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CCTV설치 어린이집에서 ‘의심’의 씨앗이 자랐다”
[기자수첩] “CCTV설치 어린이집에서 ‘의심’의 씨앗이 자랐다”
  • 연미란 기자
  • 승인 2015.01.20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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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캡처

[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경악할만한 아동 학대사건이 발생한 후 이를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것은 단연 ‘CC(폐쇄회로)TV’. 인천 어린이집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자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CCTV의무 설치’가 만병 특효약인 것처럼 너나할 것 없이 사설과 각종 법안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CCTV를 설치하면 정말 “최소한 방지”라도 가능할까요? 글쎄요. 실제 학대가 발생한 인천 어린이집도 CCTV가 설치된 곳이었습니다. 심지어 카메라가 떡하니 비추고 있는 정면에서 충격적인 학대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바에 의해도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는 아동학대 근절은커녕 방지조차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의문입니다. 물론 CCTV설치가 어떤 보육교사에겐 의식적인 ‘이성적 자제력’을 심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대학교 1학년일 때 각각 봉사활동(한 달)과 보조교사 아르바이트(6개월) 명분으로 한 사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본 적이 있습니다. 해당 어린이집은 그 동네에서 소위 ‘좀 산다는’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했습니다. 당시 밀레니엄 베이비(2000년 출생)가 원생으로 있어 유명세를 떨치기도 한 시설 좋은 곳이었습니다. 물론 CCTV도 설치돼 있었고, 아이들 점심과 간식을 챙겨주는 ‘이모’도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있던 보육교사는 두 명. 당시 선생님들은 지금 제 나이보다도 어린 24살, 26살이었지만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했고, 보육교사와 아이들의 사이는 꽤 좋았습니다. 그러나 보육교사와 아이의 환상적 조합은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어긋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습니다. 보육교사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아이들은 부모의 지나친 치맛바람에 각각 노출되면서 가끔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좀 산다는’ 동네의 엄마들은 원장을 몰래 찾아 가끔 CCTV를 ‘시청’했습니다. 원장과 엄마들은 철저히 한편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보육교사들은 훈육이 필요한 정당한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아이들을 사각지대로 불렀습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불편하게 했고, 부모와 교사간의 불필요한 의심의 화살이 아이들을 향했습니다. 보육교사도 사람인지라 자신들을 의심하는 부모와 그들의 아이에게 좋은 감정이 갈 리 없었던 겁니다.

사각지대에서는 ‘맴매’로 일컬어지는 벽보기, 손들기 등 약한 벌부터 간식 건너뛰기, 꿀밤, 엉덩이 때리기, 심지어 무시하기 등 아이에겐 다소 가혹할 수 있는 벌도 이뤄졌습니다. 카메라 시선에선 아이를 향해 웃던 보육교사가 사각지대에선 또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겁니다.

보육교사의 이런 이중성, 한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로만 바라보는 게 맞을까요? 인천 보육교사와 같은 일부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지나친 스트레스에 노출된 교사들이 대다수입니다.

CCTV설치가 이들의 스트레스 노출 지수를 높여 아이에게 해가 된다면 그땐 또 어떤 기계적인 방법을 내놓을 건가요. 그땐 정말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앱을 내놓기라도 할 건가요?

하루 종일 애타는 마음으로 아이를 맡긴 어머니의 마음은 백 번 천 번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맡긴 어머니도 다른 환경에서는 보육교사와 같은 ‘근로자’입니다. 근무 시간 내내 CCTV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면, 그걸 회사 대표가 가끔 찾아본다면. 누구도 그런 일터에서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CCTV설치는 아동학대 근절의 근본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처벌을 강화하는 편으로 가야합니다. CCTV는 보육교사 전체를 잠재적 학대범으로 간주하는 반면 처벌강화는 학대를 한 ‘당사자’만을 겨냥합니다.

보육교사 모두의 스트레스를 극대화시키면서까지 내 아이를 직접 살필지, 말지는 해당 원의 장과 보육교사 학부모 등 모두의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인천 아동학대 사건 이후 만난 한 어머니도 CCTV설치가 근본적인 대안은 되지 못할 거라고 우려했습니다. 이 발언으로 마무리를 대신합니다.

“인천 사건 이후 가슴이 철렁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다행히 아이에게선 별다른 징후는 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무언가 의심되는 상황이 와도 선생님(보육교사)에게 뭐라고 물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받는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갈까봐 그저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CCTV설치는 서로에게 부담이 될 게 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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