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영진] 세도나의 부활절
[칼럼 남영진] 세도나의 부활절
  • 남영진 논설고문/행정학 박사
  • 승인 2018.04.0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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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남영진 논설고문]성당 앞에 성모상이 없다. 성전이 경건하다기보다 아담한 전망대 같다. 

분명 앞쪽 첫길의 이름이 ‘CATHEDRAL RD.’여서 가톨릭 성당이라 생각했는데 특별한 표지가 없었다. 

일요일인 4월 1일 부활절 전날인 성토요일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 성당 언덕은 차로 붐볐다. 부활절 휴가와 주말이 겹쳤다. 입구 길가에 불법 주차한 다른 주 차량 표지판만 보아도 각지에서 몰려온 것을 알 수 있다.

후배 차를 얻어 타고 우리 부부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새벽 6시에 떠나 10번과 17번 고속도로를 달려 10시간 만에 도착했다.

다행히 공중화장실 옆 3대 정도 주차공간에 차가 빠져나와 얼른 차를 대고 성당으로 올라갔다. 사진에서는 높은 산중턱에 하얀 현대식 건물이어서 한국의 일반 성당건물보다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당 문이 하나였다. 

활짝 열린 입구부터 붐볐다. 토요일 오후니 부활절이 아니라도 붐빌밖에. 성경에서는 어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이날은 저승에서 지나고 3일째인 일요일 새벽 부활한 걸로 기록돼 있다. 천주교에서는 이날 밤 커튼이 쳐진 십자가상 앞에서 신자들이 철야기도를 드리는 예식을 행한다. 

당연 미국 사람이 많고 중국 일본 한국말도 들렸다. 천주교 신자들은 성당 옆의 성모상에 인사하고 성전에 들어가는데 여기엔 성모상이 안보였다. 자그마한 성당에 갑자기 들어가니 햇빛이 스며드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예수상이 십자가에 걸려 있었다. 덩그런 십자가만이 걸린 개신교 교회와 다른 점이다. 신교에서는 성모상은 물론 이 예수상도 우상으로 보고 교회에는 단순한 십자가만 세운다. 

관광객들은 많으나 기도하는 사람이 적다. 한국성당 같으면 지금쯤이면 예수 죽음을 슬퍼하는 분위기로 착 갈아 앉아 있을 때인데 여긴 관광지라 그런지 한층 밝다. 앞쪽 제대도 조그맣다. 신부님, 수녀님도 안보이고 짧은 바지차림의 관광객 둘이 장의자에 달린 나무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다. 옆벽을 자세히 보니 밑 부분에 로마 숫자 1.2.3.. 이 새겨져 있다. 

분명 가톨릭성당이다. 한국에는 조각이나 상징그림 등으로 예수의 수난고행길인 ‘십자가의 길 14처’가 새겨져 있는데 여긴 단순히 숫자로만 표시돼 있다. 

간단히 기도를 하고 지하1층 성물 판매대로 내려갔다. 여기 역사가 적힌 안내책자가 있었다. 1956년 성당이 건축됐으니 세도나 국립공원이 지정된 1년 전이다.  

세도나성당 전경(사진=남영진)
세도나성당 전경(사진=남영진)

세도나의 상징인 벨락, 캐슬락, 커피폿락, 인디언 클리프 등 4개의 기가 센 회오리정상(vortex)중 하나인 이곳에 성당건축물이 들어선 게 이상했는데 국립공원이 된 1년 전이니 그 전에 이미 부지를 마련하고 오랜 기간 지었으리라. 책자에 의하면 전 세계 볼텍스 21개중 4개가 세도나에 몰려 있을 정도로 기가 센 지역이란다. 붉은 사암은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인체에 자력을 미친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나와 남쪽 고원에서 세도나 시를 내려다보면 종모양의 거대한 바위 벨락(Bell Rock), 에어포트 메사(Airport Mesa), 카테드랄 바위(Catherdral Rock), 보인튼 캐년(Boynton Canyon) 등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은 등산이 금지돼 있고 대신 시내에 볼텍스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는데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가 바로 성당 밑 미션 힐스 지역이어서 밤이면 밝은 달과 별을 보며 캄캄한 뒷마당 야외 자쿠찌 목욕을 하면 피곤이 풀려서 좋았다. 

성당이 있는 미션힐 별장지대인 제네바 로드, 스타라이트로드, 엔빌롭 로드 등에 감리교회 루터교회 유대교의 시나고그등 종교시설이 몇 개 있었으나 산안에 있는 것은 홀리 크로스 성당뿐이었다. 

애리조나주는 이 성당을 2007년 7대 건축물로 지정했다. 건물자체의 단순 정결함이 돋보였으나 뾰족 돋아나온 붉은 빛의 절벽둔덕에 하얀 색으로 붙여 지어 놓았으니 사진발이 기차게 잘 받는다. 여행객들은 성당 들어가기보다 사진 찍기에 더 바쁘다. 나오면서 성모상을 찾았으나 작은 나무 밑에 있는 하얀 천사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세도나(Sedona)는 이곳 첫 우체국장 부인(Sedona Arabelle Miller Schnebly,1877~1950)의 이름에서 왔다. 백인들이 1860년대 나바호 아파치 야파바이 호피 인디언들의 거주지인 이곳을 빼앗은 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여기에 와 인디언들과 함께 이곳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단다. 

관광객 등이 세도나 성당 안의 십자가상을 바라보고 있다(사진=남영진)
관광객 등이 세도나 성당 안의 십자가상을 바라보고 있다(사진=남영진)

서부개척 시대에 백인들이 미시시피를 넘어 콜로라도 애리조나 유타 네바다 캘리포니아 쪽으로 이주해오면서 인디언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인디언들은 성스러운 이곳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패해 소위 ‘인디언 보호지역’으로 이주됐다. 

1876년 오크 크릭을 따라 형성된 베르데(VERDE, 스페인어로 초록색) 계곡에서 살았던 야바파이와 아파치 인디언들은 남쪽으로 약 210km 떨어진 산 카를로스 인디언 보호구역((San Carlos Indian Reservation)으로 강제 이주된 것이다. 

백인 목장주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업타운이 생겼고, 세도나 남쪽 오크 크리크 캐년(oak creek canyon)에는 복숭아와 사과를 많이 재배했다. 어릴 때 유행가속 ‘애리조나 카우보이’는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LA쪽에서 동쪽으로 2시간 정도 달려 고개를 한창 올라가면 애리조나주 경계에서 사람들이 팔 벌리고 서있는 듯한 세구아로(SEGUARO) 선인장들을 만난다. 

여기서 5시간 정도 더 가서 주도 피닉스에서 그랜드캐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살짝 동쪽으로 돌면 야바파이, 코코니노 카운티 경계면인 오크 크릭 분지에 3~4개 붉은 세도나 바위탑 들을 만난다. 

처음에는 황홀하지만 3일간 보니 제주도 둘레길에서 만나는 푸른 오름을 보는 정도가 된다. 바다에서 융기한 땅 표면의 석회암이 풍화돼 걷히고 붉은색의 거대한 사암 암벽과 봉우리들이 남았다. 세도나시는 분지이지만 서부의 건조한 산악지대라 해발이 1372m나 된다. 상주 인구는 은퇴한 사람들과 예슬가들의 별장지에 사는 약 1만 명이라지만 곳곳에 80여개의 갤러리와 호텔 등 숙박시설, 공예품 전시관, 상설 시장과 식당 등과 업타운에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항상 3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한다. 

기온은 6월부터 9월까지 평균 35도로 무덥고 겨울인 12월에서 2월에는 평균 12도를 기록하는 온화한 날씨란다. 우리가 간 3월말에서 4월초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시원한 안성맞춤 날씨였다. 

부활절인 일요일 새벽에 출발해 왕복 5시간 그랜드캐년을 다녀왔다. 한마디로 ‘와!’하는 장관이었다. 2시간정도 남쪽 관망대 길을 따라 ‘거만하지 않은 장엄함’을 보았다. 

계곡 저 밑에 흐르는 콜로라도강의 청람색 물줄기가 이 큰 계곡을 만들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귀로에 인디언들이 처음 세웠다는 사막관망대에서 계곡 북쪽의 평평한 고산연봉들과 파월댐을 보았다. 2층 테라스벽에 적혀있는 “지상의 만물들아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라”라는 시편 그대로였다.<세도나에서>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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