 이루어졌다 해서 2.4정치파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8년 8월 여당인 자유당이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한다. 이에 야당인 민주당은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이 법이 야당 탄압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라 주장하며 강력히 반대하며 ‘국가보안법 개악 반대투쟁’을 병행했다.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자유당이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을 통제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하는 법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보안법 적용대상의 확대, 이적행위 개념의 확대, 정부나 국가를 변란에 빠뜨릴 목적으로 구성된 결사 또는 집단의 지령을 받고 그 이익을 위하여 선전· 선동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의 신설, 군인 및 공무원의 선동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의 신설, 헌법상 기관의 명예훼손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의 신설, 사법경찰관 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및 구속기간 연장 가능, 군 정보기관의 간첩수사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 등』
 
또한 정부는 이 외에도 11월 8일 허위사실을 적시·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적시· 유포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을 추가하였다. 그러자 이 법안은 언론자유와 인권보장을 침해하는 악법이라는 강력한 반대가 있었다. 이에 자유당은 12월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단독으로 개정 법안을 통과시켜 본회의에 회부했다.

이와 관련하여 11월 27일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85명이 보안법 개악 반대투쟁 선언문에 서명하고 포도주로 맹약을 나누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12월  24일 국회 부의장인 자유당의 한희석은 경위권을 행사하여 3백여 명의 무술경위들을 동원, 농성의원들을 끌어내고 자유당 단독으로 30분 만에 국가보안법 개정안· 지방자치법 개정안·  예산안· 각종 세법 등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보안법이 통과되자마자 모란봉망 간첩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박호련· 박선철· 임영찬· 박종린 등이 공작금 6만 불을 가지고 현역 군인인 배상록· 곽위신 등을 포섭하여, 남한에 정치기반을 구축하려다 적발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건의 주모자급인 박선철이 민주당 창당 시 훈련부 차장이었다는 점을 들어 서울지검에서 민주당의 한근조 의원과 민주당 창당 시 총무부장이었고 민주당 핵심지도부로서 선거 운동을 지휘하고 있던 홍익표를 소환하는 일이 발생했다. 

모란봉망 간첩사건은 민주당의 약진을 저지하기 위한 책략이었음이 후일 밝혀진다. 1962년 7월 29일 동아일보의 기사다.

‘서울지법은 간첩모의로 구속되었다가 1961년 2월 17일 무죄가 확정된 박선철, 곽효신, 한상협 씨 3인에게 국가는 하루 80원 씩 계산하여 형사보상금을 지불키로 결정했다.’

3.15 부정선거

1960년 3월 15일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를 의미한다. 선거 도중 민주당의 조병옥 후보가 사망함으로써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 되나 이 선거는 부정선거로 밝혀져 결국 무효 처리된다.

자유당은 4년 전 실시된 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 후보가 민주당의 장면 후보에게 패하고 제4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민주당의 약진에 초조한 나머지, 1959년 6월 29일 서둘러서 대통령 후보 이승만· 부통령 후보 이기붕 체제를 구축하고 선거에 임한다.

반면에 민주당은 신파와 구파 간의 갈등으로 인해 극심한 내홍을 거치다가 우여곡절 끝에 자유당보다 5개월 늦은 11월 26일 정· 부통령 후보 지명대회를 열어 구파인 조병옥이 대통령 후보로 신파인 장면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다.

자유당과 민주당이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임하는 중에 민주당은 지난 4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이 한창 선거유세에 매진하던 도중 발병,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조병옥이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자 자유당은 1960년 5월 중에 실시하기로 되어있는 정· 부통령 선거를 2개월 앞당겨 3월 15일 실시한다고 공고하였다. 다분히 의도적인 일로 마치 그를 예견했다는 듯 조병옥 후보는 미국 육군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선거가 한 달 남은 2월 15일 심장마비를 일으켜 유명을 달리한다.

자동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의 자유당은 당시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승계하도록 한 점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86세의 고령인 점을 들어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선거에 몰입한다.

공무원을 통해 선거운동망을 조직하고, 전국경찰을 동원하여 선거운동을 감시 독려하며 또 정치 깡패를 동원하여 선거운동을 실시하는 등 자유당의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 선거는 극에 달한다.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러 전남 여수와 광산에서 민주당 간부가 구타ㆍ살해당하는 사건을 비롯하여 전국 도처에서 폭력이 난무한다. 선거인 명부를 조작함은 물론 선거 전날인 3월 14일에는 모든 선거함에 이승만과 이기붕이 찍혀 있는 위조 투표지를 무더기로 집어넣기도 했다.

특히 투표 당일에는 돈을 살포하여 투표를 유도하고 한 사람이 투표지를 20장까지 가져가는 등의 조작 행위를 저질렀다. 또한 자유당 당원들이 기표소까지 들어가 감시하고 야당인 민주당 선거 관리인을 투표소에서 쫓아내고 공개 투표와 사전 투표 등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이 이루어진다.

개표 과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조작으로 인해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표가 10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 보고를 접한, 부정 선거를 지휘하던 내무부 장관인 최인규와 치안국장인 이강학 등은 경비전화로 득표율을 조정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투표 당일 마산에서 민주당 마산시당부가 선거 포기를 선언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마산에서의 부정 선거는 극을 달렸다. 사전에 이미 4할에 이르는 투표가 실시되고 3 - 4인조를 이루어 공개투표를 실시하는 등의 상황이 연출된 데 따른 조처였다.

선거 포기를 선언한 민주당 당원들과 시민들은 부정선거에 따른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에 수천 명의 시민들이 동조하여 마산 시청을 비롯하여 마산 일대에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자 최인규 내무부 장관의 강경 진압을 지시로 경찰이 무차별 발포를 감행 8명이 죽고 수십 명의 부상자 또 수백에 이르는 시민들이 체포 구금되기에 이른다.

4.19 혁명

마산에서 발생한 부정선거에 대한 시위를 강경 진압하자 마산 시민들의 분노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에 이승만은 결국 3월 18일, 내무부장관 최인규와 치안국장 이강학을 마산사건의 책임을 물어 사임시키고 내무부장관을 홍진기로 교체· 임명하는 등 정국을 수습하고자 하였다.

그런 과정에 4월 11일 시위 당시 행방불명되었던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 군의 시신이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이어 김 군에 대한 검시가 이루어졌는데, 검시 결과가 발표되지 않고 있었다.

이에 성난 시민들이 병원으로 들어가 김 군의 눈에서 뒷머리까지 최루탄이 박혀 있는 시신을 확인하게 되고 이에 분노한 마산 시민들이 다시 시위를 시작, 근 3만 명에 이르는 시위대들이 마산시청· 마산경찰서· 창원군청 앞에서 시위를 거듭하며 다시 경찰과 대치 중 경찰의 발포로 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김주열 군 시체 인양으로 마산에서 시작된 의거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3.15 부정선거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특히 서울에서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정오에 총궐기 선언문을 발표한 후 세종로와태평로 일대로 진출해 시위를 하고 귀교하는 도중 경찰의 방조 하에 정체불명의 정치깡패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른바 ‘고대생 습격사건’으로 이와 관련 극명하게 엇갈리는 두 개의 진술이 존재한다. 훗날 5.16 혁명 후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경무대 경찰서장인 곽영주 경무관(현 대통령 경호실장급)과 임화수의 지시로 인해 사건이 발생했다고 발표된 바 있다.

또한 당시 현장에 참여했던 모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고려대생 습격사건은 조직적· 계획적 사건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발생한 폭력사건을 보복하려다가 일어난 우연한 일이라는 양반된 주장이다.

여하튼 이 사건으로 인해 다음날인 4월 19일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학생들과 이에 고무되어 자극을 받은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경무대와 이기붕의 자택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 김주열의 죽음에 대한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곳곳에서 경찰의 발포가 자행되었고 수십 명의 학생들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시위대는 재선거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들고 나섰고 결국 정부는 당일 오후 세 시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계엄령에 잠시 주춤했던 시위는 시간이 감에 따라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 민주당 출신 장면 부통령이 먼저 퇴로를 열었다. 4월 23일 장면이 부통령직을 사임하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어 4월 26일 오전에 주미대사 매카나기와 UN군 사령관 맥루더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 사태해결 방법으로 이승만의 하야를 권유,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일부 국무위원들도 이에 가세하고 나서자 당일 오후 이승만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하야를 발표한다.

『이승만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 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보고를 들으면 우리 사랑하는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해서 우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니 내가 아래서 말하는 바대로 할 것이며, 한 가지 내가 부탁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군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다.
선거로 인연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게 하기 위하여 이미 이기붕 의장에게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였다.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단기 4293년 4월 26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당일 오후 두 시 국회는 이승만 대통령 즉시 하야, 정부통령 선거 재개, 내각책임제 개헌 등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어 4월 27일 오후 국회에 제출된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서가 수리되자 헌법 규정에 따라 수석 국무위원인 허정이 대통령권한을 대행하게 된다. 당시 헌법에 따르면 부통령이 그 직을 승계하게 되어 있었으나 부통령인 장면이 그보다 먼저 사임한 관계로 외무부장관 허정이 수석 국무위원 자격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하게 된다.

S. doctor 김 블러그 바로가기 http://blog.daum.net/jwkim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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