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SNS시대, 소통 수단에 의존해선 안된다
[칼럼] SNS시대, 소통 수단에 의존해선 안된다
  • 오힘찬 칼럼니스트
  • 승인 2013.12.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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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NS시대, 소통 수단에 의존해선 안된다

SNS의 중요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행인 탓만은 아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소통 수단의 발전이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고, 이것은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토록 하는 효과를 낳았다. 갑자기 이런 정보의 전달이 단절된다면 끔찍해져 버릴 만큼 정보의 중요도가 높아졌고, 그와 함께 수단인 SNS의 중요도도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도를 따라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이 있다. 바로 의존도다.
지난 9일 오전, 3,500만 명의 국내 이용자를 보유한 카카오의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이 접속되지 않는 오류로 먹통이 되었다. 사용자가 많다 보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고,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도 카카오톡과 관련한 키워드가 한참 머물렀다. 어제 카카오는 네트워크 장비에 문제가 생긴 것이 원인이라고 밝혔는데, 이 상태는 복구될 때까지 2시간 정도 이어졌다. 그런데 이 동안 나온 불만 중 재미있는 반응을 볼 수 있다. 카카오톡의 불통으로 마치 국내 메시지 소통이 암흑 상태가 된 것처럼 대화 중이었는데 갑자기 멈춰서 대화를 할 수 없다거나 빨리 복구를 하라와 같은 반응 말이다.
 
언론들도 이를 퍼 나르기에 바빴다. 이런 불편의 초래한 카카오톡의 잘못으로 국민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호들갑도 있었는데, 분명 서비스 운영자인 카카오톡의 문제로 소비자가 불편을 겪은 것은 맞지만, 카카오톡이 우리나라 대표 모바일 메신저라고 해서 항시 안정적인 운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은 카카오가 되어야 하며, 만약 이용자들이 이런 불편을 계속 겪는다면 카카오톡이 아닌 다른 대체재로 넘어가는 것이고, 카카오의 수익이 떨어지기 마련인 것이 시장논리다. 선의의 서비스라면 모를까, 이익 관계에 놓인 판매자와 소비자일 뿐인 것에 카카오톡이 국내 소통의 기둥인 것처럼 반응하는 것은 흥미롭다.
 
물론 따로 전화번호도 모르고, 카카오 계정을 통해서 카카오톡으로만 대화하거나 연동 서비스인 카카오스토리와 카카오게임 이용에 불편을 겪은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짚어야 할 것이 바로 소통 수단에 대한 의존이다. 소통 수단이 무엇이든 소통에서 제일 먼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전달 내용이다. 이메일이 막 유행하던 시절에 손편지를 쓰면 예의 바르고, 이메일을 보내면 예의가 없다는 둥 하는 얘기도 있었다. 이메일의 전송 속도가 빠르다 보니 별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나 안녕과 같은 인사 정도를 보내기도 하는 탓에 전달 속도가 빨라지기만 했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는 관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손편지에도 안녕이라고만 적어 보낼 수 있다. 수단이 가지는 의미는 얼마나 빠르고, 어떤 대상에게 전달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지 수단으로 전달 내용의 중요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화된 전달 수단이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내보내는 것이 맞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만 하더라도 개인의 프로필을 장황한 설명 없이 한 번에 훑을 수 있고, 한 해 주고받는 메시지의 수는 배로 증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떤 내용을 특정 수단을 통해서만 전달해야 할 필요는 없다. 분명 편리함의 이점은 존재하지만, 카카오톡이 불통이라고 해서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SMS를 이용해도 좋고, 전화를 해도 웬만한 내용은 전달할 수 있다. 필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SNS를 통한 소통이라는 것이 전달 주체 간 내용에 좌우되는 형태가 아닌 수단을 두고, 이 수단을 동작하기 위한 내용의 생산이다. 이것이 바로 의존이며,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각종 SNS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정 수단을 계속 이용하기 위해서 내용을 생산하거나 만약 이 수단이 사라지면 소통의 주체도 함께 소멸해버린다.
 
소통의 형태가 변할 수는 있지만, 소통의 주체가 소멸하는 것은 근래 다양한 SNS가 쏟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니까 주체와 주체가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주체와 주체가 연결되어 내용을 전달하다 보니 수단이 사라지면 주체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진지한 소통일까? 아니, 가벼운 소통이라도 되는 걸까?
 
SNS 사용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SNS 사용자는 자신을 소통의 주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되고, 수단에 의존한 소통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이런 얘길 들었다. 문자메시지로 거의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상대방 목소리를 듣고 전화하는 것이 어색하더라고 말이다. 그래서 전화는 잘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결론이었는데, 펜팔 하던 상대방과 집 전화로 길게 통화하다 혼났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이를 단지 문자메시지에 익숙해진 탓만은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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