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브리뉴스=안정훈 기자] 10일 아침. 추석 연휴를 맞아 소요산을 올랐다. 경기도 동두천시의 명산이자 서울지하철 1호선 마지막인 소요산역의 바로 그 소요산이다.
소요산은 북한산처럼 규모가 크거나 산세가 험하지는 않지만 아름답고 수려하여 경기도의 소금산으로 불렸다. 가을엔 단풍이 아름다워 관광객들로 북적인다고 하나, 이번 추석 소요산은 아직 붉게 물들지 않았다. 소요산의 ‘소요(逍遙)’는 ‘슬슬 거닐어 돌아다님’이라 하니 단풍은 없더라도 인파가 드문 지금이 소요하기엔 좋았을 것이다.
소요산 이구로 향하니 조선의 창업군주 이성계가 머물렀던 이태조 행궁지가 반겼다. 이성계는 2차 왕자의 난 이후 아들인 이방원이 왕이 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함흥으로 떠났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사실 함흥으로 바로 떠나지 않고 한동안 소요산 행궁에 머물렀는데 이를 이태조 행궁이라 한다.
지금은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고, 문헌에 ‘소요산 골짜기 입구’라고 추정되어 있어 소요산관리사무소 인근을 행궁지의 위치로 추정한다. 아들에게 모든 걸 잃고 한성 북쪽의 산에 머물며 남녘을 바라보았을 창업군주의 기분이 어땠을까.

소요산은 원효대사가 머무른 곳이기도 하다. 소요산에는 자재암(自在庵)이라는 절이 있는데,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전설에서는 원효가 요석공주와 연을 맺은 후 이곳 소요산 자재암에서 수행하다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여자를 만나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해골물을 마시고 한 번 깨달았던 그가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자재암에서부터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를 거갈 즈음, 인근에 미군부대가 있어서 그럴까. 추석연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해 산을 택하기라도 한 듯 이날은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 미군의 인사에 어색하게 따라 목례했다.
그리하여 정상 의상대(587m)에 도착하니 군부대와 파주시 감악산이 보인다. 30도에 육박한 이날 날씨는 한여름과 다름없어선지 땀이 뚝뚝 떨어지고 목이 탄다.

의상대를 지나쳐 이번엔 공주봉으로 향한다. 원효대사가 한때나마 파계하게 했던 요석공주가 기거하던 요석궁이 그 아래 있어 공주봉이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공주봉으로 가는 계단에서는 최고봉 의상대가 한눈에 들어오며, 정상에 오르면 동두천 시내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가볍게 간식을 먹은 후 하산을 시작한다. 초입 이후 보이지 않던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물소리를 따라 내려가니 계곡물이 나와 그곳에서 가볍게 세수를 하며 땀을 식혔다. 4~5시간 뙤약볕에서의 산행으로 오른 열이 조금이나마 식었다.


지난 태풍 힌남노 때문인지, 아니면 8월의 장마 때문인지는 모르나 그곳에서는 수해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몇 층은 될 법한 높이의 나무가 뿌리째 뽑혀 옆으로 자빠졌다. 나무와 위험해진 길을 피해 조심히 산을 내려간다. 그랬더니 이번엔 야생 흑염소가 반겼다. 사람이 옆으로 와도 피하지 않고 풀잎을 뜯어먹는 모습이 신기하다.
쓰러진 나무와 흑염소를 뒤로하고 내려오니 산행을 시작한 자재암 골짜기에 돌아왔다. 5시간의 산행으로 소요산을 한 바퀴 돈 셈. 자재암 계곡물의 청량한 물소리와 함께 산행을 마무리했다. 원효와 이성계가 머물렀던 산에서의 소요(逍遙). 가장 아름답다는 단풍철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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