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를 둘러싼 논쟁, 역사의 산증인과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 역사의 산증인과 ‘제국의 위안부’
  • 연미란 기자
  • 승인 2014.07.26 0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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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재조명] 문맥 강조한 박 교수, 무엇을 놓쳤나
▲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광진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소송대리인들이 도서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와 출판사에 대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의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Newsis

[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6월.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이 대한민국을 강타해 7월을 잠식하고 있다. 이 문제는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잇단 친일 발언과 궤를 함께 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의 촉발은 지난달 16일 시작돼 현재 진행형이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이옥선(86) 할머니 등 9명이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지난해 8월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이 명예를 훼손했다며 박 교수와 출판사 ‘뿌리와이파리’를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들은 해당 저서에 대한 출판·판매·발행·광고 등을 금지해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출간된지 1년이 다 돼가는 책 한권이 이제와 논란이 된 이유는 해당 저서에 쓰인 단어 때문이다. 박 교수는 저서에 위안부 피해자를 두고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 ‘매춘’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할머니들은 “저자가 책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이나 일본군의 협력자로 매도할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그러한 모습은 잊고 스스로 피해자라고만 주장하면서 한일간 역사갈등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기술했다”며 “허위사실을 기술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훼손하고 정신적 고통을 줘 배상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지난 9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판매금지 소송 첫 심리에 서면 답변서를 보내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나 ‘일본군 협력자’로 기술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위안부 제도는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이었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당시 자료와 위안부들의 증언에도 다수 존재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극단과 극우. 최근 박 교수에게 쏟아지는 다양한 단어 중 빈도수가 가장 높은 단어다. 물론 일각에서는 박 교수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타당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도서에서 단어 몇개를 지나치게 일반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박 교수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 단어를 쓰게 된 이유를 항변했다.

박 교수는 인터뷰에서 ‘동지’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일본군과의 관계가 다른 나라의 위안부와는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며 “조선인은 다른 위안부들과 달리 표면적으로 일본인이라는 틀을 갖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동지’라는 표현은 일본 입장에서 적의 여자와 우리 쪽 여자라는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일본 제국의 시민으로서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가, 쉽게 ‘같은 편’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식민지 피해자’라는 역사적 맥락은 배재한 채 ‘제국’의 관점으로 시각을 확대해 오히려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조선인이 황국신민, 창씨 개명 등을 거친 후 일본화됐다고 해서, 성(性)을 착취당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동지’라고 표현하기엔 논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매춘과 관련해서 박 교수는 “매춘이라는 단어를 국가에 의한 여성의 착취란 의미로 썼다”며 “그걸 쓴 문맥을 봐야 하는데, 매춘이라고 하면 무조건 다 위안부 존재를 부정한다고 보고 반응한다”며 매춘이냐 강제 연행이냐는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 박옥선(왼쪽부터), 이옥선, 이용수, 강일출, 이옥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광진구 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유하 교수 도서출판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신청 첫 공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Newsis

그러나 문맥을 중요시하는 박 교수는 정작 역사적 맥락과 단어 선택에 있어 세심함을 보이진 않았다. 일단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두고 매춘(賣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사전적 정의를 살피는 최소한의 배려조차 하지 않은 듯 보인다.

사전에서 매춘(賣春)은 ‘돈이나 기타 대가를 받고 성적 상대가 되어준다’는 의미로 쓰인다. 주체자의 자발적 의미가 포함된 셈이다. 특히 이 단어가 성을 ‘파는’ 대상에만 강조·비난을 함축하고 있어 성윤리 관점에서 성을 사고 파는 ‘매매춘(賣買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사회적 합의없이 쓰인 이 단어는 사회적·사전적 본질과 식민지 역사적 과정은 살피지 않고 결과적으로 대가가 오고 간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 오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위안부들에게 가장 가혹한 상황을 만든 것은 업자(포주)”라는 지적도 제기했다. 조선인 위안부 여성을 끌고가 넘긴 업자들도 법적 책임의 테이블에 올려놔야 한다는 얘기다.

조선인 여성이 끌려가는 모든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도 논의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다.

‘끌려갔다’는 결과와 함께 ‘어떻게 끌려갔는지’에 대한 맥락도 살펴보자는, 좀 더 넓은 의미의 해석이 부과된 셈이다. 이 경우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를 묵인하는 오류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선 ‘새롭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이런 구조를 제공한 일본에 책임이 있다는 비난여론이 상충한다. 업자(포주)로 시각을 좁힐 경우 제국주의의 폐혜보다 범죄의 책임이 개인에게 국한돼 본질을 흐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독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뿐만 아니라 성(性), 계급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다. 그만큼 예민하고 또 복잡하다는 얘기다.

박 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두고 논의의 장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많다.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다툴 문제가 아니라 학문의 영역에서 검토하고 논의해야 할 연구 성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술적 논의의 확장이 누군가, 특히 당사자에게 모욕감과 상처를 줬다면 ‘학문적 영역에서 검토하고 논의햐 할 문제’라고 단정지어 반길 수만은 없다. 역사의 피해자이자 산증인에 대한 배려 없이 논의되는 담론은 사회적 합의의 어려움 이전에 논지 자체를 흐릴 수 있어서다.

선의(善意)에서 시작된 일이 악의(惡意)로,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모양새다.

맥락의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실수가 있다면 고치면 된다. 그러나 지금 박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대중에게 사회적 합의없이 엄청난 숙제를 던져놓고 알아서 이해하라는 식이다.

“이번 사건으로 깊이 상처받았고, 가장 피해가 컸던 게 저라고 생각한다”는 박 교수의 억울함에 공감에 가지 않는 이유다.

이번 소송을 돕는 박선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련의 논란과 관련, “박 교수의 책에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기술은 일본 극우세력 주장과 어느 점도 다르지 않다”며 “인식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다음 심리는 위안부 피해를 입증할 증거 등을 보강해 오는 9월 17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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