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 안녕하십니까
성매매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 안녕하십니까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3.06.20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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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③]성매매특별법과 성적자기결정권…“행복추구권을 허(許)하라!?”

[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대한민국은 성(性)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성’을 거쳐 권력의 단면을 드러낸다. 그래야 남자고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기 일쑤다. 성에 탐닉하는 중독증은 계층·지역·세대 등을 막론하고 무한 질주 중이다. “거기 갔어? 좋은 데 갔지”라는 말로 음흉한 눈빛을 교환하는 사람들…. 혹자는 돈을 주고 성을 사는 것은 재력과 권력을 뻐기는 천박한 것이라고, 다른 이들은 성매매 여성을 향해 “좋아서 나온 거 아니야”라고 책임을 되돌린다. 자신의 관점에서 성매매 문제를 본 탓이다. <에브리뉴스>는 성매매 기획(총 3회)을 통해 성매매와 성적자기결정권 문제를 집중 해부한다. “성매매 여성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어떨까.” 문제제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편집자주>

성적자기결정권. 국가나 다른 이들의 간섭 없이 ‘내 맘대로’ 성(性)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 여기엔 성행위 여부나 성행위 파트너, 방법 등이 포함.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이 보장하는 자기운명결정권의 일종. 헌법재판소(헌재)도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적자기결정권이 포함돼 있다”고 판시.

“성매매 여성들은 그냥 돈 벌기 위해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닌가요? 그냥 사치품이나 쓰고 그러지 않나요? 그들에게 무슨 결정권이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누군가에겐 헌법이 부여한 ‘당연한 권리’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엔 혹여나 손가락질 받지 않을까 ‘눈치 봐야’하는 일이다. 그 주변부에 자리한 대표적인 그룹은 성매매 여성이다. 왜, 가장 천박하다고 인식하는 그곳에 계급적 요소를 강요당하는 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런 의식 없이 이 같은 질문 자체에, 그것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생각 자체에 ‘위계’를 담는다. 그리고는 사회적 권력관계를 형성한다. ‘갑(甲)과 을(乙)’. ‘나는 수요자, 너는 공급자’, ‘나는 남성, 너는 몸 파는 여성.’ ‘A 아니면 B’라는 논리는 그 자체로 남성주의적 시각이다.

▲ 지난해 9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한터전국연합, 한터여성종사자연맹, 남성연대 구성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특별법 제21조 제1항)이 인격권, 행복추구권(헌법 제 10조)와 기본권(헌법 제17조)에 위배되며 성폭력 사건이 증가됐다.'고 주장하며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뉴시스

이 때문에 그들의 관점에서 보지 않는 성 담론은 그 자체로 공허하다. 성적자기결정권은 단지 섹스(Sex)의 문제일까. 아니다. 젠더(Gender)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한 첫 번째 열쇠는 나와 너의 대등한 관계, 사회적 동등함이다.

원론으로 돌아가 보자. ‘성적자기결정권.’ 말은 거창하나 섹스(SEX) 행위 등의 주체성을 가리는 문제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성 문제를 지배하는 일상의 정치사회학이 됐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시대적 흐름, 왜?

장면 하나) 지난 2009년 11월 헌재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혼인빙자간음죄가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을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로 낙인, 남성 우월적 정조관념을 강요했다는 게 핵심이었다.

또한 헌재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도 위헌결정을 한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여성이 혼전성관계를 요구하는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후 자신의 결정이 착오라고 주장하면서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다.”

장면 둘) 지난달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부인을 흉기로 위협해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된 A(45)씨에 대해 실형을 확정했다. 형법상 강간죄 객체인 ‘부녀’에 법률상 ‘처’가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부부간 성행위에서도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판단한 셈이다. 이로써 1970년 판례가 43년 만에 번복됐다.

장면 셋) 2011년 8월 의정부지방법원 형사합의 1부(임동규 부장판사)는 헌재에 간통죄와 관련, “간통죄는 성도덕에 맡겨 자율적으로 질서를 잡아야 할 성생활 영역을 국가가 침해하는 것이고, 성적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20일 현재 헌재가 심리 중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시대적 흐름이 됐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도구다. 혼인빙자간음죄도 부부 강간죄 성립도 이 흐름을 피하지는 못했다.

간통죄도 성적자기결정권 영역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8일 ‘헌법재판관 9명의 간통죄 입장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재판관 9명 중 7명(강일원․김이수․김창종․이정미․이진성․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이 간통죄 폐지에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제 남은 것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특별법)’이다. 서울북부지법 오원찬 판사는 지난 1월 4일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곧 ‘합헌·위헌’ 여부가 결정된다.

성매매의 정치경제학, 그 복잡한 구조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 청구 대상자다. 성매매특별법은 2004년 3월 제정된 이후 7번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있었다.

그간 성매매특별법 위헌법률심판 제청 청구인은 성 구매 남성이 총 3회(1차, 3차, 5차)로 가장 많았고, 스포츠마사지 업주(2차)와 성매매 건물주(6차)가 각각 1회로 그 뒤를 이었다. 헌재는 성 구매 남성이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관련해선 ‘자기관련성이 없다’며 각하했다. 성매매 건물주 등에 대해선 합헌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 청구인은 과거 6번과는 다르다. 처음으로 성매매 여성이 청구인으로 나선 것이다. 이번 헌재의 성매매특별법 위헌법률심판의 핵심 쟁점은 성매매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간단히 요약해보자. 성매매특별법 위헌 논지다. ‘강요가 아닌 성인의 자발적 성행위는 헌법이 부여한 성적자기결정권 범주에 있다→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여성의 신체처분, 즉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이는 법률이 여성을 성적자기결정권 행사 능력이 없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에 반한다.’

 

▲ 경남 창원중부경찰서는 지난 1월 28일 성매매를 암시하는 청소년 유해 전단 등을 부착하고 배포한 A(36)씨 등 15명을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사진은 경찰에 적발된 업소 등이 부착·배포한 전단들.@뉴시스

문제는 성매매특별법이 위헌결정을 받아 사실상 성매매가 합법화될 경우 업계 종사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느냐다. 예컨대, 성매매특별법 위헌 판결로 기업형 성매매 업계에서 일하는 A라는 여성에겐 성적자기결정권이 부여됐다. A는 몸이 좋지 않다고 느낀 어느 날 성매매를 거부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거다.

성매매 여성은 업주와 포주 사이에 낀 ‘을(乙)’로, 갑(甲)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성매매특별법 위헌법률심판 제청 논거와 성적자기결정권이 논리적으로 부딪히는 지점이다.

성매매 여성의 성행위를 일반 개인의 성행위로 오도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성매매 여성의 성행위는 기본적으로 ‘성 착취’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의 성행위는 사인의 자유로운 거래가 아닌 ‘폭력’이 가미된 여성에 대한 차별구조라는 얘기다.

최근 정치권이 성매매 관련 법률안의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한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내고 성을 매도한 사람은 처벌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남윤인순 의원도 조만간 성매매방지법 전면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전국 성착취반대 및 성매매여성비범죄화공동추진위원회와 성매매 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등도 성매매방지법 전면 개정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전국연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성매매특별법 위헌 제청과 관련해 “우리는 이미 관련 성명을 내고 의사를 표시했다”면서 “향후 남윤인순 의원의 성매매방지법 전면개정안에 뜻을 같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연대 측은 “(성매매특별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여성들을 비범죄화하기 위한 첫걸음이 아니”라며 “성매매특별법의 제정취지를 후퇴시키면서 성 산업을 활성화하는 역풍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성평등정책연구포럼 관계자도 “현재 성매매특별법 등이 안고 있는 본질을 볼 필요가 있다”면서 “구조적 문제가 있는데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포주와 알선자 성구매자는 처벌, 성매매 여성은 전면적 비범죄화.”

하지만 이것이 ‘진정’ 성매매 여성을 위한 법률인지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정치권과 여성단체들의 주장에는 성매매 여성들의 성적자기결정권 논의를 할 수 있는 틈이 없기 때문이다.

<에브리뉴스> 취재과정에서 만난 성매매 여성인 가영 씨(30)는 헌법이 보장하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받고 나아가 자신들이 ‘성 노동자’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옛날처럼 감금하는 데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내 발로 찾아와 일하는 곳”이라고 말한 가영 씨는 오는 29일이 ‘성 노동자의 날’이라며 그날은 쉰다고 귀띔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성매매 금지 국가다. 성매매특별법이 위헌 결정을 받게 되면, 성매매의 합법화 즉 성매수 남성에 대한 비범죄화 논의의 길이 열린다. 국회에서 성매매 관련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면, 성매매 여성은 처벌에서 제외된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성적자기결정권과 성 노동자성을 부여하는, 묘책은 뭘까. 오는 29일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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