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내몰린 여자들
죽음으로 내몰린 여자들
  • 김찬희 기자
  • 승인 2019.11.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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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뉴스=김찬희 기자] 여자가 또 죽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지만 그를 폭행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 남자친구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SNS를 비공개 처리했다. 여자가 죽는 뉴스가 이제는 너무 흔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모든 죽음은 내 마음 한 켠을 무겁게 한다.

지난 해 10월,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열린 제5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제휴=뉴스1
지난 해 10월,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열린 제5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제휴=뉴스1

일면식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죽음에 이렇게도 많은 여성들이 분노하고 슬퍼하는 이유는 아마도 당장 내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뉴스를 보지 않아도 당장 주위에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어 신고조차 받아드려지지 못한, 피해자임을 입증하는 무례한 질문에 신고가 좌절된 수많은 성범죄가 얼마나 많은가. 많은 어려움을 견뎌내고 신고를 해도 돌아오는 시선은 피해자에 대한 질타 뿐이다. ‘그러게 누가 그 남자 만나래?’ ‘그러게 왜 여지를 줘?’ ‘그러게 누가 그렇게 술을 많이 먹으래?’ 이 과정에서 엄연하게 피해를 당한 여성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다분하게 일어난다. 

이번에 일어난 일의 시작은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고인의 전남자친구의 혐의에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디지털 성범죄는 약 23배나 증가했고, 이는 전체 성폭력 범죄 중 24.9%를 차지하고 있다. 불법영상 유포 피해자의 45.6%가 자살 생각을 하며, 이중 42.3%가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하고, 19.2%는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나는 수많은 여성들이 혜화역으로 나와 불법촬영에 대한 편파수사를 규탄하며 들고왔던 피켓에 써 있는 문구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날은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이었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태양쯤이야 불법촬영 몰카 유출로 자살을 택한 내 친구의 피눈물보다 더 뜨거울까”

현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불법촬영 및 유포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받는 형량은 불과 10개월이거나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되어 징역살이조차 하지 않는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1심 판결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6년간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은 7446명 중 징역·금고형을 받은 피고인은 647명으로 8.6%에 불과했다. 벌금형이 4096명(55%)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집행유예(2068명) 27.88%, 징역형(647명) 8.6%, 선고유예(373명) 5%, 기타(197명) 2.6%, 무죄(63명) 0.8% 순이었다. 

나는 최근에 자신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찍힌 성폭력 동영상이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죄 판결을 받은 김학의에 대한 뉴스를 보았고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양현석과 승리가 무죄를 받은 뉴스를 보았다. 버닝썬 게이트는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도 도대체 어떻게 수사가 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수많은 성범죄가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되어 피의자는 가벼운 형량을 받는다. 그 사이에 여자는 또 죽는다.

예전에 몸캠피싱이 기승을 부릴 때 수많은 남성이 협박을 받고 피해를 입었지만 자살을 시도한 남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심지어 이를 역이용해 먼저 지인들에게 유포해 ‘쿨한 사람’으로 불리게 하는 식으로 탈바꿈 하기도 했다. 남성에게 신체와 관련한 수치스러움은 삶을 포기하고 자살을 택할 정도의 압박감이 작용하지 않는다.

2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서 페미사이드(여성살해)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페미사이드는 비단 직접적인 살해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닐 것이다. SNS등지에는 불법촬영으로 자살을 택한 일을 사회적 타살이라 부르자고 한다. 

여자가 또 죽었다. 계속 침묵하고 있으면 나는 또다른 여자의 죽음을 목도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다음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 여성의 일상은 포르노가 아니다. 여성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하나의 존엄한 인간이 아닌 성적인 존재로만 계속 보는 사람들은, 그리고 행동뿐만이 아니라 말로써, 글로써 수많은 여성을 죽인 사람들은, 그에 응당한 죗값을 치루기만을 바라고 있다. 여자가 아무리 죽어도 사회는 바뀌지 않지만 죽음에 분노한 이들의 행동은 큰 변화를 몰고올 것이다. 나는 더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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