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공포 정치와 민주주의 퇴행.” 지난 27일 국회에서 만난 황대원 전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 부대변인은 박근혜 정부 1년 차를 정의 내려달라고 하자 이 두 단어로 요약했다.
지난 19일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한 그는 집필 과정 중에 벌어진 청와대의 채동욱(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등을 거론하며 “공포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날은 18대 대선이 끝난 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87년 체제의 산물인 ‘절차적 민주주의’와 2013년 체제의 ‘실질적 민주주의’가 퇴행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지만, 적어도 야권 인사들이 느끼는 체감정치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론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심심치 않다. 단순히 ‘현재 지표’인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지표’인 추세가 급속히 꺾이고 있다. 헌정 사상 첫 과반 대통령이자 그간 콘크리트 지지율로 지난 추석 당시 60∼70%에 달했던 지지기반이 급속히 붕괴되는 모양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12월 넷째 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일주일 전 대비 3.3%p 하락한 48.5%로 조사됐다. 반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같은 기간 2.9%p 상승한 44.5%를 기록했다. 이는 취임 후 최고치다.
이는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총파업 과정에서 강경 대응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의 불통 리더십이 낳은 필연적 결과로 분석된다.
<리얼미터> 측도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월 이후 처음으로 40%대로 떨어졌다”면서 “주초 민노총(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규모 공권력 투입 소식으로 급락했다가 주 후반 소폭 반등하는 듯했으나, 주간집계로는 3.3%p 하락한 채 마감했다”라고 전했다.
‘무위의 정치’땐 지지율 상승→국정운영 전환하자 추락, 왜?
<에브리뉴스>가 새정부 출범 이후 <리얼미터>의 박 대통령 지지율 추세를 분석한 결과, 2월 넷째 주 55%로 시작한 박 대통령은 3월 셋째 주 내각·청와대 인사 실패와 윤창준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 등으로 지지율이 45%까지 급락했다.
‘국민대통합-중산층 70%’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박 대통령이 새정부 인수위원회 구성 초반부터 반(反)통합-불통 리더십에 막힌 셈이다. 취임 초반 박 대통령이 컨벤션 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를 보지 못한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곧바로 상승 추세로 전환했다. 6월 첫째 주 62%를 기록한 박 대통령은 이후 10월 첫째 주까지 60% 안팎의 공고한 지지율을 보였다. <리얼미터>의 이번 주간집계는 지난 23∼27일까지 4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천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조사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2.2%p다.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결과도 지지율 수치만 다를 뿐 ‘추세’에 있어선 비슷한 파동을 그렸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새정부 출범 직후 42%로 시작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5월 52%, 6월 57%, 7월 60% 등으로 상승하더니 추석 전후인 9월엔 63%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후 ‘55%(10월)→56%(11월)→52%(12월)로 하락했다.

<한국갤럽>의 조사는 지난 1월 셋째 주부터 12월 셋째 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연간 5만7천827명(월평균 4천819명)을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하는 방식으로 조사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4%p(평균 응답률 17%)다.
두 기관에서 나타난 박 대통령의 지지율 파동곡선은 ‘인수위 시절인 취임 초반 지지율 하락’→‘북한의 무력도발과 한미 정상회담 당시부터 나타난 외치 효과로 지지율 상승’→‘추석 이후 지지율 하락 추세로 전환’ 등 3단계로 요약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지지율 추세의 전환 ‘시점’과 당시 보인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 변화다. ‘하락→상승→하락’의 3단계 파동을 그린 박 대통령은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갈 당시 무위(無爲)의 리더십을 보였다. 이는 대선 후보 이전 ‘박근혜 대세론’을 만든 침묵의 정치와 궤를 같이하는, 일종의 ‘일을 하지 않아 지지율 하락 요인이 발견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 국정원(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태 등으로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감행하며 대여투쟁의 강도를 높였을 당시만 해도 박 대통령은 ‘이슈와의 3자화’ 전략을 앞세워 정치현안에 거리두기로 일관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 추세와 관련해 “대북정책과 한미 정상회담과 유럽 순방 등에서 보인 박 대통령의 외치 리더십이 지지율을 떠받쳤다”라고 말하면서도 “국정원 댓글 의혹 등 내치에 있어선 침묵의 정치로 불통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내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무위의 정치를 내세운 박 대통령의 국정리더십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 8월 이후다. 여름휴가 이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카드를 선택한 청와대는 이후 양건 전 감사원장 사퇴 파문과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 압력, 청와대의 채동욱 찍어내기 논란 등에 휩싸였고 이쯤 여의도 정가에는 “그 뒤에는 김기춘이 있다”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또한 ▲지난 9월 국회 3자 회담 결렬 ▲지난 11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의 강연 발언 ▲지난 10일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과 장하나 의원 등의 돌출 발언과 철도노조 파업 등에 박 대통령이 강경 대응으로 맞서자 지지율은 이내 대선 득표율(51.6%) 수준으로 하락했다.
‘영남-보수-저소득층’의 집토끼 이외 2040세대와 중도층 등을 잡는 데 실패한 셈이다. 한마디로 외연확장에 실패했다는 얘기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태 등 대치 정국에서 여야 지지층이 갈라지는 흐름이 뚜렷해진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로 촉발된 현재 정국상황이 전 정권에서 빚어진 ‘MB(이명박 전 대통령)-박근혜’ 갈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MB정권 초반 미디어법 등에 침묵하는 박 대통령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침묵의 정치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당시 친박(親朴-친박근혜)계 내부에선 “MB 리더십이 친박계를 궁지로 몰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계파 갈등 해소에 나서지 않는 MB와 친이(親李-친이명박)계 때문에 박 대통령이 정치와 거리두기를 한다는 볼멘소리다.
지금의 박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이 각 정치사안에 ‘장기간 침묵→강공 드라이브’ 등을 반복한 결과 정부여당은 청와대 역린(逆鱗)을 건드릴까 노심초사하고, 민주당 등 야권은 청와대의 불통에 퇴로마저 막히는, 이른바 정치실종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대통합은 간데없고 통치만 남게 된 셈이다.
대통령 취임 1년 차 때 관대한 평가를 하는 국민정서를 감안하면, 경제성장과 공약 이행 등 실질적인 성과 여부가 중시되는 내년부턴 박 대통령의 ‘진짜 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올해 마지막 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 1년 평가와 관련해 “국민들의 뇌리에는 오만과 독선, 불통 정부의 이미지가 각인됐고, 국민들과 약속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은 그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면서 “국민행복시대를 외쳤지만 국민은 끝없는 갈등의 현장 속에서 지내느라 불행한 나날을 보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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