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 징계안과 YS의 제명…‘朴정권’의 역린
장하나 징계안과 YS의 제명…‘朴정권’의 역린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3.12.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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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재조명]국회의원 제명 역사, YS 제명→부마항쟁 촉발

▲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20회 국회(정기회) 17차 본회의에서 부가가치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재석 222인 중 찬성 210인, 반대 5인, 기권 7인으로 통과됐다.@Newsis

[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11일 오후 5시 20분경 국회 정론관에 여성 초선 의원이 들어섰다.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한 장하나 민주당 의원. 그는 지난 8일 현역 국회의원으로는 처음으로 ‘18대 대선 불복’을 선언했다.

장 의원의 대선 불복 선언에 강력 반발한 새누리당이 즉각 155명의 소속 의원 전원 명의(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 징계안 포함)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징계안을 제출한 터라 국회 출입기자들의 눈은 온통 장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렸다.

이윽고 새누리당의 대선 불복 비판에 “부정 선거 불복”이라고 맞받아친 장 의원의 결기가 국회 정론관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징계안을 “집단적 일탈행위”라고 규정한 뒤 “유권자를 모독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장본인이자 공작정치로 헌정질서를 짓밟은 것은 바로 국가정보원(국정원)”이라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징계안 철회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사과를 촉구했다.

같은 날 국회에서 만난 야권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양승조-장하나’ 징계안을 제출한 데 대해 “1979년의 데자뷔(Dejavu)가 아니냐”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 관계자가 말한 1979년의 데자뷔는 다름 아닌 YS(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제명안이다.

▲ '대선불복 선언'을 한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의 징계안에 대한 입장발표를 했다.@Newsis

제헌헌법(제45조) 당시부터 존재했던 국회의원 제명 조항은 현재 9차 개정 헌법 제64조 3항(의원을 제명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과 제4항(국회의 자격심사와 의원 징계, 의원 제명에 대해서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에 각각 명시돼 있다.

YS 제명과 ‘국시 발언’ 유성환 체포, ‘두 朴’의 역린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79년 10월 4일 국회 본회의, 당시 신한민주당(신민당) 총재였던 YS의 징계안이 통과됐다. 신민당은 유신정권 시절 독재운동의 선봉장에 선 YS와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세력과 이철승·김재광 등 비(非)민추협 측이 만든 야당이다.

유신정권이 문제 삼은 것은 YS의 외신인터뷰 내용이었다. 제3공화국 당시인 1969년 40대 기수론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한 YS는 1979년 10월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 직후 미국 <뉴욕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 철회를 미국 정부에 강력히 요청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발끈했다. YS의 인터뷰를 ‘사대주의 사상’으로 규정한 유신정권은 YS 제명 작업에 돌입했다.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오더(명령)를 받은 공화당 의원들은 YS를 향해 “반국가적 언동을 함으로써 스스로 주권을 모독했다”고 비판하며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쟁취를 외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명을 당한 셈이다.

그 결과는 부마항쟁(釜馬抗爭)의 촉발. 그해 10월 16일∼10월 20일까지 부산과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독재타도-유신철폐’를 외치는 시민항쟁이 발발했다. 부산대학교 시위로 촉발한 부마항쟁은 경남, 창원 시민들과 재야세력, 종교계 등이 총궐기하며 박정희 정권 타도를 외쳤다.

각계각층으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은 박 전 대통령의 ‘역린(逆鱗-임금의 분노를 뜻하는 말)’을 건드렸다. 유신정권의 탄압은 날로 심화됐다. 10월 18일 부산 계엄령을 시작으로, ‘군사재판 회부→마산 및 창원에 위수령 선포(10월 20일)’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6일 뒤 10.26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피살됐고 유신정권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지난 3월 8일 경기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견학 온 일본 학생들과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는 모습.@Newsis

그로부터 7년 후인 1986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철권통치가 이어지던 그해 10월 15일 당시 유성환 신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앞서 유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우리나라의 국시(國是)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라고 말하자 법무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동의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신민당 등 야당이 강력 반발했지만, 이재형 국회의장을 필두로 민주정의당은 ‘국시 파동’을 일으킨 유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8개월여 뒤인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발발했다. 6월 항쟁은 87년 6월 10일∼29일까지 전국각지에서 벌어진 ‘반독재-민주화’ 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낸 87년 체제의 초석이 된 사건이다.

앞서 그해 1월 서울대학교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 사건이 불거진 가운데 같은 해 4월 전두환 정권이 호헌 발표로 장기집권을 획책하자 ‘유성환 체포’와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 등이 도화선이 돼 야당과 재야세력,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노동계, 시민 등이 연합을 꾀했다.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린 전두환 정권은 같은 달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발표로 수습에 나섰다. 전두환 정권의 장기집권 시나리오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순간이다.

박정희 정권으로부터는 34년, 전두환 정권으로부터는 26년이 각각 흘렀다. 하지만 한국 정치 시계는 여전히 1979년과 1987년에 머물러있다.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전방위적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헌법기관인 야당 의원이 ‘대선 불복’을 선언하자 새누리당은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의 돌출 발언을 “정쟁을 위한 것”으로 규정한 데 따른 조치다. 야당 일부 의원들의 개인 일탈이 박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자 정부여당이 일사불란하게 속도전을 전개한 셈이다.

헌법 제46조 제2항이 보장한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는 권리는 간데없고 ‘언어살인’, ‘대선 불복 시나리오’, ‘무서운 테러’ 등의 자극적인 단어로 야당을 궁지에 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양승조-장하나’ 징계안과 관련해 “새누리당 의원 전원 찬성해도 불가능한 게 아니냐”고 반문한 뒤 또한 “(장하나 의원 등의 발언은) 국회법상 징계사유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불의에 항거한 민주이념의 계승과 사회적 폐습 타파의 결과물이다. 철권통치에 나섰던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도 시대의 큰 흐름을 거역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 부른다. 2013년 체제의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국민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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