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영진] 칠레 북서부의 아타카마 사막…스페인군과 원주민의 첫 전투지역
[칼럼 남영진] 칠레 북서부의 아타카마 사막…스페인군과 원주민의 첫 전투지역
  • 남영진 논설고문/행정학 박사
  • 승인 2018.03.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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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남영진 논설고문]사막은 모래만 있는 게 아니다. 

사막이라면 가까이는 중국과 몽골사이에 있는 고비, 타클라마칸사막 등 누런 모래인가 보다 했다. 우리나라에 불어오는 봄철 황사가 대부분 고비사막에서 오기 때문에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또한 TV나 영화, 화보 등에서 본 사막의 이미지는 대부분 황량하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끝없는 아라비아 사막과 ‘사막의 여우’라는 2차 대전 당시의 독일 명장 에르빈 롬멜 전차군단의 사하라사막 등이 그렇다.

그러나 3월 중순에 가본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은 황량하다기보다 신비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아타카마 분지는 삭막한 안데스와 태평양의 습기를 차단한 도메이코 산맥 사이의 모래만이 아닌 바위 흙 모래 등으로 이루어진 ‘황무지’였다.

그러나 두 곳의 오아시스 마을 때문에 사람이 살 수가 있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로 2시간 날아가 내리는 칼라마 공항은 커다란 분지고원에 조성된 푸른 숲의 오아시스 도시였다. 

여기서 아타카마 사막의 중심지 페드로 데 아타카마까지는 100㎞ 떨어져 있다. 마이크로 버스로 30여분 고원을 달려 꼭대기 지점에서 앞쪽을 내려다보니 저 멀리 5,000~6,000m의 만년설을 머리에 쓰고 있는 안데스 연봉들이 먼저 보인다. 

그 앞에 파아란 수풀이 보였다. 여기가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호수에서 칠레로 넘어오는 길목인 오아시스에 생긴 산 페드로 마을이다. 

아타카마 사막은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다.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 곳도 있으며 연 강수량이 2~20㎜여서 몇 천 년 전 죽은 동식물들이 썩지 않고 햇빛과 바람에 바래인 채로 남아있다. 

바다에서 융기한 퇴적암 바위, 깊은 모래 언덕, 운석으로 형성된 구멍들, 오래전에 말라붙은 소금호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리비아 우유니 소금 호수의 축소판이랄까. 이곳 지형이 달이나 화성 표면과 비슷해 미국이 종종 우주선 착륙 실험을 했다고 한다. 

안데스 산맥 때문에 동쪽 아마존 밀림의 비구름이 이곳까지 넘어오지 못하고 서쪽 태평양 바다도 남극 쪽에서 북상해온 페루 해류(훔볼트 한류)가 비구름이 되는 저기압 구름층을 만들지 못해 이 지역까지 습기를 보내지 못한다. 

이 훔볼트 해류가 태평양 서쪽으로 밀려와 우리나라 가을 태풍과 이상기온을 만들어내는 엘니뇨 현상의 주범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지난 2005년에 비가 한바탕 쏟아져 사막에 꽃이 피는 신비한 현상이 있었다. 

숙소인 산 페드로 시에서 5㎞로 가장 가까운 ‘달의 계곡’(Valle de na Luna)을 가보니 ‘지구속의 달’ 같은 느낌이었다. 거의 생명체가 없고 지표면에 가끔 하얀 소금 띠가 보였다. 모세관 현상이나 빗물에 의해 운반된 소금이 물이 증발해서 하얀 소금 덩어리나 소금 가루로 나타난다. 암염의 원료인 소금결정체도 보였다. 

▲ ‘달의 계곡’(Valle de na Luna) 입구(사진=남영진 논설고문)
▲ ‘달의 계곡’(Valle de na Luna) 입구(사진=남영진 논설고문)

 ‘무지개 계곡’(Valle de Arcoiris)은 대부분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부인 ‘리모네(레몬) 계곡’에 초록색의 용암 덩어리가 퇴적암을 삐져 나와 단층 운동을 거쳐 갈색, 회색, 초록색 지층이 겹쳐 불연속선을 이루어 무지개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무지개 계곡을 들어서니 용암 지대에서 솟아나온 작은 물줄기 주변에 나무와 풀도 있고 이를 먹고 있는 라마들의 무리도 보였다. 

이 지역은 안데스 쪽에서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볼리비아령 이었으나 1879~1881년 볼리비아, 페루 연합군과 칠레군 사이의 소위 ‘남미 태평양 전쟁’에서 패해 칠레령으로 편입된 지역이다. 전력상으로는 열세였으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지원을 받은 칠레군이 페루의 수도 리마까지 점령해 페루 남쪽 일부와 함께 점령해 영토의 3분의 1을 더 넓힌 보배와 같은 곳이다. 

당시 칠레는 볼리비아 정부에서 초석과 구리 광산을 임대받아 채굴을 했으나 볼리비아가 임대료를 일방 인상하면서 전쟁이 일어났다. 해군이 우세한 칠레군이 태평양 연안의 안토파가스타 항구를 공격하자 볼리비아는 페루에게 동맹을 요청했다. 

1879년 4월 5일 칠레의 공식적인 선전포고로 ‘남미 태평양 전쟁’(War of the Pacific Coast of South America)이 시작됐다. 1941~45년 2차대전 때 미국과 일본의 전쟁을 ‘태평양 전쟁’으로 명명해 이 전쟁을 남미 태평양전쟁으로 부른다. 

초반에는 볼리비아와 페루의 동맹군 수와 병력이 칠레보다 월등했으나 화약의 원료인 초석 확보를 위해 유럽 최강국이었던 영국이 개입해 칠레가 유리해졌다. 

1879~80년 사이의 전투에서 승리한 칠레는 아타카마 사막을 비롯한 서부 연안 일대를 장악했다. 칠레의 편을 든 유럽 세력을 경계한 미국은 휴전회담을 중재했으나 결렬돼 1881년 칠레군은 리마까지 장악했다. 

미국의 중재로 1883년 칠레와 페루 사이, 1884년에는 칠레와 볼리비아 사이의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남미 태평양 전쟁으로 볼리비아와 페루는 아타카마 사막 일대의 서부 연안 영토와 광산 대부분을 상실했다. 

페루는 이후 영토 일부를 반환받기도 하였으나 전쟁의 후유증으로 불황에 시달렸다. 볼리비아는 1904년 협정 영구화 조약으로 태평양 진출의 통로가 막힌 내륙국이 됐다. 

이곳의 원 주인은 스페인 식민 이후 생긴 볼리비아인도 칠레인도 아니다. 1만5000년 전 신석기 시대 시베리아에서 살던 몽골족의 일파가 얼음이 덮힌 베링 해협을 건너 북미 대륙을 거쳐 남미대륙 안데스 고지에 자리 잡은 아타카마인(Atacamenos)이었다. 

원주민들은 이 지역 동물인 비콘과 과나코 사이에서 태어난 라마를 기르고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며 살았다. 그들은 아직도 남아 페드로시의 상점과 공직에 진출해 있지만 그들의 언어인 쿤자어는 거의 사어가 됐다. 칼라마 공항에서만 알파벳으로 적힌 것을 볼 수 있었다. 

▲ 아타카마 고원의 원주민 성당(사진=남영진 논설고문)
▲ 아타카마 고원의 원주민 성당(사진=남영진 논설고문)

1540년 스페인 기마대와 원주민과의 첫 전투가 이곳 아타카마 고원의 북동쪽 안데스 고원에서 벌어졌다. 소위 ‘퀴토르 전투’(Battle of Quitor)다. 스페인 기마대의 총칼과 원주민의 화살, 돌창과의 싸움의 승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스페인 군대 중 일부는 멕시코로 들어가 마야 왕조를 초토화시키고 일부는 페루 지역으로 들어가 잉카 왕조를 말살했다. 

지금도 칼라마 공항 북쪽의 차카부코 광산을 비롯한 이 지역에서 전 세계 구리의 3분의 1이 생산되고 칠레 국내총생산(GDP)의 15%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식민지 전쟁과 1차 대전 때까지 화약 원료로 쓰이던 칠레 초석은 독일이 질소로 질산염을 만들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지만 이 연구가 인류 식량을 해결한 질소 비료를 만드는 신기원이 됐다. 비아그라처럼 ‘부작용의 은총’이다.<아타카마 사막에서>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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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경영 2018-03-29 18:45:26
남영진고문님 반갑습니다 김경영입니다
둘째 딸아이가 55일동안 페루,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쿠바여행을가서 여행지인 아타카마를 검색하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