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을 두 남자가 못 이겨서 비겁하게 야합했다”
“한 여성을 두 남자가 못 이겨서 비겁하게 야합했다”
  • 이광명 기자
  • 승인 2012.11.19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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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김성주'

▲ 김성주 새누리당 선대위원장
[에브리뉴스=이광명 기자] 보수여당 새누리당에 통통 튀는 빨간 옷을 입은 여성CEO가 입성했다. 정치를 싫어했지만 사명감을 느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는 김성주 선대위원장. 2012년 DNA 회의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비전을 가진 101명의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던 김 위원장은 일명 '재벌좌파'로 불리며 진보적 성향의 여성기업인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 그녀가 보수정당에 발을 들여놓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에브리뉴스>는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4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났다. "대한민국을 확 뒤집어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는 김 위원장. 그녀가 꿈꾸는 정치혁명이 무엇인지 그녀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봤다.

- 스스로를 재벌좌파라고 하며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다 보수적인 새누리당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다들 놀라워했다.

▲ 진보·보수를 넘어서 저는 정치 자체가 싫었어요. 그래서 여의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죠.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만 봐도 때려주고 싶었어요. 혈세를 낭비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간 대통령들이 수차례 저를 불러 그 많은 요직을 제안했지만 전혀 꿈쩍 조차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글로벌하게 뛰어다니는 CEO가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고 태풍의 핵으로 뛰어들다니요. 아마 다들 깜짝 놀라셨을 거예요. (웃음)

- 정치에 뛰어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 계기가 뭐였냐면, 한 달 반 전 쯤 추석이었잖아요. 홍콩과 태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새벽 5시쯤 눈을 떴어요. 눈을 부비며 신문 두 개를 보게 됐죠. 한 개는 우리나라의 모 일간지였는데, 사설에 한반도의 지금은 마치 110년 전의 구한말의 모습과 같다고 하는 거예요. 그 당시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으르렁으르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조정에서 수구파냐 진보파냐 당파 싸움만 하고 있었죠. 임금은 정신을 못 차리고 많은 귀족들은 혹세무민하며 양민의 피를 빨고 있었어요. 하지만 양민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일합방이 됐죠. 그렇게 일본의 압제 속에서 36년을 살았어요. 우리나라의 국왕이 폐위되고 국모가 시혜되고 안타까운 청년 수만 명이 일본을 대신해 태평양 군도 어딘가로 끌려가 뼈도 못 추린 채 다 죽었을 뿐 아니라 아리따운 꽃다운 처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는 비극의 역사를 지나왔어요. 그 뒤에 또 한국전쟁을 겪었고요.

하지만 감사한 것이 그 폐허더미 위에서 불과 60여년 만에 작은 분단국가가 모든 나라가 바라보는 경제 기적을 이뤘잖아요. 싸이처럼 각 산업분야에 1등 회사나 브랜드를 만드는 그런 놀라운 기적의 민족인거죠. 그런데 왜 110년 전의 전철을 밟으려 할까, 그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또 다른 신문이 파이낸셜 타임즈란 영국신문이었는데 비슷한 내용을 썼더라고요. 마치 동북아의 모습은 제 2차 세계대전 때와 흡사하다고요. 유럽이 잘 살고 있을 당시 독일이 갑자기 경제 군사 강국으로 떠올랐죠. 영국과 서로 우방으로 지내다가 싸움을 시작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터진 거예요. 그와 같이 동북아도 지금 중국이 너무 무서운 경제·군사 국가로 뜨고 있어요. 일본, 미국과 헤게모니, 영토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잖아요. 우리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반도국가기 때문에 항상 대리전쟁을 치러주는 그런 역사를 반복해 왔어요. 우리는 오천년 역사 동안 한 번도 침입을 하지 않았는데 870번이 넘는 크고 작은 외침을 당했거든요. 실제로 많은 미래학자나 국제정치학자들이 현재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이념투쟁을 하며 서로 비방과 반목을 하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죠.

그래서 양심의 결단을 내린 거죠. 조국이 무너지는 것을 알면서 방관만 한다면 너무 이기적인 지식인이 되는 거잖아요. 나라를 위해 나라를 어떻게 도와야할지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하기로 했죠. 그래서 그렇게 싫어하는 정치에 결국 뛰어들게 됐죠. 

- 왜 박근혜 후보였나.

▲ 사실 저는 분명히 진보성향이 강한 사람이에요. 제가 12년 전에 썼던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라는 책이 진보 쪽 사람들의 교과서이기도 했죠. 그런 책을 쓴 사람이 어떻게 보수당에 갔는지 다들 의아하셨을 거예요.

진지하게 생각해봤어요. 세 명 중 누굴 도와야 할까. 답은 분명했어요. ‘정직한 분을 돕자.’ 제가 정치를 왜 싫어했는지 생각해보니 정치인들이 말만 근사하게 해놓고 뒤에 책임을 안 져요. 말 바꾸고 거짓말을 해요. 정치부 기자들 말을 들어보니 그놈이 그놈이고 다 도둑놈이라고 하더라고요. 한 마디로 정치인들에게 신념과 철학이 없어보였어요.

그렇지만 박근혜 후보는 제가 믿을 수 있는 단 한명의 지도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분의 과거 행적을 보면 아무리 독재자의 딸이다, 정수장학회다 하며 별 과거사를 다 거론하지만 그건 자기 아버지의 일이지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거든요. 그렇게 따지면 깨끗한 후보가 어디 있겠어요. 우리에게는 미래가 중요하잖아요.2030들에게 어떤 대한민국을 물려줄지 그 인프라를 만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해요. 특히 외교, 통상 분야에서요. 하지만 야권 지도자들은 ‘외’자도 ‘통’자도 모르는 것 같아요. 안보문제와 국가정체성도 너무 흐릿하고요. 무엇보다 국정운영 경험이 중요하죠. 대한민국이 앞으로 글로벌 대해를 항해해야 하는데 운전면허증이나 항해증도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선장이 되면 되겠어요?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그냥 이념에 끌려 다니고 있는 것 같고. 너무 놀랐어요. 제가 너무 길게 얘길 했지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예요. ‘정직’ 그리고 ‘진정성’. 어느 당이나 부족한 면이 있고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가장 귀한 덕목이 있다면 저는 무엇보다도 정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있어야 서로 협조해 나가고 그 위에 쌓아나갈 수 있는 거니까요.

- 박 후보가 정직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 본인의 지난 20년간의 행적을 보면 그것은 완연해요. 그 분은 바보스러울 만큼 자기가 한 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분이죠. 민주당 사람들도 FTA해놓고 지금은 적반하장 격이잖아요? 그렇지만 박 후보는 굉장히 과묵하고 신중하죠. 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참 검소해요. 우스갯소리로 한 얘기이긴 한데, 어떤 TV의 정치부 부장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세 후보가 TV 출연을 위해 분장실에 있었는데 두 남자 후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디자이너까지 동원하고 넥타이, 와이셔츠 등 옷도 여러 벌을 들고 와서 뭘 입을지 분주한데 박 후보는 여성인데도 딱 들어오셔서 얼굴 분만 살짝 바르고 자기 혼자 빗질을 하더래요. 절대 과대포장을 안 해요. 그래서 제가 요즘 좀 욕을 먹죠. 패션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 선대위원장이 됐으면 박 후보를 좀 세련되게 바꿔주지 왜 항상 똑같은 옷을 입고 머리도 저렇게 보수적인 스타일을 하도록 두냐고요. 야단을 많이 맞았어요. (웃음) 그런데 가까이서 지켜보니까 그게 아름답더라고요. 그러한 수수한 차림에 그분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요.

비근한 예로 독일의 메르켈 수상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메르켈 수상은 박 후보보다 훨씬 남자같이 생겼어요. 짧은 단발머리에 목도 짧고 퉁퉁한 몸에 옷도 검소하게 입고 다니지만 국제무대에 서면 가장 존경받고 신임을 받는 대통령이에요. 항상 문제를 직시하고 그걸 분석해서 실천전략을 내놓거든요. 그리고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실천을 해요. 그러니까 독일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도 버티고 있고, 어떻게 보면 그 분 때문에 세계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여자 대통령이 해낸 거예요. 정직한 여자 대통령이.

- 박 후보의 경우 여성대통령론을 내세웠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 야권에서 모 교수가 한 말도 안 되는 발언들은 한마디로 가부장적 의식에서 나온 잔재라고 봐요. 한 여성에게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데 대통령 후보에게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다니요. 그거야 말로 여성 차별이며 비하예요. 미국에는 흑인이 전 국민의 12%가 안 된대요. 그래도 첫 흑인 대통령이 나오니까 저렇게 열광하는데 우리는 인구의 반이 여성이잖아요. 이제야 여성 대통령이 나왔는데 왜 저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하죠. “한 여성을 두 남자가 못 이겨서 비겁하게 야합했다.” 당당하면 다 같이 싸워야죠.

- 그나저나 박 후보를 그레이스 언니라고 부른다던데.

▲ 사실 저는 정치를 싫어하잖아요. 와보니까 진짜 딱딱한 거예요. 재미가 없었어요. 대부분이 남자들이고 박 후보도 항상 남자들에게만 둘러싸여 있고요. 제가 만나본 박 후보는 밖에서 보이는 차갑고 딱딱한 불통의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기뻤던 일이에요. 직접 만나 뵈니 정말 오픈돼 계시고, 굉장히 부드러우시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굉장히 명석하세요. 그리고 결단을 하면 바로 행동 개시로 들어가시죠. 좋은 면이 참 많은데 왜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할까 생각해보니 옆에서 보좌하는 분들이 대부분 남자고, 그동안 고난의 인생을 걸어 왔잖아요. 밖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를 너무 신중하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딱딱하게 비춰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좀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드려야겠다하는 마음이 들었죠. ‘혜’가 은혜라는 뜻일 것 같아서 제 마음대로 지어낸 거예요. 그래서 가끔 박 후보를 그레이스 언니라고 부르는데 그럴 때마다 아주 쾌활하게 웃으세요. 키 큰 동생 하나 두게 된 거죠. (웃음)

- 이러한 정치적 활동은 처음이다. 선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어떤 이들이 있었나.

▲ 전혀 정치에 대해 모르니까 처음부터 좌충우돌이었죠. 아시잖아요. 제가 처음에 와서 ‘나는 재벌좌파다’ 이러기도 하고 ‘나는 혁명하러 왔다’고도 하고, ‘젊은 여성들이 이 나라를 확 뒤집어 엎는다’고 외치기도 했죠. 처음엔 사람들이 저 여자 혹시 당 잘못 찾아온 거 아니냐고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절박했어요. 앞으로 다가올 파고가 너무 커요. 우리나라가 한 번 더 외환위기가 오면 구제불능이 돼요. IMF가 돈이 없거든요. 구제금융이 없다는 말이에요. 정말 주의해야 하죠. 이런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나마 안정된 기반 위에 확실한 정치·경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성 대통령이라는 건 큰 의미가 있죠. 야권에서는 박 후보가 과연 여성을 위해 한 일이 뭐냐고 하지만 참 많은 일을 하셨어요. 이미 스물 몇 개 법안을 만드셨더라고요. 여성 운동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피켓 등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굉장히 온건하고 합리적인 페미니즘이죠. 그냥 남자의 세계에서 묵묵하게 고통스럽더라도 지혜롭게 이겨내며 해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럼으로써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는 거죠. 힐러리 클린턴이 좋은 예라고 봐요. 여성이 만든 정치세계에서 국무장관까지 돼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잖아요. 또 휴렛팩커드의 CEO 칼리 피오리나도 같은 케이스죠. 박 후보도 남성들의 가부장 정치세계에 맞서 첫 여성 대통령이 되면 그동안 우리 여성들이 올라갈 유리천장이 깨질 거예요. “박근혜(바꾸네) 확 바꾸자.” 굳이 정권을 바꾸지 않아도 여성대통령 하나만으로도 우리 생활 전반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바뀔 거예요. 제가 항상 주장하는 것이 ‘여성혁명’이잖아요.

- 가장 필요한 여성정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이미 박 후보가 여성정책에 대해 발표를 했죠. 저는 그 중 정부 요직에 가능한 한 많은 여성이 진출해야 한다고 봐요. 그만큼 준비된 여성이 있느냐는 짚어봐야 할 문제지만. 우리 여성들은 경험적인 측면에서 약간 부족해요. 하지만 다들 모성애가 있고, 나보다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이 있죠. 그동안 가부장적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정치는 술로 하는 정치, 밀실정치, 패거리 정치잖아요. 경제에서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전 술 한 방울 안마시고 뛰어난 경영을 해 경쟁에서 이겼고 대한민국 1등을 넘어 글로벌 1등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저는 인맥을 전혀 따지지 않아요. 제가 연대를 나왔지만 고대 사람도 많이 쓰고, 지방사람이나 스펙이 없는 사람도 많이 썼어요. 그래도 잘 해냈거든요.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이 여성인 것 같아요. 여성 대통령이 나오면 이 정치구조도 확실하게 체질개선이 되리라고 봐요.

- 평소 김 위원은 여성이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전투적이고 적극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것 같은데.

▲ 우리 아이가 두 살 반쯤 됐을 때 기저귀를 채워서 처음으로 외국나들이를 데려갔어요. 스웨덴에 국제대회가 있어 겸사겸사 간 거였죠. 그 때 보니 수상도 여성이고, 스톡홀름의 시장도 여성인 거예요. 더 놀라웠던 사실은 시장에게 초대를 받아서 갔더니 만삭의 시장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그 당시만 해도 시장은 당연히 남자여야 하고, 만삭의 시장은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악수를 하며 첫 아이냐고 물어보니 심지어 넷째라는 거예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그 때 그걸 보며 정말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는 언제 대통령도 여자고 시장도 여자고 모든 요직에서 여자들이 일할 수 있을까, 아이를 네 명까지 나아도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진정한 평등사회를 언제 이룰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더 있었어요. 제가 스웨덴,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 다 살아봤거든요. 그 때 느낀 사실이 여성들이 남성 이상으로 강인하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선조 여성들은 정말 똑똑하고 내적으로 강인한데 요즘 젊은 여성들은 왜 이렇게 나약해졌는지 이해가 안돼요. 엄마들의 책임이 큰 것 같아요.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구박당하고도 자기가 여성 차별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자기 아들도 그렇게 여성을 차별하도록 키우고, 자기 딸들에게는 조신하게 있다가 시집만 잘 가서 애 잘 낳고 잘 살라고 하잖아요. 누가 해주지 않아요. 우리가 쟁취해야 돼요.

- 이런 여성들의 소극성을 깰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여성들도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말까지 한 일이 있는데.

▲ 그 방법이 제가 말하는 ‘여성혁명’이에요. 세 가지 안이 있는데, 첫째가 ‘생각혁명’이에요. 여성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고 리더가 될 수 있는 당당한 인간이라는 인식의 전환이죠. 자아실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돼요.

두 번째가 ‘실력혁명’이죠. 저희 회사 1000명 중 900명이 여성이에요. 하지만 실력도 없으면서 똑같이 월급을 받는다면 그건 역차별이 되죠. 남성과 여성 중 누가 더 잘나고 못나고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상생의 논리로 가야죠. 남성들은 하드웨어 쪽이나 로지컬한 분야에 우수해요. 물류, 생산, 재정 이런 부분에 강하죠. 반면에 여성들은 머천다이징, 마케팅, 디자인 등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서 뛰어나요. 이렇게 하드웨워와 소프트웨어가 잘 융합돼야 진짜 슈퍼팀이 탄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성들이 빨리 실력을 향상시켜서 양성평등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 번째가 ‘지도력혁명’이에요. 제가 2~3년 간 여성을 키워보면 개인으로는 굉장히 우수해요. 그런데 팀워크가 약하더라고요. 자기 할 일은 잘 하는데 팀과는 잘 못 지내요. 그리고 다 키워서 이제 쓸 만하다 싶으면 한계 상황에 닥쳐 도망가 버리죠. 남자들은 쥐어박고 그래도 잊고 버텨요. 자기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여자들은 애 봐줄 사람이 없다는 둥 핑계를 대다가 그 자리를 떠나버려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이 여성들도 군대를 가야한다는 거였죠. 군대를 보내기 보다는 극기 훈련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저는 교련 때문에 10일 정도 군대를 가봤거든요. 구보, 포복, 보초 서는 것도 다 해봤어요. 제 기질에 맞더라고요. (웃음) 근데 그 때 정말 힘들었지만 제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 훈련이 후에 사회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특히 살면서 한 번도 만날 일이 없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다 만나게 돼요. 자기 자신을 이겨본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남성만 너무 오래 군대에 보내지 말고 1년만 보내고, 모병제로 직업군인을 늘리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에요.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미국이나 전 세계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또 여성도 선택조항으로 군대를 가도록 하는 거죠. 늠름한 지도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군대를 간 사람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법도 있고요.

- 위원님은 여성이지만 외모적으로는 중성적인 이미지가 풍긴다. 그렇게 꾸미는 이유가 따로 있나.

▲ 제가 키가 크잖아요. 예전에는 사자 머리를 하고 지냈어요. 펑키 스타일로요. (웃음) 제가 영국에 있을 때 그런 게 유행이었거든요. 위 아래로 삐죽삐죽하고 긴 머리를 해서 입국을 했더니 저희 어머니께서 공항에서 보시고는 내 딸이 아니라고 하시며 당장 미장원으로 데려가시더라고요. 그 때 자른 머리가 지금 이 머리예요. 그런데 자르고 나니 정말 편한 거예요. 머리가 길 땐 비오면 머리가 풀리고 바람 불면 엉키고 머리 빗느라 정신이 없는데 잘라보니 샴푸도 덜 들고 한 번 드라이하고 젤을 바르고 나면 머리를 빗을 필요도 없이 머리에 대해 잊어버려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너무 편하고 남자들이 왜 짧은 머리를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또 이 스타일이 제 개성에 맞아요.

- 강인한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였는데.

▲ 물론 강하게 어필하려는 의도도 있죠. 20년 전에 제가 사업을 시작할 때만해도 남성 중심이다 보니 스커트를 입고 다니면 남자들이 다리부터 봤어요. 지금도 여성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그걸 깨야 돼요. 제가 여성으로 보이면 바로 내리깔고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바지를 입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남성들이 오히려 여성화되고 있어요. 저는 여성해방의 문제가 남성해방과 같이 간다고 생각해요. 이제 여성들은 리더로 설 만큼 절대 약하지 않아요. 약하다고 포장하고 찔찔 짜고 남성이 여성을 착취한다는 생각은 자기가 자초하는 거라고 봐요. 특히 직업에서는 남녀의 성역이 없어지고 있어요. 제가 요즘 굉장히 바쁜데, 여성만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여성들이 더 강해져야죠.

-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되나.

▲ 저는 지금도 비 정치인이고 잠깐 구원투수로 들어왔다가 나갈 사람이에요. 12월 19일 대선 이후로 완전히 사라질 생각이에요. 절대 어떤 직함도 이득도 취할 생각이 없어요. 그게 저의 소신이죠. 제가 택한 분이 박 후보이고 그러다보니까 새누리당으로 왔지만 결국은 나라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한 명의 지식인으로 돕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이 사명이 다하면 제 사업으로 돌아가야죠. 저는 제 사업을 계속해서, 대한민국 1등 브랜드가 모 L브랜드를 정복했노라하는 승전보를 5년 내로 들려드릴 생각이에요. (웃음) 5년 이내에 중국에 100개 매장을 열 것이고, 일본과 미국에도 진출 중이에요. 그렇게 해보임으로써 우리나라 중소기업, 청년들, 여성들이 저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도 해내는데 난 왜 못할까하며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만들고 싶어요. 그게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나 아니고 정치할 사람은 너무 많거든요. 전 재주가 없어요. 더 잘할 사람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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