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환영, 대학은 외면…´인문학 아이러니´
삼성은 환영, 대학은 외면…´인문학 아이러니´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5.03.2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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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인문학 위기, 기업은 인문학 붐…´왜´

[에브리뉴스=윤진석 기자] 대학 인문학은 한숨을 쉬는데 사회 인문학은 최근 붐을 타고 있다. 일련의 현상에 주목한다.  

흔히들 대학에서의 인문학은 위기라고 한다. 기로에 선 인문학은 교육 당국 방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교육부는 올해 산업수요중심정원 조정 선도대학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학, 의학계열 등 산업 수요가 부족하다는 고용노동부의 진단을 전제로 대학 교육과 산업 수요를 맞춰나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 탐구나 공적 서비스에 주안점을 두는 대신, 산업 현장 인력을 양성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여기에 문·사·철 등 인문사회계열의 구조조정, 대량 감축으로 이어질 거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학 인문학이 기로에 섰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사진은 교보문고 인문학 코너ⓒ윤진석 기자

그동안 인문계열 졸업자들은 취업하기 어려운 형태를 보여왔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얼마 전 발표한 2014년 전공별 대학생 취업률에 따르면 공학계열 졸업생 취업률은 65.6%인 데 반해 인문사회계열은 45.5%에 그쳤다. 여기에 교육부 등에 따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SKY 출신의 인문사회계열 졸업생의 취업률 역시 지난해 59.1%에 머물렀다. 

인문계열 취업률은 해마다 줄고 있는 추세다. 교육부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해준 현황으로는 지난 2012년 인문계열 취업률은 59.7%에서 2013년 기준 57.9%로 떨어졌다. 이와 달리 공학계열은 2012년 74.9%에서 2013년 76%로 1.1%증가했다. 결국 사회 기업군에서 인문계열졸업생을 기피하니, 대학에서도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선호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 삼성 서초 사옥ⓒ뉴시스

"기업인이 인문학 붐 주도"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에서는 '인문학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인문학 책이 국내에서 70만부를 돌파한 가운데 특히 기업가에서는 '인문학 훈풍'이 불고 있다. 

이와 관련 도가 철학 전문가 최진석 서강대 교수는 <독한 습관 강의>라는 인문학 강연 자리에서 "한국 사회의 인문학 열풍은 대학에서 부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불고 있다.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 그룹은 바로 기업"이라고 지목했다. 

실제 삼성전자 등 대기업 대졸 공채 키워드로 인문학이 부각되고, '올해 대기업 채용은 인문학이 대세다'라는 진단까지 들려오고 있다. 삼성 SSAT(삼성직무적성검사)에서는 근현대사 출제가 다수 늘었다는 얘기부터 현대차는 역사에세이, 현대중공업은 국사, SK인적성검사에서는 한국사 10문항, LG그룹·GS그룹·CJ그룹 등에서도 상식 영역에서의 인문학적 지식 문항이 증가했다고 알려졌다.

포스코의 경우는 해외연수, 봉사활동, 제2외국어 점수 등에 가점을 주는 대신 한국사 자격증에만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금융권인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도 채용지원서에 근래 읽은 인문서적을 기재하도록 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인문학이 경영을 바꾼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문학은 조직 창의성 제고, 미래경영 환경 예측, 제품개발 및 디자인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인문학의 가치를 재평가했다. 또한 삼성경제연구소는 기존의 지식기업에서 철학, 문학, 인문학, 리더십 등도 함유하는 컨설팅 회사로의 변신을 꾀했다. 기업들이 인문학 요소에 주안점을 두는 데에는 협동심, 배려심, 사고력, 소통역량 등 인문학적 소양 여부가 업무 성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11년 최고경영자(CEO)회원 498명을 대상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경영 능력에 도움이 되는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7.8%가 '도움이 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가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윤진석 기자

"문사철은 중요, 시대를 이끌어간 것은 사상"

일각에서는 국내 인문학 붐이 불기 시작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혁신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킨 애플 CEO인 고 스티브잡스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철학을 전공한 잡스는 평소 "애플은 기술과 교양의 교차로에 있다"며 인문학과 공학을 융합, 애플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 때문인지 철학, 예술, 심리학, 교양 등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하는 국내 기업인들의 행보도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이 지난해 연말 사장단 회의에서 외부 인문학자를 초청, '유교, 잊힌 삶의 기술'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듣는 등 최고경영자들의 인문학 강연 듣기가 늘어나는 모습이다.

더불어 재벌 오너들의 인문학 강조 발언도 재조명되고 있다. 평소 논어를 즐겨 읽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손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4월 한 대학 강연에서 "사색하지 않고 검색하는 우리가 당면하게 될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가 인문학에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 부회장도 대학에서 서양사학을 전공했다. 정 부회장의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도 "경영을 잘하려면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고 말한 바 있다. 이밖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도 자녀들에게 후계자 양성을 위한 제왕학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어쨌거나 인문학을 둘러싼 대학과 기업은 대조적인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최진석 교수는 앞서 언급한 강연에서 "기업인들은 항상 생과 사의 경계에 있다. 자기가 한 의사 결정이 승패로 판가름난다. 역사적으로 제3의 문명을 만든 이들은 정치인 관료가 아니라 상인들이었다. 상인들의 예민한 더듬이로 볼 때 상상력과 창의성이 없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했고 그런 관점에서 인문학을 통해 경영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럴수록 대학에서의 인문학이 바로 서야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는 <에브리뉴스>와의 통화에서 "문사철은 중요하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건 사상이다.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것도 루소라든가, 철학자들이 주도했다. 사회 정신, 민족 정신, 민족 사관 등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며 대학에서 인문학이 고사되지 않도록 "인문학과는 살리되 기존 정원이 많은 문제 등은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에서는 일상 생활 속 보다 넓은 의미의 인문학 개념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평소 인문학 확산에 노력하는 서울 거주 경영인 최모(남·40대)씨는 "강단 인문학과 사회에서 얘기하는 인문학은 다르다"며 "인문학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다. 사람에 대한 연구, 배려 등 인간과 인간 관계와 인간 행동에 대해 이해하는 학문 등의 개념인데, 이 같은 인문학 개념이 일상속에서 잘 정립되지 못한 상황이다.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을 비롯해 법, 제도, 교육, 문화 등이 포함된 훨씬 넓은 개념의 인문학이 일상 생활에서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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