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영진] 캐나다 동부기행-③ 캐나다의 가톨릭성지 몬트리올[Montreal]
[칼럼 남영진] 캐나다 동부기행-③ 캐나다의 가톨릭성지 몬트리올[Montreal]
  • 남영진 논설고문/행정학 박사
  • 승인 2018.07.0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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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남영진 논설고문]몬트리올은 처음 방문이지만 그 이름은 이미 19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 때 귀가 따갑게 들었던 도시다.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한국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몽골의 오이도프를 꺾고 우리나라 체육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 배구가 3위로 올림픽 사상 첫 구기 종목 메달을 동메달로 장식한 곳이기도 하다. 배구선수 중에는 비교적 작은 조혜정선수가 높은 점포에서 스파이크를 때려 넣어 ‘날으는 작은 새’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내 여자프로골프대회서 우승을 한 적이 있는 조윤지선수가 그녀의 딸이다.

먼저 프랑스식민지였으니 현지에서는 아직도 프랑스어로 몽레알, 몽 루아얄(Mount Royal)이라고 부른다. 몬트리올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프랑스어권 도시다. 세인트 로렌스강(江)이 대서양과 만나는 퀘벡에서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 모래섬에 세운 캐나다에서도 두 번째로 크다. 프랑스인 자끄 까르티에가 1535년 발견해 1642년 첫 프랑스인 마을이 형성됐다. 그 뒤 비버, 수달가죽 등 모피교역의 중심지여서 내륙탐험의 기지가 됐다. 한 때는 영국식민지인 토론토보다 인구가 더 많았다.

5월말 대학 동기 일행 7명이 현지 여행사버스로 토론토에서 오타와를 거쳐 프랑스어 지역인 몬트리올에 들렀다. 가기 전에 오타와강이 로렌스강과 만나는 호수 같은 곳에 점점이 떠있는 ‘1천개의 섬’을 유람했다. 선착장 식당에서 현지식 식사를 하고 배를 탔다. 작은 섬에 지어진 건물을 스쳐 지나가며 목적지인 3개의 섬을 이어 120개의 방을 가진 ‘사랑의 하트성’을 배를 타고 돌아보았다.

이 성은 독일 프러시아에서 이민 와서 미국 뉴욕의 아스토리아 호텔그룹의 오너가 된 조지 볼턴이 아내 루이스를 위해 짓기 시작했다. 3개의 섬을 이어 하트모양의 건물을 지어 병든 아내에게 선물하려 했다. 아내가 죽자 완공을 포기했다. 이 ‘사랑의 하트성’은 애틋한 사연과 함께 신혼여행객들의 웨딩촬영 장소로 많이 이용된다.

그가 장인의 호텔을 인수받은 것도 우연한 만남(serendifity)에서 시작됐다. 장인이 그의 성실성을 보고 외동딸과 결혼시킨 것은 자신의 노력의 결과였다. 볼턴은 병든 아내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신선한 야채에 맞는 소스를 개발했다. 그 이름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thousand islands dressing’이다. 남자들은 몰랐지만 동행한 집사람을 비롯한 3명의 주부들은 “아, 우리나라 슈퍼에서 팔던 그 소스가 여기서 나왔어?”라며 금방 알아보았다.

몬트리올 성요셉성당(사진=남영진제공)
몬트리올 성요셉성당(사진=남영진제공)

유럽과 캐나다 각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계지로 커진 몬트리올은 1844∼1849년에는 식민지 캐나다의 수도였다. 빅토리아여왕이 1857년 캐나다를 독립시키며 오타와를 수도로 정하기 전이다. 도심 중앙에 몽레알산이 우뚝 솟아있고 여기에 상징인 성요셉 성당 97m의 고딕첨탑 돔이 더해져 도시 어디서나 보인다. 이는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 두 번째 높이다. 캐나다의 수호성인인 성모 마리아의 배필인 성요셉을 모신 성당으로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하는 순례지다.

처음에는 1백여 명을 수용할 작은 예배당이었지만 1924년 큰 성당이 건축되면서 1967년 현재의 모습이 됐다. 성요셉 성당에는 치유의 기적을 믿는 전 세계 신자들이 찾아온다. 이 성당에서 일했던 앙드레 수사가 불치병을 고쳐주는 ‘몽 루아얄의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불렸다. 하도 많은 병자들이 찾아오자 앙드레 수사는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라며 자신을 찾지말고 치유의 은총을 믿고 기도하라고 권했다 한다. 그가 죽은 후 로마 바티칸 교황이 성인품으로 올렸다.

이 기적의 증거물이 전시돼 있다. 성당 입구에 쌓여있는 목발들이 바로 그가 병을 고친 사람들의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루르드성지도 같은 치유의 성지다. 옆 박물관에는 앙드레 수사의 심장이 전시돼 있었고 그가 지냈던 지하 침실과 조그만 예배실도 보았다. 잠깐 친지들의 병환 회복을 위해 기도를 하고 성물판매대에서 아내가 아파 이번 여행에 합류하지 못한 대학친구를 위한 선물로 성유(聖油)를 샀다.

몬트리올 주민의 80%가 프랑스계의 가톨릭 신자들이어서 성당이 많다. 그중 파리 센강에 세워진 노트르담성당을 본뜬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그 뜻은 ‘우리들의 성모님’이다. 프랑스인들은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큰 도시에는 먼저 노트르담 성당을 지어 미사를 드렸다. 캐나다에도 첫 개척지인 퀘벡, 이곳 몬트리올과 수도 오타와등 3곳에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우리는 퀘벡으로 갈 때 1천개의 섬을 먼저 들러 시간이 없어 성요셉 성당만 방문했다. 돌아올 때 카르티에광장과 노트르담성당을 들렀다. 이곳 노트르담 대성당은 몬트리올 출신의 가수 셀린 디온이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 유명하다. 세계 최대급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와 조명쇼도 펼쳐진다.

몬트리올을 세운 카르티에광장(사진=남영진제공)
몬트리올을 세운 카르티에광장(사진=남영진제공)

17세기 중엽 프랑스인이 정착한 뒤부터 100여 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세기 후반에 영국령이 되면서 지금은 주민의 18%는 영국계다. 프랑스 문화에 영국풍이 조금 스며들었으나 지금은 프랑스적 색채가 점차 퇴색하고 있다. 프랑스계 주민이 많이 사는 몽레알 산 동쪽의 시가지는 작은 돌을 깐 거리와 많은 성당이 역사적 전통을 느끼게 한다. 거리에는 프랑스풍의 향취가 가득하다. 이곳 사람들의 아침 인사는 ‘굿모닝’대신 ‘봉쥬르’가 더 많다.

우리가 1박한 소피텔호텔은 프랑스계 레스토랑과 극장이 많은 ‘북미의 파리’라는 곳에 있었다. 영국이 프랑스에 이긴 뒤인 1821년 설립된 영어계의 맥길대학교가 언덕위에 자리 잡은 곳이다. 프랑스어계의 몬트리올대학교는 1876년 더 늦게 세워졌다. 저녁식사를 하고 맥길대학쪽으로 걸어가자 인도계로 보이는 여대생이 “어디서 왔느냐”며 영어로 묻는다, 캐나다에는 같은 영연방 국가라서 그런지 인도계가 많이 보였다.

우리 7명은 밤늦게 대학 동기인 이효숙 모녀를 호텔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대학 졸업 후 결혼하고 이곳으로 이민 와서 딸들을 낳고 작은 슈퍼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별로 변하지 않은 모습이 반갑다. 불어지역이라 한국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아 외롭다고 한다. 대학에 다니는 딸의 얼굴에서 엄마의 대학시절 모습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 만나자마자 옛이야기로 30여년을 넘는 세월의 간격을 금방 뛰어넘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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