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남영진] 한국 칠레 첫 자유무역협정 14년…미국 중남미 잇달아 이젠 20여개국과 협정
[논설 남영진] 한국 칠레 첫 자유무역협정 14년…미국 중남미 잇달아 이젠 20여개국과 협정
  • 남영진 논설고문/행정학 박사
  • 승인 2018.03.1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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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남영진 논설고문]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남미를 좀 얕잡아 본다. 경제위기가 오면 ‘아르헨티나 사태’처럼 포퓰리즘을 들먹이고 콜럼비아의 마약전쟁과 우고 차베스 정권 이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까지 이어지는 반미주의 베네수엘라의 혼란상을 떠올린다.

남영진 논설고문
남영진 에브리뉴스 논설고문

게다가 중미의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그리고 남미북부 볼리비아 페루의 테러와 정치적 불안정 등 아프리카보다는 낫지만 동남아나 중동의 여러 나라들처럼 후진국 반열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현지를 방문하고 나면 이런 인식에 의문이 생긴다. 아직도 안데스 고원이나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밀림지대라면 몰라도 적어도 각국의 수도 백화점에는 고가 물품이 넘쳐흐르고 미국의 경제지배로 서구화의 분위기가 확연하다.

지난 2월 말 30년여 만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엄청난 변화를 실감했다.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은 1만4,500달러여서 3만 달러 시대의 한국에 절반정도지만 삶의 질은 우리보다 나은 것 같다. 산티아고 지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구 1,750만명의 거의 절반인 800만명이 몰려있어 중요한 활기찬 소비시장이다.

한국은 지난 2월 21일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 등 중미 5개국과 동시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한국과 양측은 2015년 6월 FTA 협상 개시 이후 2년 8개월여 만에 협상 관련 모든 절차를 완료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중미 5개국과 동시에 FTA를 체결한 첫 아시아 국가가 됐다. 이번 협정으로 우리나라는 자동차, 철강, 가전, 섬유, 화장품 등 품목의 수출이 늘고 중미에서는 망고, 체리,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과 커피 등을 많이 사들일 것이다.

2011년 8월 중국과 코스타리카 외에 중국, 일본이 중미 국가와 체결한 FTA는 전무한 상황이다. 따라서 중국,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우리 기업의 중미 시장 선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004년 칠레를 필두로 지난 14년간 미국 유럽 싱가포르 아세안 호주 뉴질랜드 인도 페루 콜롬비아 등 20여 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다(多)무역협정국이 됐다. 이미 칠레는 전 세계 54개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아직도 자유무역시장은 많이 남아있다.

한국은 칠레, 페루, 콜롬비아에 이어 북미와 남미를 연결하는 FTA 네트워크로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거세지는 통상압력과 한미FTA 재협상 압력에 맞서 우리 기업들이 북미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제3의 루트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5월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코스타네라 센터(Costanera Center)' 외벽에 설치한 '갤럭시 S8'·'갤럭시 S8+' 정식 출시 카운트다운 광고. '코스타네라 센터'는 총 62층, 300m 높이로 중남미 최고층 빌딩이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지난해 5월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코스타네라 센터(Costanera Center)' 외벽에 설치한 '갤럭시 S8'·'갤럭시 S8+' 정식 출시 카운트다운 광고. '코스타네라 센터'는 총 62층, 300m 높이로 중남미 최고층 빌딩이다. [삼성전자 제공]

이를 통해 냉장고 철강 등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압력을 견뎌내며 대미 수출의 우회루트를 개발해 국면 전환을 이어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리나라의 첫 FTA 체결국은 알다시피 2004년 4월 1일 체결한 칠레다. 칠레는 이미 자유무역협정을 많이 체결한 뒤라서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한국은 협상개시 후 5년이라는 긴 준비 과정을 거쳐 발효됐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방문에 이어 98년 11월에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에서 한국과 칠레가 FTA 추진에 합의했고 2003년 2월에 정식 서명했다. 2004년 2월에 국회 비준동의로 2004년 4월 1일부터 한국·칠레 FTA가 발효됐다.

당시 포도 농가와 어민들이 반대하고 첫 무역협정의 결과에 걱정을 많이 했던 정부 당국은 협정후 1년간 칠레에 대한 수출 증가율이 이전 9.6%에서 58.2%, 2년차에는 52.6%로 대폭 커지자 일단 안도했다.

특히 자동차, 휴대폰, 캠코더, PDP 등 첨단제품의 수출이 급증했다. 반면 칠레로부터의 수입은 주로 포도와 포도주, 돼지고기 홍어 오징어 등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늘어났다.

칠레는 2006년과 2007년 중국, 일본과 각각 FTA를 체결했다. 한국은 칠레에서 2,3년간의 독점적 지위를 잃고 한·중·일 3국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한인성당 인근 벽에 그린 그라피티 [남영진 고문]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한인성당 인근 벽에 그린 그라피티 [남영진 고문]

칠레와의 FTA 체결 목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지역무역주의의 확산에 대응하고 둘째는 안정적 수출시장과 구리 등 원자재의 수입시장 확보를 위해서였다. 전기·전자분야의 제조업에 구리의 확보가 필수적이어서 구리의 30%를 공급해온 칠레와의 FTA는 상호 보완책이 될 수 있었다. 셋째는 칠레의 투자시장이 확대되고 칠레를 거점지역으로 남미 공동시장(메르코수르)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려 한 것이다.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칠레에 대해 수출은 58.2%, 수입은 54.3%가 늘었다. 업종별로는 관세가 철폐된 자동차, 휴대폰, 캠코더, 컬러 TV 등의 수출이 크게 늘었다. 반면 구리 등 원자재와 포도주 등의 수입이 증가했다. 염려했던 포도, 오렌지 등 농산물 수입은 계절이 정반대여서 피해가 예상보다 적었다.

현재 산티아고 시내에 돌아다니는 고급차중 현대기아, 쌍용차가 독일 미국 일본차와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차가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교민들이 뿌듯해 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하자마자 이틀간 한인교포들 가게가 많은 지역인 가온과 하누리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남쪽 파타고니아 빙하지역 바다에서 잡히는 메로전골과 한국에서 수입한 꽁치, 고등어구이, 김치 돼지고기전골과 칠레와인, 맥주를 곁들여 ‘지구적’으로 먹었다.

200여개의 한인가게와 한인 재래시장, 한인 천주교성당, 영락교회 소망교회 등 4개의 개신교회가 밀집한 구도심이다. 30년 전에 와본 적이 있다. 서울의 남산과 비슷한 산 크리스토발산과 교민들이 마포강이라 부르는 마포초강이 흐르는 정겨운 장소다. 이곳은 길가 벽에 그라피티가 예쁘게 그려진 서민지역이라 남미 특유의 분위기가 난다.

파타고니아산 메로매운탕과 한국서 수입한 꽁치 고등어구이를 함께 파는 산티아고의 한인식당 [하누리/남영진 고문]
파타고니아산 메로매운탕과 한국서 수입한 꽁치 고등어구이를 함께 파는 산티아고의 한인식당 [하누리/남영진 고문]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중남미에서 세 번째 많은 1,800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는 산티아고 교민들은 이제 칠레 젊은이들이 들고 다니는 삼성 모바일폰의 컬러링 소리에 익숙하다. 백화점, 대형 쇼핑몰의 가전제품 가게에 LG와 삼성 올레드TV가 석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교외의 고급주택가 중심에 위치한 파라벨라, 파리스, 점보, 이지 등 4개의 백화점이 밀집해 있는 쇼핑몰에서 60인치 평판 올레드TV가 무관세로 200여만 원에 팔려 서울의 절반 값이었다.오히려 같이 간 아내가 “한국에서 너무 비싸게 파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1978년 이곳에 이민을 와서 20년 전에 칠레교민회장을 지낸 최선택씨(65)는 “95년 김영삼 대통령 방문 때 교민회장으로 정부 당국자들과 만났을 때 조심스레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가능성을 타진했었다”며 “그후 10년 만에 체결되고 14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역발상으로 밀어붙인 것이 성공해 우리나라가 국운이 있었던 것 같다”며 칠레를 통한 남미시장에서의 ‘선점효과’를 치하했다. [산티아고에서]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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