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잠시. 긍정을 내려놓자!
김 팀장이 장시간의 회의를 멈추고 팀원을 둘러본다.
김 팀장: (부드럽고 미안한 뉘앙스로) 커피한잔 마시면서 했으면 하는데…
네 명의 대리들 서로 눈치를 보다 세 명의 시선이 한사람에게로 쏠린다.
박 대리: (짜증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가 타오겠습니다…
김 팀장: (박 대리를 미안한 듯 쳐다보며) 그래. 우리 박 대리가 타야 맛있지.
박 대리: (들어가는 목소리로) 믹스로 타는데 누가 타도 똑같지요…
잠시 후 박 대리가 커피를 쟁반에 들고 들어온다.
김 팀장: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서 손을 뻗어 커피를 받는다) 고마워. (한 모금 삼킨 후 달래는 뉘앙스로) 역시 박 대리 표 커피 맛은 완전 짱이야.
위의 상황을 잠시 생각해보자.
김 팀장은 부하 직원에게 늘 긍정적인‘괜찮은’상사이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부하의 감정과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일 당신이 남성성이 강한 사람이라면 위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김 팀장에 대해 권위가 없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혹 당신이 여성성이 강하거나 그 보다 더 유약한 성향이라면 뭐가 문제 있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보는 사람 나름의 관점이니 우열을 가리거나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은 아니다.
신뢰감 있거나 열린 사람으로 혹은 매력적이고 유연하게 소통하는 긍정성만으로 PI(Personal Identity 개인의정체성)를 구축하지 않는다. 상황과 상대에 맞는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푸코는 현재 사회를 성과사회 더 나아가 활동사회라 말했다. 성과사회에서는 좀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긍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병철 교수는 자신의 저서 [피로사회]를 통해 긍정이 과잉이 되어 과잉된 긍정이 폭력이 되는 사회라 말했다.
그의‘과잉된 긍정이 폭력이 되는 사회’라는 말에 멈칫했다.
우리는 성과를 위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다”를 외치거나“꿈을 향해”라는 말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근래 부각되고 있는‘힐링’이나 삶을 돌아보는‘성찰’이라는 말 또한 곰곰이 생각하면 긍정이 과잉이 되어 결국 성과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긍정성은 다수와의 조율 과정 속에서 빛이 발하기에 때로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이러한 피로감을 탈피하려면 긍정적 감정을 우리가‘쓸’뿐임을 인식해야한다. 만일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기 시작하면 긍정과잉으로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암묵적 폭력이 될 수 있다.
이를 테면
김 팀장은 다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김 팀장은 ‘긍정적인 사람’이어서 다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문장은 의미가 다르지만 시간차가 존재할 뿐 같은 맥락이 될 수 있다.
김 팀장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사람, 열린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받게 될 것이다. 줄곧 그런 피드백에 익숙해지면 자신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긍정을 과잉으로 사용한 결과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더욱이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행동을 추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처음 보았던 시나리오를 조정해 보자
회의를 멈춘 김 팀장은 얼굴에 마른세수를 한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김 팀장: (지치고 쳐진 뉘앙스로) 커피한잔 합시다. 박 대리 부탁한다.
박 대리: (짜증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네…
김 팀장: (박 대리가 짜증스럽게 일어나는 모습을 주시하며) 늘 박 대리가
커피당번 이었나? (표정을 확인하며) 그랬군. 그럼. 다음에는 돌아가면서 하지.
잠시 후 박 대리가 커피를 쟁반에 들고 들어온다.
김 팀장: (자료에 시선을 고정하며 커피를 받는다) 고마워.
(몇 모금 마신 후) 이제 피로가 좀 풀리네.
조율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 잠시 긍정을 내려두자.
늘 부하 직원에게 자상하고 따뜻하고 소위 좋은 상사일 필요는 없다.
성과를 위해 익혀둔 긍정성들 이를테면 열린 자세, 경청, 배려와 같은 기질을 타고난 사람처럼 많이 발휘한다면 때로 수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가끔은 직원의 표정과 뉘앙스 혹은 개인적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는다.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뒷짐을 지고 걸어보라.
부하직원들의 개인적 상황에 대한 배려의 말들을 때로 참으라.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연출하라.
아이 컨택 없이 부하 직원에게 업무지시를 해보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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