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민영화, 한미FTA 위배…무상급식 논리와 판박이
철도민영화, 한미FTA 위배…무상급식 논리와 판박이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3.12.2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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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朴정부 ‘철도민영화 안 한다’ 입법 망설이는 까닭

▲ 지난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 광장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근헤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를 환송하고 있다.@Newsis

[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저주의 굿판이 시작됐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지도부의 조계사 은신 소식이 전해진 24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철도 민영화 금지법과 관련해 말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위배되고 입법기술상으로 곤란하다.”

철도노조 등 노동계와 야당이 철도 민영화 금지법 제정을 요구하자 ‘철도노조 파업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 정 총리는 “(철도 민영화 금지법) 입법을 통해 국가 외 투자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한미 FTA에 위배된다”라고 반박했다.

앞서 정 총리는 지난 23일 세종시 총리공관에서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철도 민영화와 관련해 “‘직(職)’을 걸고 얘기하는 것”이라며 민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행정부 2인자 자리까지 내건 마당에 범야권이 이를 믿지 못한다는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관계부처 장관도 모두 나서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범야권의 철도 민영화 금지법 제정 요구를 일축한 뒤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공동결의를 하자”고 했다. 범정부당국이 철도 공공성 확보를 위한 법의 명시 대신 ‘결의안 혹은 워딩’으로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박근혜 정부의 반대근거가 애초 ‘정관이나 면허(수서발 KTX 법인 지분 매각 금지)’에서 ‘한미 FTA 협정 위반’으로 확장됐다는 것, 그리고 그 시점이다.

철도 민영화 논란의 본질? 거대 자본의 습격

▲ 지난 24일 오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철도 공공성 문제와 철도파업 탄압에 대한 소비자 기자회견'에서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회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Newsis

앞서 정부는 지난 21일 “수서발 KTX 법인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면허를 발급하겠다(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며 철도 민영화 방지를 ‘이중삼중’으로 강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인 22일 오전 9시 35분경 경찰은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를 위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해있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 빌딩을 강경 진입했다. 이는 지난 1995년 민주노총 출범 후 처음이다.

경찰의 강경 진입 과정에서 ▲헌법 제12조와 형사소송법 제216조의 영장주의 원칙 ▲형법 제12조 제1항의 불법체포 불법 감금죄 등의 위반 논란이 확산되면서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의 몰락을 자초한 지난 1996년 노동계 총파업 상황과 판박이라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하루 뒤인 23일 ‘철도 민영화 금지법 제정의 한미 FTA 위반’ 논리에 군불을 뗐다.

앞서 KTX 자회사 설립 근거로 코레일의 만성적자에 따른 ‘철도 경쟁체제 도입’의 불가피성을 꼽은 박근혜 정부가 한미 FTA를 전면에 내걸기 시작한 것이다. 철도노조에 대한 공권력 남용으로 벌집을 쑤신 꼴이 되면서 노동계가 전면 투쟁을 선언하자 한미 FTA로 민심 수습에 나선 셈이다.

실제 2005년 출범한 KTX는 그간 연간 5천억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 2013년 현재 부채가 17조 6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철도노조 측에 따르면, 이는 ▲인천공항철도(민자사업) 인수비용 1조2천억 원 ▲경부고속철도 노선 변경으로 인한 사업손실 4조5천억 원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 무산 2조2천억 원 등 정부실패에 따른 부채가 절반(약 45%)을 차지한다.

▲ 정홍원 국무총리가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열린 '2013 희망풍차 함께하는 대한민국, 위기가정에 희망을'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Newsis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철도 민영화의 전 단계냐’라는 점은 해석 논쟁이 불가피한 지점이나, 정부가 공기업의 만성부채를 고리로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강행하자 사실상 ‘국영기업의 공기업 전환→공기업을 복수 자회사로 분리→자회사의 주식매각’ 등의 쪼개기 추진을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는 얘기다.

공기업의 민영화가 단기간에 이뤄지는 작업이 아닌 만큼 박근혜 정부가 철도 등 공기부문의 시설과 운영의 분리와 자회사 설립에 물꼬를 터 민영화와 해외매각의 길을 사실상 열었다는 관측도 이 지점과 궤를 같이한다. 단순히 철도 경쟁체제의 도입을 위해서라면, 자회사 설립이 아닌 같은 노선에 복수의 업체를 경쟁시켜야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관료 등이 총궐기하며 ‘한미 FTA 위반’ 논리를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전후로 사회적 의제로 급부상한 친환경무상급식 도입을 둘러싼 논쟁은 구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당시부터 진보진영의 핵심 의제였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무상급식 의무화 요구에 외교부 등 관료집단은 “무상급식 의무화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된다”라는 논리를 폈다.

진보진영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무상급식 의무화 추진 과정을 상기하며 “당시 정부당국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동등 대우조항’ 등을 이유로 무상급식 조례 제정에 반대했다”라고 말했다. GATT의 동등 대우조항은 ‘외국산과 국내산 농산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어떤가. 무상급식은 이념문제를 떠나 사회적 합의에 이르게 됐다. 이건희(삼성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급식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진보진영이 이명박 정부에서 날치기 처리된 한미 FTA를 극렬히 반대한 이유도 관료의 이 같은 ‘정책적 해이’와 무관치 않았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한미 FTA 논란 당시부터 “한미 FTA의 역진방지(ratchet-래칫) 조항과 ISD(투자자 국가제소권)가 결합되면, 공공서비스 분야는 시장(개방)화 쪽으로만 열려있고, 거꾸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는 절대 못 간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될 조짐이다. 래칫이 적용되는 한미 FTA 유보 조항에 따라 철도 민영화 반대 입법안이 협정의무 위반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한국 공공부문과 기간산업의 민영화 논란 때마다 ‘한미 FTA 위반’ 논리가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게 된다는 얘기다.

한미 FTA의 본질의 공공부문의 사유화다. 이제 한국 사회는 미국 등을 앞세운 해외 자본의 습격 앞에 놓이게 됐다. 거대 자본과 한국 사회공공성의 헤게모니는 이제 시작된 셈이다.

아직 박근혜 정부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꼼수와 위선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보수정권의 거침없는 행보 때문에 한국 사회는 퇴행적 인식론적 뒷배로 거침없이 질주 중이다. 파국열차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묻고 싶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 날에 “다들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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