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운동이 슬픈 까닭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운동이 슬픈 까닭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3.12.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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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안녕세대’ 담론, 정의 공황 시대에 던진 경고

▲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동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6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 캠퍼스에 붙은 대자보를 학생들이 살펴보고 있다.@Newsis

[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경찰이 철도노조(전국철도노동조합)를 압수수색한 17일 오전 누군가가 묻는다. “안녕들 하십니까.” 87년 체제의 표상인 대통령 직선제와 군의 정치적 중립이 나락으로 떨어진 요즘 혹자가 질문한다. “안녕들 하십니까.”

맞다. “안녕들 하신가.” 묻고 싶다. 과거 외적의 침입 등으로 국가 혼란이 가중된 절체절명의 시대에 민초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기 시작한 데서 유래된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이 2013년 대한민국에 충격파를 줬다. 한 대학생의 대자보에서 시작된 그 작은 울림이 어디까지 번질지 두고 볼 일이다.

겨울 한파가 찾아온 지난 10일 한 대학(고려대) 교내게시판에 대자보 하나가 붙었다. 희미한 일상을 뚫고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지성의 전당이라던 대학마저 정치적 무관심이 일반화된 터라 호기심이 일었다.

언어가 세상을 배반하는 탈계몽주의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글로 외치다니…. 과연 무슨 내용일까.

대자보를 쓴(주현우 씨) 학생은 ▲철도 민영화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과 장하나 의원의 제명 징계안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태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하 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이라며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글을 마무리 지었다.

 

▲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 '대학가 벽보 행렬'을 지지하는 학생이 피켓을 들고 있다.@Newsis

‘하 수상한’ 시절, 그렇다. 몹시 뒤숭숭한 나날의 연속이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착된 절차적 민주주의는 후퇴됐고, 김영삼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모든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함으로써 ‘1 대 99’ 사회의 쳇바퀴는 현재도 가속 페달을 밟는 중이다.

“안녕들 하십니까”에 담긴 핵심은 사회적 연대…하지만

위기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한때 ‘힐링’이 사회적 담론의 대세를 형성했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아프다고, 그래서 힐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너희가 아픈 것은 맞는데,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서 힐링을 해야 한단다.” 이것은 민주화 시대 이후 한국 사회를 휩쓴 하나의 중심축이다.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에서 낙오할까 두려운 2030세대가 정치적 의식표출을 삼간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제인식은 있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지’, 혹여나 내가 정치적 피해를 보지 않을까 눈치만 보는, 이해관계 간 고정적 간극을 좁히지 못한 세대다.

그래서 반갑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의 ‘88만 원 세대’ 출간 이후 세대 담론이 ‘3포 세대(취업·결혼·출산)’ 등으로 확장된 터라 또 하나의 ‘집단가치를 표출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문제는 이 대자보 운동이 당사자 운동이 아닌 대리인 운동에 머무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가속화된 빈부·지역·노사·좌우 갈등이 팽배한 가운데 2030세대들은 승자독식 프레임에 갇혀 집단의 가치도 복수의 의견도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다원화된 담론이 무엇인지, 시민의 의견표출을 어떻게 하는지도 익숙하지 못한 세대다. 소통담론은 현학적인 책에서 나오는 실체 없는 공허한 메아리이고 2030세대는 한국 사회의 비사회적 행위에 원킬 당하는 무기력한 세대다.

 

▲ 경찰이 용산 철도노조 본부 등 3곳 압수수색을 시작한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국철도노동조합에서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Newsis

이런 가운데 한 대학교 대자보에서 촉발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운동이 일어났다. 언론도 정치권도 2030세대도 ‘안녕세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말한다. “당신들 같이 깨어있는 젊은이들이 있어 이 세대는 희망이 있다”고. 역사적 사명감을 심어주는 중이다.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 포함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잣대는 이중적이다. 기득권층에겐 “풍족한 세대에 산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세대”로 폄훼 당하기 일쑤다. 반면 지식인층으로부턴 “정치사회적 문제에 깨어있어야 젊은이”라며 알 수 없는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은 세대다. 진정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단 말인가.’

안녕 대자보 운동이 반가우면서도 슬픈 이유도 이 때문이다. 16일 국회에서 만난 진보정당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철도 민영화 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 등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현안들 속에 우리는 이미 ‘생존’ 그 자체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라며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의 씨앗이 이렇게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2030세대는 취업과 결혼, 출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리인 운동을 펼쳤다. 반값등록금, 천박한 결혼문화 철폐, 사교육 등의 당사자 문제에 대해선 ‘혹여나 낙오할까’ 두려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2030세대가 깨어있다고? 우리는 정말 벼랑 끝으로 몰렸다. 그람시의 말대로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는 중이다.’ 기성 정치권은 선거 때만 세대담론을 이용해 2030세대를 끌어들이고, 자본권력층은 우리를 소모품 취급한다. 이 같은 정치의 위기가 지속되고 시민들의 거대 담론이 상실된다면, ‘장기엔 결국 모두 죽는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사자 운동보다는 대리인 운동을 하는 2030세대들에게 진짜 ‘안녕들 하냐’고. 2030세대를 기계 부품 취급하는 권력층에게 질문하고 싶다. ‘계속 안녕할 거 같으냐’라고. 만성적인 하부정치만을 일삼는 기성 정치권에 묻고 싶다. ‘2030세대를 이용만 하고 진짜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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