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부-안철수] “격동의 시대 꿰뚫은 혜안이 핵심동력”
[집중해부-안철수] “격동의 시대 꿰뚫은 혜안이 핵심동력”
  • 소정현 기자
  • 승인 2012.09.21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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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폐셜> 대선출마 행보 밝힌 안철수의 모든 것

의대출신에서 IT CEO로 '윤리경영' 귀감
청춘콘서트 투어 대행진 각광 대스타로

이전부터 수많은 정치권입문 제의 0순위
안철수재단설립 선한 사마리아인 대귀감

@Newsis

“운이라는 것은 기회가 준비와 만난 순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오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공한 사람은 재능과 노력, 운이 모두 맞아떨어진 것이며 사회가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사회적 성공이 혼자서 이룬 것은 아니다."
9월 19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선언한 안철수 원장의 말이다.

■ 출생에서 사랑의 결실까지
안철수 원장은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였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기술경영학(TechnoMBA)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임강사 및 의예과 학과장을 역임하였고, 해군에서 군의관 생활을 했다. 안 원장의 성장 배경을 자세히 알아본다.

안철수 원장은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내며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마쳤다. 학창 시절에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이했으며, 운동 역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당시 책의 페이지수, 발행 년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 안원장은 회고 메시지이다.

교과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과 소설책을 좋아해 주로 읽었는데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사춘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에 집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의대에 재학 중이던 1982년 가을에 처음 컴퓨터를 접하였다. 이후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 교실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했다. 의대 대학원에서 심장 부정맥을 연구하는 ‘심장 전기 생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처음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95년 3월 15일 창업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안철수연구소이다.

대학생 시절 만난 배우자 김미경씨는 1년 후배로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다. 처음에는 봉사 진료를 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는 사이로 지냈고 쉬는 시간에 커피도 마시면서 사랑을 키웠다. “생각과 가치관도 비슷했고, 같은 공부에 같은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모범적 사생활로도 귀감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시절엔 술을 자주 마셨으나 회사를 경영하던 시절에 과음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이후부터 술을 끊어 전혀 마시지 않고 있으며 흡연도 하지 않는다.

■ 성공한 CEO에서 대선후보로
안원장은 국내 최초의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의 설립자로서 컴퓨터 바이러스의 존재 자체가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절부터 바이러스 치료제인 백신을 개발, 무료로 보급해 '백신계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1995년 3월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첫 출발하였으며, 2000년 6월에 회사명을 ‘안철수연구소’로 바꾸고 통합 보안 솔루션 개발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대표적 제품으로는 V3 제품군을 비롯해 통합 보안 솔루션 ACS, PKI 기반 PC 보안 앤디 제품군, 보안 ASP, 통합 보안 관리 솔루션 APC(Ahnlab Policy Center) 등이 있고 악성 코드를 사전 방역하는 VBS(Virus Blocking Service)와 보안 컨설팅(정보보호전문업체 1호) 서비스도 제공하여 왔다.

설립 이래 꾸준한 매출 성장을 보여 1999년 국내 보안업계 최초로 수주액 기준 100억 원을 돌파했고, 안철수연구소는 국내 기반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하였다.

2002년과 2003년에는 일본과 중국에 각각 현지 법인을 세웠다.
'집중과 전략'을 방침으로 세계 2위 IT 시장인 일본의 BtoC에서 5위에 올랐으며, 중국에서는 온라인 보안 서비스를 통한 폭넓은 인지도 확보와 BtoB 공략으로 백신 업계 5위권에 진입했다. 또한, 민간 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양국 정부에 보안 콘텐츠를 제공해 정책을 지원하여왔다.

“기본 가치관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기업은 몰락의 길로 가게 되기 쉽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니다. 기업의 존재 의미에 충실하는 것이다. 수익은 그러한 건전한 기업 활동의 결과일 뿐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창업자인 안 원장은 “기업이 사회 공헌이라는 존재 의미에 충실하고, 기본을 철저히 지켜 나가는 투명경영을 통해 신뢰성을 높인다면 아무리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안원장의 실시구시 언행의 그 단적인 실례이다.

안철수연구소는 개인에게는 백신을 무료로 보급하고 기업에게 사용료를 받아 운영하는 방식을 고집해 초기 재정 상황이 좋지 못했다. 마침 안철수 원장이 미국 유학 중 1997년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 맥아피에게 1000만 달러에 인수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맥아피는 전 세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당시 안철수연구소 때문에 한국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인수한 후 안철수연구소를 폐기하고 미국 백신으로 한국 사업을 독점하기 위해서 이러한 인수를 제의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경영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1999년 4월 26일 CIH 바이러스(체르노빌 바이러스) 사건이 촉발되면서 적자가 나던 회사는 흑자로 전환됐다. CIH 바이러스로 인해 30만대 가량의 컴퓨터가 파괴되어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바이러스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화하게 되어 백신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했다. 매출은 급증했고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고, 이후 세후 순익 100억 원 돌파는 안철수연구소가 최초 달성했다.

안철수연구소는 급변하는 전산 환경과 그에 따른 사용자의 요구를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충족함으로써 2010년 세계 10대 보안전문회사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향해 힘찬 전진 중이다.

회사 설립 10년을 맞은 2005년에는 안랩의 대표이사직을 그만두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벤처 비즈니스 과정을 거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MBA 2년 과정을 밟았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8년 4월 30일 귀국한 안철수는 카이스트(KAIST) 경영학과 교수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던 중, 2011년 6월부터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대학원장으로 부임 이후 정치권의 본격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다.

안원장의 이례적 정치입문은 청춘콘서트가 그 후견인 격이라 할 것이다. 2011년 KAIST 학생들의 자살 등을 계기로 안 원장이 박경철 안동신세계병원 원장 등과 전국 25개 도시에서 진행한 청춘콘서트는, 대학등록금 문제와 취업, 진로 고민 등으로 좌불안석의 청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면서 안철수 현상의 토개가 됐다.

안원장은 지난해 8월 청춘콘서트 자리에서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내비치면서 단숨에 여론조사 5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며 '안철수 신드롬'을 창출했다. 안원장은 당시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전격 양보하면서 정치권의 시야에 더욱 선명하게 인각되었다.

안원장은 20~30대 젊은층, 대학생, 화이트칼라, 호남지역에서 6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 서울지역에서도 고공의 지지율을 보이면서 박근혜와 용호상박을 이루었다. 안원장 본인이 2012년 대선 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2위를 기록하는 진풍경을 거듭 연출하여 왔다.

안원장은 이미 여야 정치권에서 정치 입문 제의를 많이 받아왔다. 젊은 층의 지지로 인해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것을 제의한 적도 있고, 참여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직 제의를 받은 적도 있으며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출마 제의 등등 모두를 거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떠오른 안철수 열풍’에 대해 이례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은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특히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변화욕구가 아마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이것을 여러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을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울시장 재보선 이후로 안원장의 모든 행동과 말은 정치적으로 해석되어 대선 출마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두고 각종 해석들이 난무하였다. 안철수의 등장 이후 한나라당, 민주당 등 정치권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안철수 영입 의사를 밝혔다.

2012년 7월 23일 안철수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여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의 생각에 대해 동의한다면 (대선 출마를)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 자신의 著書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명분과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최종 정리하였고, 결국 9월 19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하면서 그를 주시하던 모든 것들에 일단 방점을 찍었다.

안원장은 ‘무엇인가 도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세 가지 들었다. ▽ 내가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지 ▽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인지 ▽ 실제로 내가 일을 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인가?

안 원장은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이 롤모델·멘토·CEO로 삼고 싶은 인물 1위에 랭크되었을 뿐 아니라 美 시사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가 선정한 아시아 스타 25인에 포함됐다.

안원장은 소프트웨어벤처협의회 회장, 아시아안티바이러스연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바 있으며, 포스코 사외이사와 이사회 의장, 아름다운재단 이사, 벤처 게임업체 노리타운스튜디오 이사회 의장,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민간위원, 포항공과대학교 이사 등을 맡으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著書로 ‘바이러스 분석과 백신 제작’ ‘안철수의 바이러스 예방과 치료’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 안철수와 한글윈도우 98 지름길’ ‘안철수의 인터넷 지름길’ 등이 있다.

1990년 한국컴퓨터기자클럽 올해의 인물상을 시작으로 청와대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젊은 공학인상, 대한민국 소프트웨어사업자대상 경영부문 최우수상, 동탑산업훈장, 한국윤리경영대상 투명경영 대상,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 등을 수상했다.

올 초에는 안랩 보유 주식 37.1%의 절반인 18.55%를 출연하여 저소득층 아동의 교육을 지원하는 안철수재단을 설립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일대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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