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복직이 이뤄질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복직이 이뤄질지..."
  • 강지혜 기자
  • 승인 2012.09.26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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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쌍용차 해고자 심리치료 '와락'센터 권지영 대표

▲ 권지영 '와락'센터 대표
[에브리뉴스=강지혜 기자] 지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와 파업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쌍용차는 경영 악화를 빌미로 수천명의 노동자를 길거리에 내몰았고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은 경찰과 용역의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진압됐다.

결국 사측은 해고된 사람들 중 48%는 1년간 무급휴직 후 순환근무 형태로 복귀한다는데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그 약속을 단 한명에게도 지키지 않았다.

그 사이 복직을 기다리던 22명은 자살을 선택했고, 쌍용차는 인도 마힌드라에 넘어갔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을 선택해야, 쌍용차의 주인은 몇 번이나 바뀌어야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이 이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몇 년 째 해결 불능 상태에 빠진 쌍용차 문제에 대해 <에브리뉴스>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료 공간인 '와락'센터의 권지영(39)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와락'센터는 어떤 곳인가.

-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벌어진 대량해고와 폭력적 진압과정에서 심리적 내상을 입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보듬는 공간이다. 시간이 흘러도 현재까지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고통스런 일상을 반복하는 쌍용차 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함께하기 위해 2011년 10월 설립된 단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 뜻을 공감하고 지원하는 활동가들과 함께 '와락'을 운영하고 있다.

▲ 쌍용차 사태 이전의 삶의 어떠했는지.

- 평범했다. 그때 당시 24평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쌍용차에 다니는 남편, 아들 둘과 함께 사는 평범한 주부였다. 동네에는 쌍용차 직원들이 많았다. 남편들은 쌍용차 작업복을 입고 우르르 같이 출근했고 일이 끝나면 저녁에 직원 가족들끼리 삼겹살도 구워먹고. 많은 돈을 벌지 못했지만 그렇게 평온하게 살았다.

▲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질 것은 예상했는지.

- 2004년 상하이차가 주인이 될 때부터 남편들은 걱정을 했다. 세계에서 완성차를 생산해낼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나라는 5곳밖에 없다. 그 중 하나가 우리나라다.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후발국인 중국이 한국의 자동차 공장을 인수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기술을 빼나가 결국 국부유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다 갑자기 2008년 겨울부터 상하이차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려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동네가 술렁거렸다. 그해 12월 임금이 처음으로 체불됐다. 현실로 닥쳤다. 그리고 반년 사이 모든 게 진행됐다. 법정관리 신청, 직장폐쇄, 해고통지까지. 너무 갑작스럽고 놀라운 상황이었다.

▲ 그렇다면 쌍용차 사태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변했는지.

- 남편이 갑자기 실직되니 바로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하게 됐다. 항상 엄마와 함께 있다가 일 때문에 떨어져 생활하게 된 아이들이 많은 혼란을 겪었다. 당시 두 아들의 나이는 10살, 4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살배기 아들이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다른 아이들은 자동차, 블록도 갖고 노는데 내 아들만은 총과 칼을 들고 경찰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또 나이에 비해 부모님을 유난히 걱정한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장선생님은 아들이 전문의 상담을 받을 것을 추천했다. 나 역시도 나중에 우울증이 와서 1년 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부부관계는 소원해졌고 매사가 짜증스러웠다.

▲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방법은 생각해 봤는지.

- 쌍용차 사태 이후 주변에서 "정신차리고 자리를 빨리 잡아라. 어쩔 수 없지. 아쉬워하면 어쩌냐. 빨리 재취업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갈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당시 쌍용차 문제에 대해 언론도 여론도 모두 싸늘했다. 취업을 다시 하려해도 '노동조합에서 중무장하고 파업했던 사람을 채용했다가 우리까지 시끄러워지면 어쪄냐', '대기업 다니던 사람들이 우리 회사 들어와서 성실히 일하겠냐'는 등 채용에 대해 대부분 회사들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했어도 해고에 대한 상처로 오래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취업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해고당한 경험이 있다고 무시하나, 우습게 보나 하고 생각한다. 주변 동료들이 그러는 것을 보고 또 다른 해고자도 취업포기를 하기도 한다. 결국 지역 공사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용직으로 일하고 영업사원, 대리운전, 택시운전 등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지위를 박탈당하고 갈 수 있는 소수의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 해고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나.

- 그렇다. 해고를 당하고서도 회사 측으로부터 어떤 납득할만한 이유나 설명을 듣지 못했다. 선정의 기준이 공정하지 않았다. 해고자들은 아직도 왜 내가 해고됐는지 모르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회사 측은 공정하게 선정이유를 점수를 의거해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는 근태가 훨씬 좋은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남아있고, 점수가 뒤바껴 해고를 당한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 힘들다고 말한다. 일단 노동 강도가 너무 세졌다. 구조조정으로 인원이 많이 빠져나간 탓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 2001년, 2002년 무쏘와 무쏘 스포츠로 인기를 얻을 때는 노동자가 5만명에서 7만명이 14만~15만대 정도 생산했다. 하지만 지금은 4000명이 11만~12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의 노동 강도는 가히 살인적이다. 쌍용차는 이 같은 노동환경에서도 137명의 여유 인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숫자까지 정확히 밝히며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또 다시 구조조정이 되면 해고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일을 하다 부상을 당해 깁스를 하고도 다음날 현장에 출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구조조정 당한 동료들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가장이라는 무게로 회사에 남아 일을 하고 있다. 앞서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를 겪은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 한차례 쓰나미가 일어나 쓸려가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공포스럽다고. 여기서 밀려나면 해고당한 사람들처럼 힘들게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쌍용차 사태를 경찰이 폭력 진압한 문제는 아직까지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데.

- 공장 옥상에서 남편들이 두들겨 맞는 것을 맞은편 아파트에서 가족들이 직접 지켜봤다. 경찰들이 자기 남편들에게 달려와 밀어뜨리고 곤봉으로 때리는 것을 모두 봤다. 그 장면을 본 부인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었다. 아이들도 자신의 아버지를 죄인, 범죄자 취급하는 것을 다 목격했다. 한번은 가족들이 시위하는 천막 안에서 김밥과 떡이랑 먹으려고 도시락을 풀고 있는데 경찰은 일부러 저공비행으로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엄마들은 옷 속에 아이들을 넣어서 끌어안고 버텼다.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웠겠냐. 하늘에서 최류풍선을 떨어뜨리고 볼트를 쏴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도 하고. 정말 끔찍했다.

▲ 쌍용차 진압했던 전경이 최근 해고노동자에게 죄송하다는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됐는데.

- 나도 그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에 대해 범죄 집단이다, 빨갱이다, 이기적인 사람이다면서 매도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쌍용차에서 벌써 22명이나 자살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정리해고되는 사업장은 많은데 왜 쌍용차에서만 또 죽어나가나 궁금해 한다. 자세히 내막에 대해 듣고 보면서 이런 일까지 있었구나 하면서 관심을 가져 주신다.

▲ 최근에도 발생한 'SJM 노조원 폭력사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무엇인지.

쌍용차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규직에서 밀려나 비정규직으로 생활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안다. 그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공장을 지키고 버틴다. 회사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때려서라고 쫓아낸다. 쌍용차 때처럼 말이다. 자본가들 입장에서 얼마나 좋고 편리한가. 돈이 안 되니 해고시켜버린다. 자기한테 돈이 되는 것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 해고 정도가 아닌 한 사람의 존재자체가 없어지는 행위다. 그것은 '살인'이다. 바로 '기업살인'.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쌍용차 문제에 대해 정부가 도움을 준 부분은 있는지.

-상하이차가 나가고 나서 쌍용차의 최대 주주는 산업은행이었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인데 그러면 정부가 쌍용차에 주인인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정부는 상하이차가 기술 유출한 사건에 대해서도 중국정부와 외교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해 검찰 수사발표를 상하이차가 손을 털고 나간 이후에 해 처벌이 불가능하게 했다. 쌍용차가 자동차 시장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2%밖에 되지 않는데 자꾸 노동자들이 시끄럽게 할 거면 없어져도 관계없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있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정부가 노무현 정부 때 상하이차 매각부터 이명박 정부 들어 구조조정과 폭력진압까지 해준 게 무엇인가. 평택이 고용특별도시로 지정돼 쌍용차 출신 노동자들을 고용하면 고용주한테 50만원씩 지원금을 주는 법안을 만들었지만 어느 것 단 하나도 피부로 와 닿는 지원은 없었다.

▲ 최근 정치권에서 최근 쌍용차 문제와 관련해 청문회를 열고, 문재인 대선후보가 '와락'센터를 방문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 현재 민주통합당 내 쌍용차 관련 특위가 있다. 철저히 진상을 밝혀내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밝혀내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보상해준다고 민주통합당 측이 약속했다.

▲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쌍용차를 공기업화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우해양조선처럼 말이다. 국민주방식으로 모금해 공기업화해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과 지금 고통 받고 있는 해고노동자까지 모두 행복해 질수 있는 방법이다. 쉽지 않겠지만 문제가 되는 불씨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다.

▲ 앞으로 '와락'센터는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지. 

-지난 3년간 쌍용차 사태로 고통스럽고 우울하고 힘들고 답답한 사람들이 문의하고 얘기할 공간이 없었다. 얼마 전 자살한 조합원 중 한 명은 해고로 속 썩었지만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어도 미친놈 취급하는 시선이 싫어서 병원을 가지 않았으며 히키코모리처럼 집안에서만 생활했다고 한다. 이곳을 미리 알았다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와락' 센터를 통해 위로받고 좋아진 분들도 계신다. 그런 분들을 보면 뿌듯하다. 앞으로는 쌍용차 문제만 국한되지 않은 해고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공간으로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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