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지털 치매를 걱정말라
[칼럼] 디지털 치매를 걱정말라
  • 오힘찬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8.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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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디지털 치매를 걱정말라

▲ 오힘찬 칼럼니스트
'디지털 치매'가 화제다. 컴퓨터,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이에 의존해 계산 능력과 기억력이 감퇴한 것을 일컫는 디지털 치매가 현대 사회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기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해두는 탓에 자기 번호도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자 기기에 기본적으로 붙은 계산기 탓에 암산 능력이 떨어지는 것 말이다.
 
이에 전문가들이 디지털 치매 자가 진단서를 제시했다면서 언론들은 보도했다. 10가지 항목 중 1~2가지에 해당한다면 디지털 치매를 의심하고 예방해야 한다고 한다. 먼저 10가지 항목을 살펴보자.
 
 

1. 외우는 전화번호가 회사번호와 집 번호뿐이다.
2. 주변 사람과의 대화 중 80%는 이메일로 한다.
3. 전날 먹은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
4. 계산서에 서명할 때 빼고는 거의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는다.
5. 처음 만났다고 생각한 사람이 전에 만났던 사람인 적이 있다.
6. "왜 자꾸 같은 얘기를 하느냐"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7. 자동차 내비게이션 장치를 장착한 뒤 지도를 보지 않는다.
8. 몇 년째 사용하고 있는 집 전화번호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은 적이 있다.
9. 분명 아는 한자/영어인데 기억나지 않은 적이 있다.
10. 애창곡의 가사를 보지 않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이전에는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어뒀었다. 이메일은 메신저나 SMS 등을 모두 포함하는 건가? 적어도 옆에 사람을 두고 이메일로 대화하는 사람은 없고, 사람과의 접촉이 없다면 은둔형 외톨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전날 먹은 메뉴를 가끔 까먹으시더라. 서류 업무는 오히려 컴퓨터가 발달한 이후 증가했다.

그 이전에는 도장이 대부분이었고. 얼마 전, 필자는 요즘 병원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는 몰랐는데 알고 봤더니 저번에 이벤트를 같이 했던 사람이었다. 잠깐 함께 했던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재미있게도 페이스북의 '알 수도 있는 사람' 덕분에 누군지 파악했다. 그것도 사진 탓이 아니라 이름으로 찾았으니 아마 페이스북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영영 기억 못 했을 것이다.

지인 중에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거의 10년 전부터 그래 왔다. 내비게이션도 지도 시스템이며, 종이 지도는 휴가철에나 펼쳐본다. 집 번호가 아니라 가끔은 생일도 주민등록번호를 보고서야 기억하는 사람도 있더라. 한자/영어가 아니라 한글 단어 뜻도 기억 안 날 때가 있다. 맞춤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지 못해서 잘못 쓰는 일도 있지 않은가. 애창곡이지만 1~2년에 한 번 가는 노래방에서 한 번 정도 불러보는 것이 애창곡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고 살진 않는다.
 
위의 10가지 항목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굳이 디지털 기기를 제외하더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연 디지털 기기 탓에 계산 능력이나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일까?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해 수첩에 적어두거나 암산 대신 주판을 이용하거나 메모지에 계산 공식을 쓰기도 했었다. 굳이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아니더라도 그런 활동을 해왔었고, 단지 디지털 기기가 그런 활동을 하나에 포함하도록 하거나 빠르게 해결해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기억 활동을 다른 영역에 옮겼다면 다른 기억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그것은 디지털 치매뿐만 아니라 어떤 기억 활동이든 마찬가지이며. 아날로그 활동을 수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전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컴퓨터를 장시간 한다고 해서 치매처럼 기억력이 떨어지고 질병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기기에 연산 작업이나 기억 활동을 넘겼다면, 디지털 기기의 도움이 없을 때 하지 못했던 기억 활동을 이어나가야 한다. 이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그렇지 못하다면 게으르다는 표현을 써도 좋다. 애초 질병으로 분류된 치매조차 예방을 위해 독서를 추천하거나 고스톱을 하라고 권하지 않던가.

그런데 디지털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독서를 제시하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대상이 바뀌었을 뿐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이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다른 기억 활동을 하려 하지 않으므로 감퇴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디지털 치매를 걱정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전문가인지 기자인지 디지털 치매가 마치 현대 사회에 발병하여 ‘디지털 기기를 쓰다보면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이상한 인식을 심어주기 딱 좋도록 포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를 자극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인데, 실상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며, 그런 걸 걱정말고 지속적인 기억 활동으로 게을러지지 않음이나 생각하자. 오히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뇌를 자극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지 ‘정보를 받아들일 것이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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