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관광...’속 뜻 알면 경악, ‘드립’에 감염된 인터넷 게시판
‘민주화,관광...’속 뜻 알면 경악, ‘드립’에 감염된 인터넷 게시판
  • 우종한 기자
  • 승인 2013.05.15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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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 일부 커뮤니티 유해매체 지정 움직임도

@일간 베스트 저장소
[에브리뉴스= 우종한 기자] 5.18 기념일을 코 앞에 둔 현재 한 아이돌 연예인의 ‘민주화’발언으로 떠들썩하다.

14일 인기 아이돌 그룹 시크릿의 멤버 전효성은 SBS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게스트로 출연해 “우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라 민주화 시키지 않는다”고 발언, 결국 누리꾼들의 질타에 “몰라서 한 발언이었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비난은 계속됐다. 급기야 “아이돌에게 교양을 쌓게 해야 한다”는 훈계가 이어졌다.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극우적 사유가 암암리에 젊은 세대의 정신세계에까지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슬픈 징조”라며 “개인을 비난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이성의 실패를 한탄해야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민주화’란 단어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로 알려졌으며, ‘일간 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에서 본격적으로 통용됐다. 일베에서는 ‘민주화’를 ‘획일화 하다, 비추천’ 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측의 의미를 내포해 사용한다. 원글이 마음에 안 들 경우 게시판 유저들이 ‘민주화’라는 댓글을 달아 조롱하는 식이다.

‘민주화’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 뜨는 지역 사건 사고기사 댓글란에는 ‘오오미, 홍어, 7시 방향’이라는 전라도 비하발언과 ‘고담, 개쌍도, 과메기’라는 경상도 비하발언 등 지역 차별적 말도 서슴없이 나온다.

표현의 자유를 등에 업은 이러한 언어 오염은 비단 정치적 성향을 띄는 커뮤니티만의 문제는 아니다. 길 옆을 지나는 초등학생의 입에서도 심심치 않게 ‘관광, 역관광’이란 말을 들을 수 있다. 이 말은 e-스포츠가 활성화되며 의미가 바뀐 말로 ‘무기력하게 게임에서 지다’ 또는 ‘이기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흔히 “관광했다/당했다”고 쓰인다. 하지만 이 말은 ‘강간’이란 단어에서 유래됐다는 게 통설이다. 처음엔 직접적인 말로 쓰였다. 하지만 부정적 어감으로 점차 게시판에서 금지어로 지정되며, ‘관광’이라는 말로 옮아간 것이다. 웃기게도 이토록 무서운 탄생 비화를 가진 ‘관광, 역관광’이란 말은 입과 손을 통해 인터넷은 물론, 일상, 심지어 언론에서도 하나의 의미로 자리 잡아가는 실정이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방송인 김진표씨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 헬기가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운지하고 맙니다”라고 말했다. ‘운지’란 주인공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나는 자유인이다”라고 소리치는 광고의 상품명(운지천)에서 유래한 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자살을 희화화하기 위해 부르는 일종의 은어다. 김씨의 사과문으로 마무리 된 일이지만, 녹화방송에서 제작진 조차 필터링 하지 못한 점 등을 꼬집어 볼 때 주변에 얼마나 오염된 말들에 노출돼 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초창기 인터넷 용어가 타이핑을 쉽게 하기 위해 줄여씀으로써 형태를 왜곡시켰다면, 최근엔  기존 어휘에서 의미만을 왜곡시켜 그들만의 독특한 하위문화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은어가 일종의 암호가 된 셈이다. 이들의 ‘암호’를 이해하지 않고 곧장 발을 들이게 된다면 기존 언어 사용자는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된다. 최근 인터넷 게시판은 누가 더 촌철살인의 ‘애드립’을 날리느냐는 소위 ‘드립’경연장이 된 지 오래다. 그렇게 서로를 추켜세우며 ‘운지’, ‘민주화’라는 폭력적 언어가 탄생했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이렇게 ‘암호’를 트는 조건으로 그들은 재미를 공유하게 된다. 이번 ‘민주화’ 발언 사건도 그런 과정과 언어 사용자의 무지에서 벌어졌다. ‘유머’를 위해 인용했지만, 속 뜻은  ‘트로이 목마’였던 셈.

현재 일베에는 하루 4만건의 게시물과 수십만건의 댓글이 뚜렷한 기준도 없이 올라온다. 일부에서는 일베를 유해매체물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현재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마땅한 규제방법도 없을뿐더러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은 “방통위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저서 ‘감염된 언어’를 통해 언어의 변화 단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고종석 칼럼니스트는 지난 1월 트위터로 일베를 ‘정신병동’이라며 맹비난했다. 당시 비난 이유를 ‘언어문제’로 한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글은 많은 트위터들의 지지를 받으며 퍼져나갔다. 일베 현상을 일방적 폭력으로 볼 것인가? 하위문화의 다양성으로 봐야할 것인가? 이제는 합의적 담론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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