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샵(#)메일'이 아니라 '삽(Shovel)메일'
[칼럼] '샵(#)메일'이 아니라 '삽(Shovel)메일'
  • 오힘찬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6.2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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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힘찬 칼럼니스트
[에브리뉴스=오힘찬 칼럼니스트] 흔히 '쓸모없는 짓 하는 것'을 보고 '삽질'한다고 표현한다. 삽질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굳이 흙을 퍼내지 않아도 되는데 삽질을 하는 것만 힘 빠지고 의미 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꼭 이런 삽질을 사서 하는 집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IT 정책은 전반적으로 삽질이 많고, 앞뒤 생각하지 않는다. 실명제가 그랬고, 공인인증서가 그렇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뒤 현재 액티브X에 묶여있는 공인인증서 제도를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보인다. 오랜 염원이 이뤄지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과 반대로 뒤통수도 제대로 쳤다. '공인인증메일', 일명 '(#)메일'로 말이다. 

지난해 8, 국무회의에서 `전자거래 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됨에 따라 지식경제부 주관으로 '공인인증메일 제도'가 시행되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기존 이메일 주소는 '이름+@+도메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을 빼고 #()을 넣어 '이름+#+도메인'으로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일'로 불리는 것인데, 왜 기존의 @을 내버려두고 #메일을 시행하는 것일까? 

#메일 주소는 정부가 지정한 중계 사업자를 통해 인증을 받아 발신자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골자다. @메일는 많은 메일 서비스를 통해 주소를 자유롭게 생성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발신자의 신원을 속이고 범죄에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메일은 인증을 받아야만 발급할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메일 내용을 확인하면 된다. 공공 기관 메일이나 사업자가 전자세금명세서, 계약서 등을 메일로 전송하는 데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의도 자체는 그럴 듯 보인다. 그간 신원이 보장되지 않는 메일에 시달려야 했던 일을 깔끔하게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야말로 삽질이다. 

먼저 #메일을 이용하기 위한 절차부터 보자. 중계 사업자를 통해 메일 계정을 발급받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메일을 작성하려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은행 업무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 상단에 나타나는 온갖 정체불명의 프로그램을 액티브X를 통해 설치해야 한다. 당연하게 액티브X를 사용하기 위해선 윈도우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이 방식을 탈피하자고 움직이고 있는데, #메일은 메일을 작성하기 위해서 또 액티브X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 윈도우의 익스플로러를 사용하지 않으면 메일을 작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메일로 주고받은 모든 내용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저장된다. 왜 계약서나 세금명세서를 딴 곳에 저장하게 내버려두어야 하는 건가? 아니, 저장하는 건 좋다고 하자. 애초 각기 다른 메일 서버를 이용했기 때문에 한쪽이 해킹을 당하더라도 당한 쪽의 정보만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메일을 사용한 내용이 모두 한 곳에 저장되고,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메일 서버만 공격하면 국내 #메일을 사용하는 기업이나 기관의 정보를 한꺼번에 빼낼 수 있다. 자진해서 폭탄을 하나 만들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업자를 지정한다는 자체도 문제다. 당시 지식경제부의 발표로는, 지식경제부 산하 60개 기관의 문서를 #메일로 전송하면 송신료 350만 원, 기본료 900만 원으로 1,200만 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돈이 다 어디로 흘러가는가? 민간 사업자의 손에 들어간다. 정부가 억지로 만들어 낸 말도 안 되는 정책에 눈먼 돈만 민간 사업자가 챙겨가는 것이다. 1,200만 원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가? 개인사업자는 2만 원, 법인과 단체, 국가기관은 15만 원을 연간 수수료로 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메일의 소관이 미래창조과학부로 넘어가면서 지난 18, #메일을 모든 공공기관에 도입한다고 나섰다. 빠르면 7월 중 활성화할 계획이다. 처음 #메일 사업의 계획은 67,000개의 법인이 등록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만큼의 이익도 예상하고 있었다. 무려 300억 원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등록된 법인은 1,600개에 불과했다. 그러자 아예 강제적으로 #메일을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메일을 사용해 눈먼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까지 들으면 공공기관에 포함되지 않은 사업자는 당연히 사용하고 싶지 않겠지만, 정부는 또 고리 하나를 만들었다. #메일이 아니면 법적 효과를 가지지 못하도록 말이다. 기존 @메일은 공인 인증을 받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신원 파악을 할 수 없어 법적 효과가 없으며, 인증을 받은 #메일만 법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 문서가 법적 효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조건 #메일을 사용해야 한다. 필자에겐 '무조건 돈을 내야 한다'로 들린다.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위해 예산을 짜고, 중계 사업자들과 뻔히 나눠 먹으려는 것이 마치 4대강 사업을 보는 것 같다. 무엇보다 신원 확인이라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지만, PGP, PEM, S/MIME와 같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메일 인증 기술이 있음에도 억지로 독자 규격을 만들어 사업을 진행하려는 모습은 본래 의도가 너무 티가 나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제목 그대로 샵메일이 아니라 삽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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