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여성 캐릭터 변천사, ´70년대~2000년대´
드라마 여성 캐릭터 변천사, ´70년대~2000년대´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5.04.15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착하지 않은 女´ 전성시대가 되기까지

[에브리뉴스=윤진석 기자] 대중 드라마는 시대를 반영하는 또 다른 거울이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은 브라운관 속 삶이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 우리들이 사는 세상과 어딘지 닮아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흘러도 드라마가 주는 희노애락, 카타르시스는 어디 가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속 여성 캐릭터의 변모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70년대부터 2000년대 각 시대를 대표하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부터 그리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드라마까지, 한국의 여성 캐릭터는 어떤 변화를 거쳤을까? 몇편의 드라마를 통해 가늠해본다.

70년대, "운명에 순응"

▲ 드라마<여로>스틸컷 캡처
70년대 한국전통의 여인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편의 드라마가 방영됐고 전국을 강타했다. 다름아닌 여필종부 삼종지덕의 대명사 <아씨>와 모진 운명을 지고지순으로 극복하는 여주인공 분이의 일생을 담은 <여로>.

일일연속극의 포문을 연 <아씨>는 순종과 희생을 미덕으로 삼은 여주인공 ‘아씨’의 굴곡진 인생을 담아내어 장장 253회까지 걸쳐 방송되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였다. 당시 <아씨>가 방영되던 시간대는 전국의 수돗물 사용량이 대폭 줄어들었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에서 50년대에 이르는 역사의 격동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아씨’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모진 구박과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인물이었다. 인동초처럼 인내하는 외유내강의 한국 전통의 여인상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후 전파를 탄 <여로>는 일일연속극의 최고조를 이룬 드라마였다. 주인공 분이(태현실분)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소박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훗날까지 정신미약자인 바보라고도 할 수 있는 남편 영구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순애보적 여성이다. 자신을 중상모략하고 괴롭혔던 시어머니와 시누이까지 사랑으로 용서하는 넓은 아량과 관용을 보이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런데 이들 여주인공은 순종과 희생을 미덕으로 삼는 한국전통의 여인상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같은 선상에 있지만 수동과 적극적인 부분에서는 조금의 차이를 보인다. <아씨>가 모진 운명에 순응하며 수동적인 행동을 취하는 인물이라면, <여로>의 분이는 희생과 순종은 하되 굴곡의 운명을 이겨내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80년대, 보다 입체적으로

80년대부터 컬러 TV가 보급됐고, 여성캐릭터도 기존보다는 입체적이고 개성적인, 다채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가부장적 제도가 흔들려가는 시대상을 보여주듯 자아의식이 뚜렷한 여성캐릭터가 등장해 사랑을 받는 가 하면, 사랑과 욕망의 화신이면서도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불안전한 자아를 드러내는 여성 캐릭터도 주목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대박 시청률을 기록했던 두 편의 드라마는 <토지>의 서희와 <사랑과 야망>의 미자이다.

박경리 원작으로 KBS에서 방영한 <토지>의 최서희는 일제강점기 시대 상황속에서도 역경을 이겨내는 강한 집념의 소유자다. 한 조사에 따르면 <토지>의 서희는 우리나라 역대 드라마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으로 꼽힐 정도로 도도하고 똑부러지는 여성이다. 서희(최수지)는 강자에게는 더욱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당차고 불같은 성정을 지닌 한편 냉철함과 차분함으로 목표에 접근할 줄 아는 뛰어난 지략을 가진 인물로 어린 시절 빼앗겼던 땅문서를 결국에는 모두 되찾아 몰락했던 집안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또한 과감히 자신의 종이었던 길상과 혼인하는 서희의 모습은 사회제도에 억압받는 운명적 관습에 순응하는 것이 아닌 개척자로서의 이미지로 여성시청자들의 이상을 대변했다.

시청률 78%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빅히트를 친 <사랑과 야망>여주인공 미자(차화연)는 영화배우로 성공하는 등 화려한 욕망을 쫓으면서도 사랑에 목말라하는 이중적 모습을 통해 전통에 순응하지도, 완벽하게 독립적이지도 못한 당시의 여성들의 모순되고 혼란스런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 드라마 <아들과 딸>오프닝 화면 캡처
90년대, 주체적인 여성

90년대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대변하듯 주체적인 여성들이 사랑을 받았다. 1992년에 등장한 MBC드라마 <아들과 딸>은 남아선호사상에 맞서 적극적 주체로 살아가는 여성을 내세우며 시청률 60%를 기록할 만큼 사랑을 받았다. 주인공 후남이(김희애 분)는 이란성 쌍둥이 귀남이와 달리 구박과 냉대 속에서 성차별을 겪으며 자란 인물이다. 하지만 보란 듯이 운명을 개척하고 독립해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한 귀남이 보다 훨씬 성공해 그토록 자신이 원하던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나라의 불평등한 성차별에 대한 문제인식은 물론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욕구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는 드라마로 호평받았다.

1995년에는 당차고 씩씩한, 자유로운 바람의 향기를 지닌 여성이 눈길을 끌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귀가시간이라고 불리었던 SBS드라마 <모래시계>의 여주인공 윤혜린(고현정 분)이다. 5.18민주항쟁, 삼청교육대 등 격동의 시대를 담은 <모래시계>자체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이었지만, 그 속에서 윤혜린은 시대의 반항아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당찬 CEO로 뚝심있게 자신의 길을 가는 의연한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관심을 모았다.  

2000년대 결코 ‘착하지 않은 그녀들’

2000년대 들어와서는 더욱 강인한 여성이 다가왔다. MBC드라마 <대장금> <선덕여왕> <동이> 등 불굴의 내공을 지닌 여성 중심의 여성을 내세운 장편사극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특히 <선덕여왕>에 나온 ‘미실’이란 캐릭터는 뛰어난 미모와 엄청난 카리스마를 자랑하며 왕들과 화랑들을 휘어잡으며 천하를 호령한 여걸로 등장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방송 화면 캡처

KBS2TV드라마 <직장의 신>은 여성 직장인들을 위한 히어로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24개의 자격증으로 무장한채 정규직을 거부하고 자발적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미스 김은 슈퍼우먼 이상의 업무성과를 보여주며 드라마 안팎을 놀라게 했다. “회사를 위해서 동료를 위해서 상사를 위해서 일하지마. 오로지 너 자신만을 위해서 일해. 그것만이 네가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이야”라며 비정규직 업무로 힘들어하는 여자동료에게 따끔하게 충고하는 미스 김은 여성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영웅이었다.

SBS드라마 <야왕>의 주다혜는 결코 착하지 않은 여자주인공을 대표하고 있다. "내 행복을 위해 사라져 줄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 애인을 배신하고 재벌2세와 결혼한 주다혜는 이후 퍼스트레이디로 오르기까지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욕망의 화신 자체였다. 악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는 당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점령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런가하면 JTBC드라마 <밀회>의 여주인공은 제자와의 진정한 사랑에 빠지면서 당당한 불륜, 당당한 이혼, 당당한 내부고발자로서 자신의 죄값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최근에는 평범하지만, 뜨거운 피를 가진 보통의 착하지 않는 여자들을 전격 내세운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KBS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남편에 대한 원망을 안고 살아가던 요리연구가 순옥(김혜자분)이 남편이 사랑했던 장모란(장미희 분)을 보자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그녀의 가슴을 발로 차는, 이른바 ‘발킥 신공’을 보여주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이제껏 보지 못한 신선한 재미를 안겨줬다.

거기다 아픈 장모란을 집에 데려와 요양하는 데 도와는 주되 태연히 “세컨드”라고 주변인들에게 소개하는 모습과, 그런 얘기를 듣고도 가족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가족애를 느끼는 장모란의 모습을 통해서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따스한 인간애가 뒤섞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주저하지 않는 3대 여자들과 주변여자들까지, 이 드라마에 나오는 여성캐릭터는 미움과 기쁨이 뒤섞인 채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시청자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 공감대를 얻고 있다. 

< 저작권자 © 에브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기사제보 : 편집국(02-786-6666),everynews@everynews.co.kr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에브리뉴스 EveryNews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진미파라곤) 313호
  • 대표전화 : 02-786-6666
  • 팩스 : 02-786-6662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0689
  • 발행인 : 김종원
  • 편집인 : 김종원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열
  • 등록일 : 2008-10-20
  • 발행일 : 2011-07-01
  • 에브리뉴스 EveryNews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1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에브리뉴스 EveryNew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verynews@ever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