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영진] 파타고니아, 빙하와 바람 앞에서는 경외와 겸손할 수밖에
[칼럼 남영진] 파타고니아, 빙하와 바람 앞에서는 경외와 겸손할 수밖에
  • 남영진 논설고문/행정학 박사
  • 승인 2018.03.1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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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남영진 논설고문]파타고니아는 200만년이 넘은 빙하와 호수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그러니 당연히 3000m 안데스 산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인간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배를 타고 회색 호수를 건너 빙벽 밑에 접근해 올려다보면 ‘파란 얼음’벽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인디오 원주민들이 이 파란하늘과 파란 빙하를 보며 ‘파이네’로 불렀다 한다.

작은 인간의 덧없음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하늘과 땅 사이의 소중한 존재임도 느끼게 된다. 파타고니아를 대표하는 곳은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와 아르헨티나의 빙하국립공원이다

지난 2월초 개그맨 김병만 족장이 이끄는 ‘정글의 법칙’팀이 이곳을 다녀가 지금 한창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파타고니아 빙하지대를 3월초 1주일간 다녀왔다.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사진=남영진)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사진=남영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공항 곳곳에 대형사진으로 걸려있는 국립공원 ‘토레스 델 파이네’를 2박3일, 바로 북쪽 아르헨티나령 산타크루즈 주의 라 갈라파테시와 엘 찰텐지역 사이 ‘빙하국립공원’을 3박4일간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 왔다.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 파타고니아는 칠레의 태평양쪽 항구도시 푸에르토 몬트와 아르헨티나의 콜로라도 강을 잇는 남위 40도 이남지역을 말한다. 서쪽은 빙하와 산을 품었고 동쪽은 고원과 낮은 평원을 지나 대서양까지 이어지는데 그 사이를 안데스 산맥의 지맥인 파이네 산맥이 가로지르며 달려간다. 한반도 5배의 광대한 대지에 인구가 200만명이 못되는 광야에 간간이 목장이 있다. 파타고니아 안데스는 해발 고도 3500~3600m이며, 끝 지역에서는 2000m 안팎으로 낮아진다.

3월 3일 산티아고에서 아침 8시에 국내선을 타고 3시간여 만에 마젤란 해협의 중심도시인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했다. 남위 51도. 세종기지가 있는 남극대륙을 가려면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간다.

더러는 더 남쪽인 티에라 델 푸에고(불의땅)섬에 있는 아르헨티나령 우수아이아 항구에서 배를 타기도 한다. 푼타아레나스의 유일한 교민이 경영하는 신라면집에서 점심만 먹고 곧바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라면집 집 벽에는 남극취재를 다녀간 한국 방송사들의 기자들 명함과 이곳을 찾았던 김병만, 박영수씨 등이 주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빽빽이 붙어있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의 필자(사진=남영진)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의 필자(사진=남영진)

산티아고에 사는 선배 부부가 우리 부부의 가이드격으로 함께 했다. 또레네 파이네 국립공원을 보기위해 공항에서 3시간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 칠레 독립영웅인 오히긴스 국립공원의 입구인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었다.

1주일 후 돌아오는 길에 첫날 경유했던 푼타 아레나스에서 1박하면서 우리나라 땅끝마을처럼 ‘세계의 끝’(Fin de Mundo)이라는 지점에서 마젤란 해협에 정박해있는 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파타고니아의 어원은 1520년 이 지방을 탐험하던 마젤란 일행이 원주민의 발자국을 보고 이름을 붙인 '커다란 발'이라는 뜻이란다. 원주민어로 '황량한 해안'의 뜻이라는 설도 있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그 땅을 ‘거인들의 땅’이라 불렀다. 마젤란이 이끄는 원정대가 원주민 떼우엘체 족과 마주쳤을 때 원주민들의 평균 신장은 그들보다 20cm 이상 컸다고 한다. 이제는 거의 멸종됐다. 마젤란은 스페인 소설에 나온 거인족 ‘파타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포르투갈인들이 아마존 밀림의 거대함을 보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여전사 ‘아마존’이라 불렀던 것처럼.

원주민어로 ‘블루 타워’를 뜻하는 토레스 델 파이네는 대초원 지대에 3000m의 높이로 치솟은 거대한 바위 산군이다. 남미 최고의 비경이지만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강풍으로 맑던 하늘에서 순식간에 눈비가 쏟아지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불어 댄다.

둘째날 본격적인 발마세라 빙하구경을 나가는 호수에서 마젤란이 ‘최후의 희망’(Ultima Esperanza)라고 불렀던 절벽지대를 지나면서 비바람이 불어대 결국 목적지까지 가지 못했다.

대신 돌아오는 길에 추위를 감안해서인지 빙하에서 떼어낸 200만년(?)이나 된 빙하얼음을 넣은 위스키를 승객 모두에게 한잔씩 주었다.

배에서 내려 중간에 있는 세라노 빙하까지 한시간 트레킹을 했다. 가을로 들어가는 때라 여름 야생화들 빛이 바랬다. 내려와서 어부의 집 옆에서 지역 특산인 양고기 구이를 내놓았다. 첫날 저녁 나탈레스 시내 레스토랑에서 맛본 아사도르(양고기 구이)가 부위별로 나와 양이 많았다.

셋째날 드디어 토레스 파이네 산구경을 나섰다. 그레이 호수까지는 가지 못하고 여러 전망대를 돌며 토레스 3봉을 3면에서 조망했다. 빙하가 녹아내린 3봉의 고고함과 위엄이 느껴진다.

아르헨티나 빙하국립공원의 살토폭포(사진=남영진)
아르헨티나 빙하국립공원의 살토폭포(사진=남영진)

넷째날엔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 7시간 만에 700km를 북쪽으로 달려 빙하지대 입구인 칼라파테시에 여장을 풀었다. 1박후 다음날 아르헨티나 호수에서 배를 타고 페리토 모레나 빙하와 빙산, 유빙 등을 봤다. 전망대를 돌며 빙하가 떨어지는 ‘뻥 뻥’하는 소리도 듣고 무게를 못이겨 떨어지는 장면도 목격했다.

빙하지대 마지막날 쎄로 또레와 피츠로이산을 구경하러 엘 찰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우리는 트레킹 코스를 안가고 살토 폭포와 전망대를 돌았다. 원주민 마을인 찰텐의 뜻대로 ‘연기나는 산’이라 안개구름이 끼어 정상을 보지 못했다.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에 썼듯이 ‘이곳은 미리 계획을 짜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비행기로 산티아고로 밤늦게 돌아와 선배 집에서 자고 함께 한인 영락교회에서 일요일 예배를 봤다. 글을 쓰다 보니 벌써 세세한 기억이 가물거린다. 빙하와 산과 강한 바람과 양고기 정도가 남아있다.

<산티아고에서>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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