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영진] 연해주 역사탐방-① 연추마을입구 안중근의사의 단지(斷指)동맹비
[칼럼 남영진] 연해주 역사탐방-① 연추마을입구 안중근의사의 단지(斷指)동맹비
  • 남영진 논설고문/행정학 박사
  • 승인 2018.05.2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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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남영진 논설고문]역사탐방은 선인들의 삶을 더듬어보는 것이라 언제든 흥미롭지만 사전 지식이 없으면 지루하다. 지난 5월11일-13일 2박3일 일정으로 동북아평화연대 평화학교 일원으로 잠깐 다녀온 연해주(沿海州)가 그랬다. 일제의 침략시절부터 우리 역사에 자주 등장한 지역이었지만 처음 가봤다. 연해주가 러시아말로 ’프리(연안) 모르스키(바다의)‘의 번역인 줄은 몰랐다. 러시아가 1860년 부동항을 처음 얻어 지금까지 극동함대 사령부가 있는 군항 블라디보스톡(BLADIVOSTOC)이 “동방을 정복하라”라는 러시아말이란다.

블라디보스톡 지역은 1860년 베이징(北京)조약으로 이곳이 러시아령으로 편입될 때까지는 ‘해삼위’(海蔘威)로 불렸다. 제정 러시아가 겨울에 얼지 않은 항구를 얻기 위해 1855년 흑해 크리미아반도를 점령했던 터키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자 기를 쓰던 영국과 프랑스군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러시아는 지중해 진출을 포기하고 영국과의 아편전쟁으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청나라를 상대로 협상을 벌여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톡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지역에 조선인들이 들어온 것은 1863년(철종시대). 함경도에 기근과 관리들의 수탈을 피해 두만강을 넘어온 13가구가 정착해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 마을 이름이 ‘지신허’(비나그라드노예)이다. 지난 5월11일-13일 연해주 탐방 첫말은 우수리스크에서 자고 이틀째 이 지역을 방문했으나 아직은 러시아에서 중국 훈춘으로 가는 국경지역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2004년 가수 서태지가 블라디보스톡에서 공연한 후 기념으로 여기에 ‘지신허 마을 옛터’라는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호전되면 다음엔 가볼 수 있으리라. 대신 1860년대부터 1884년 조러통상조약이 체결돼 대거 이민이 늘어날 때까지 조선인 마을이 자리 잡았던 크라스키노읍의 연추(燃秋)마을을 시내 가운데 솟아있는 연추전망대에서 볼 수 있었다. 1930년대까지 이민이 늘어 주민의 90%가 조선인들이었다 한다.

크리스키노 박물관 앞의 연자방아(남영진제공)
크리스키노 박물관 앞의 연자방아(남영진제공)

전망대에는 ‘핫산의 영웅’이라는 군인들의 조각상이 높이 솟아 있었다. 1938년 만주에 있던 일본 관동군과 소련군이 두만강 하류인 핫산에서 일합을 겨룬 핫산전투(장고봉전투)에서 소련군이 승리했다. 관동군은 또 한번 몽골의 노몬한에서 소련군과 붙었으나 패해 소련을 포기하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남방으로 진출했다고 한다. 이 지역 이름이 전쟁영웅 크라스킨을 따 ‘크라스키노’라고 바뀌었다.

전망대에서 보니 시내에서 남북으로 길이 뚫려있다. 북쪽으로 가는 길은 중국의 훈춘으로 뻗어있고 남서쪽 길은 핫산역을 거쳐 북한의 나진, 선봉 쪽으로 가는 두만강철교길이다. 전망대서 멀리 바닷가에 발해성터가 보였다. 신록의 나무들 숲속으로 성터가 보였다. 염주성(鹽州城)이란다. 근처에 염주하(추카노코프강)가 흘러 식수공급이 원활했을 것이고 생선과 소금을 얻기 위한 성이 아니었나 싶다. 발해는 이곳 연해주지방에서 일본과 사신교환을 했으니 바닷가에 성이 많았을 것이다. 발굴 결과 큰 절터의 기와 파편 등이 나왔다고 한다.

안중근 단지 동맹비 앞에서(남영진제공)
안중근 단지 동맹비 앞에서(남영진제공)

첫날 우수리스크시에서 이상설선생 유허비와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해 하룻밤을 잤다. 12일 아침 일찍 두만강 쪽으로 3시간을 달려 1937년 17여만 명의 고려인들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으로 끌려간 첫 역인 라즈돌로예역을 들렀다. 한적한 간이역인데 마침 탱크를 실은 화물차와 객차가 도착해 현실감이 더했다. 이들은 습지와 갈대밭에 내려져 토굴을 파고 지내다 풍토병과 추위, 배고픔으로 그해 겨울에 3분의 1이 죽었다고 한다.

일정이 빠듯해 크라스키노 시내 동네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했다. 빵에다 햄, 삶은 돼지편육, 살라미, 치즈와 커피 한잔이 전부인 그야말로 ‘점심’(마음에 점찍는 것)이었다. 점심후 버스가 두만강 쪽으로 꺾었으나 길에서 장례식행렬을 만났다. 이를 앞지를 수 없어 다른 길로 돌아서 안중근 단지(斷指)동맹비를 먼저 찾았다.

남양알로에 유니베라 농장안 언덕위에 있었다.1908년 안중근의사를 비롯한 김기룡 정원주 등 13명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무명지를 잘라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쓰고 조국독립을 맹세한 것을 기리는 비다. 이 비에는 무명지가 잘린 손가락이 뚜렷한 손바닥을 새겼다.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고려인들이 쓰던 농기구, 어구, 다리미등이 전시된 향토박물관을 찾았다. 나이가 든 안내인의 성실한 설명도 고마웠지만 앞뜰의 연자방아가 정겨웠다.

1937년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당할 때 솥단지, 의류, 간단한 멧돌은 가져갔겠지만 소나 말이 끄는 마을 공동의 무거운 연자방아는 버리고 간 것이다. 이 연자방아는 우리 민족만이 쓰던 것이다. 바로 옆에는 핫산전투시 쏘련군이 쓰던 전차와 대포가 나란히 서 있다. 연자방아와 탱크,’전쟁과 평화‘가 함께 있다. 길 건너 바다에 있는 포시에트 항구에서 크레인들이 석탄하역작업을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두만강까지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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