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의 집 현대시박물관, 만해 한용운을 보다
한국시의 집 현대시박물관, 만해 한용운을 보다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5.04.02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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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산책> 한국 시인의 숨결과 생명의 호흡을 따라

▲ 한국시의집 현대시박물관ⓒ윤진석 기자

[에브리뉴스=윤진석 기자] 서울 종로구 혜화동 근처에 위치한 한국시의집 현대시박물관은 2008년 11월 1일에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현대시의 출발이라고 알려진 최남선 시인의‘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된 날인 1908년 11월 1일로부터 딱 백년 후에 개관한 것이다.

현대시박물관에는 백 년 동안을 이어온 섬세한 시혼들의 속삼임에 대한 모든 것이 고스란히 보관돼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현대 시인들의 개성이 묻어나는 초상화와 사진실, 시인의 숨결과 생명의 호흡까지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육필원고 족자실, 시인들의 휘호와 어우러져 우리의 멋에 취할 수 있는 서예병풍실 등 풍성한 시연구 자료실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한국시의 집에는 서울시인학교, 교양 계간시지 ‘님’, 그리고 도서출판 시학 등이 함께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만해학술원으로 유명하다. 시의집 내부로 들어가도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만해생애와 님의침묵 도자화실, 그리고 백여 권의 희귀시집 등이 전시된 곳이다. 특히 그림으로 그려진 만해의 생애는, 밖으로 튀어져 나올 것만 같이 역동적인 모습이다.

▲ 만해 한용운 서적ⓒ윤진석 기자

만해학술원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만해의 삶은 역동, 그 자체이다. 고향 홍성에서 태어나 결혼한 몸이었으나, 갓 아기를 놓은 아내에게 “미역 사올게”라고 말한 뒤, 그 길로 홀연히 백담사에 들어가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배우며 진리의 원천을 탐구하는 등 기이한 발자취를 남겼다. 때로는 세계 선진문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베리아 행을 도전해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기도 했다. 이후 중추원과 통감부에 승려의 결혼을 허용해달라는 건백서를 제출하게 된 것을 비롯해 훗날 승려이면서도 재혼까지 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했다.

관계자는 기자에게 "백담사에서 삭발 염을 한 뒤, 화엄경과 반야심경을 통달하는 등 다양한 경전의 섭렵과 참선 수행에 정진하였던 만해는 민족불교, 대승불교의 정신을 구현하면서 그 시대의 빛과 보살의 역할을 불교가 해야 한다는 자신의 입론을 정리했다"며 "이는 다양한 불교개혁운동 및 만해 사상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 만해한용운 일대기 그림ⓒ윤진석 기자
만해의 기탄 없는 행보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옥중에 수감되었을 때도 계속된다. 그는 옥중투쟁의 3대원칙을 정해서 몸소 실천했다. 첫째, 내 나라를 찾는데 누구에게 변호를 부탁할 것이냐, 둘째는 온 천지가 다 감옥인데 호의호식하려고 독립운동 하지 않는 이상, 사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고, 셋째는 보석을 요구하지 말자는 것이 만해가 세운 원칙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 가지 일화도 있다. 하루는 재판장이 "피고는 왜 말이 없느냐고 다그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에 만해는 "조선인이 조선 민족을 위하여 스스로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백번 마땅한 노릇인데 일본인이 어찌 감히 재판하려 하느냐"며 오히려 재판장에게 호통을 쳤다. 자유를 향한 자주성과, 타협하거나 굴하지 않는 저항성이 만해의 뼛속을 이루는 근간임을 가늠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말년에 이르러 성북동 막바지에 집 한 칸을 짓게 된 만해가 일부러 북향집을 지은 일화도 눈길을 끈다. 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총독부 청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던 탓에 주춧돌을 돌려 놓아 북향으로 지은 것이 만해의 숨은 속뜻이었다. 이 또한 만해의 굽히지 않는 저항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 

만해가 66세가 되던 1944년 6월 29일, 그는 영양실조로 거의 굶어 죽다시피 해서 생을 마감했다. 학병징병을 거부하고 일체의 배급을 거부하였던 만해의 육신은 ‘타다 남은 재는 다시 기름이 되었습니다’라는 그가 남긴 시구처럼 투지어린 정신을 남겨두고는 홀연히 사라진 것이었다. 이를 전한 관계자는 "만해는 우리역사의 민족운동가요, 불교사상가요, 근대 시인으로서 그 정신만은 영원한 자유에의 바람을 머금고 살아 숨쉴 것"이라고 전했다.

시인 고은선생이 명예관장으로 있는 한국시의 집 현대시박물관은 평생을 만해학 연구에 몰두해온, 김재홍 문학평론가가 평생의 사비를 털어 만들었다. 김재홍 관장은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자신이 배우고 얻은 것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무릇 시란, 그 나라 정신의 꽃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 시의 등불이다. 어두운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혀보고자 하는 뜻에서 문을 연 만큼, 한국시의 집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희망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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