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형제복지원 다시 거리로, 한종선 “우리가 바라는 건...”
[현장]형제복지원 다시 거리로, 한종선 “우리가 바라는 건...”
  • 연미란 기자
  • 승인 2014.11.08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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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제정…진선미 의원 만나”…7일 안행위 상정 ‘본격 논의’
▲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실종자, 유가족 모임 대표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사진은 지난해 3월(왼쪽)과 이달 5일 모습.@연미란 기자

[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대표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1인 시위를 하던 그를 만난 지난해 3월 이후 1년 7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그와 형제복지원 사건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는 왜 다시 거리로 나왔을까.

한종선 대표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이자 이 사건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 장본인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아 선도를 목적으로 국고 지원을 받는 국내 최대 복지시설이 벌인 인권유린 사건을 말한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내무부 훈령에 따라 부랑자 선도를 목적으로 연고가 없는 장애인, 고아, 일반 시민 등을 무차별적으로 끌고 가 불법으로 감금하고, 강제 노역, 학대, 암매장했다. 저항하면 굶겼고 때렸다.

사망하면 300~500만 원에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가는 충격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현재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513명에 이른다.

당시 사회는 가해자인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에게 2년6개월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복지원은 이름만 바꾼 채 여전히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잔존해 있다.

20년이 훌쩍 넘어 세상밖으로 나온 형제복지원 사건은 그간 책과 방송, 언론 보도등을 통해 많은 이들을 분노케했지만 한종선 대표를 다시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릴레이 시위에 나선지 29일째되는 지난 5일, 국회 앞에서 그를 만났다.

한 대표는 릴레이 시위에 나선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 때(2013년 초)는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는 목적으로 나왔고, 지금은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며 명확한 목표의식을 전했다.

반짝 추위가 잠시 주춤하던 이날 국회 앞은 1인 시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홀로 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확성기를 들고 있거나 독특한 복장으로 시선을 끄는 이들이 각기 사연을 들고 자리를 함께 했다.

덕분에 한종선 대표와 그가 들고 있는 피켓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형제복지원 사건은 여전히 ‘과거형’이다. 그러나 한 대표를 포함한 피해자들은 이를 ‘현재진행형’이라고 정의 내린다. 당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9살 꼬맹이(한 대표는 9살 때인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약 3년간 누나와 함께 이곳에서 지냈다.)가 그 상황을 겪고 세상에 나왔는데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피해자들이 다 죽은 과거형 사건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죄 없는 일반인이 붙잡혀 가 이유없는 인권유린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를 잘 모르고, 인정해주지 않음을 얘기한 셈이다.

국회 다른 쪽 출입구에서 휠체어에 대신 피켓을 맡긴 박태길 공동대표도 “우리가 바라는 건 (보상보다) 부랑자가 아니라는 인정”이라며 “사회악으로까지 보진 않더라도 부랑자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아니라는 걸 국가가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세월호 참사에 힘 보태…“받은 도움 돌려주려는 것 뿐”

지난 3월 23일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의원 등 55명의 의원이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3.24)하고 ‘SBS 그것이알고싶다’가 방영(3.24)되면서 세상을 분노케 했지만, 세월호 참사(4.16)가 터지면서 의도치않은 숨고르기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은 지난 8월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소권과 수사권을 포함해 성역 없는 수사와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연미란 기자

하지만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지난 8월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한 대표는 지지지선언 배경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공감”이라고 말한 뒤 “국가 피해를 당해본 아픔을 알기 때문에 지지를 선언하기로 했다”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 바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 한 상황에서 잊혀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우리가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누는 것일뿐”이라며 지지 선언에 동참한 것이다.

박태길 공동대표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형제복지원 사건이 묻힌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박 대표는 “한 사건이 또다른 사건으로 묻히는구나 생각했다”면서도 “형제복지원 사건이 이슈되면 세월호가 묻히고, 세월호가 묻히면 우리 것이 이슈화되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는 상황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아픔'만 외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의도여부와 상관없이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이들은 기회를 다시 기다릴 수 밖에 없다. 

한종선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대표는 “(우리를 잡아가도록 만든) 내무부 훈령 410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었지만 이것을 일반인에게 적용하고 악용한 건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며 “박 대통령이 ‘이번 정권에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력하게 얘기하면 된다”고 말했다.

법을 만든 사람보다 이를 악용한 사람이 문제라는 점을 지적, 헌법규정이 아닌 내무부 훈령으로 국민의 신체를 구속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 대표에게 1년 7개월 전과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마무리되고 난 이후 계획에 대한 물음에 한 대표는 “아버지와 누나랑 함께 조용한 곳에 강아지를 키우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며 개인적인 꿈을 밝혔고, 공식적으로는 “우리 형들(피해 생존자)과 공동체 마을을 꾸려서 서로 돕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이날 오후 2시 30분 안전행정위 소속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만나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에 대한 논의를 촉구하는 만남을 가졌다.

안행위는 '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은 단순한 과거 한 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피해자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인권문제"라며 "이 법을 제정하여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의 진상과 국가책임을 규명하고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피해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그에 따라 실질적인 보상을 함으로써 이들의 생활안정과 인권신장을 도모"하기 위해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틀 후인 지난 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진선미(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상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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