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백송아 기자] 김예진 한복 디자이너는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과 영부인 힐러리 여사,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 내외, 반기문 UN 사무총장 등 여러 유명인사들의 한복 의상을 제작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복의 세계화와 대중화를 꿈꾸는 김예진 한복 디자이너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김예진한복’에서 만났다.
언제부터 한복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는지.
20대일 때 나는 런던을 여행 중이었는데, 해롯백화점에서 화려하게 조명을 받으며 걸려있는 기모노를 보고 우리 한복이 더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부터 한복은 나의 꿈이 되었다. 내가 저곳에 우리 아름다운 한복을 걸어 알리고 말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일반 한국 사람이라면 그냥 ‘기모노가 예쁘네’하고 지나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님께서 어머님의 한복 입은 예쁜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한복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들어왔었다. 또 초등학교 때까지 늘 명절마다 한복을 입었으며, 중‧고등학교 때도 한복을 입고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한복을 정말 좋아했고 한복을 생각할 때면 행복하다는 느낌이다.
한복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당시 내가 공부할 때는 한복 전문학과가 따로 없었다. 그 때 나는 패션과에서 의상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런던에 다녀오고 나서 한복에 뜻을 두었지만 반 학기 정도 짜여있는 한복 수업이 전부였다. 그 후로는 동냥하듯이 공부를 하러 다녔다. 지금은 돌아가신 단국대의 고 석주선 박사님의 제자로 들어가 5년 동안 강의를 듣고 연구하고 공부했다. 한복과 관련된 학과는 92년에나 생겨났다. 지금은 분야가 잘 나뉘어 있어 원한다면 얼마든지 깊이 있는 공부가 가능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참고로 석주선 박사님은 우리나라 민속학 연구의 일 세대이신 분으로, 복식사와 장신구, 관모와 수식, 흉배 등 의상에 대해 연구하신 한국 전통 의상 연구에서 절대적인 분이시다. 그분께서 버선을 기성화 시키기도 했다. 그분의 제자라는 점은 지금도 참 자랑스러운 부분이다. 그 후 힘든 일이 없진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즐기면서 행복하게 한복 디자인을 해오고 있다.
한복을 만들 때 선호하는 소재가 있는지.
당연히 있다. 여름에는 한산모시, 겨울에는 명주 소재를 좋아한다. 각 계절에 맞게 소재를 이용하여 한복을 지었을 때 최고로 예쁘게 한복이 만들어진다. 또 나는 자연 소재를 좋아한다. 항상 베틀로 짠 것 같은우리나라 전통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을 좋아한다. 염색도 천연염색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다만 천연 염색은 연하고 진한 것만 차이가 있을 뿐, 색이 20개 이상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할로겐램프 아래 1시간만 있고 나면 색이 변해버린다. 천연 염색은 염료에 담가 삶은 후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만든 거라 언제든지 색이 잘 빠지는 것이다. 반면 실크에 화학염료를 한 건 찜을 하기 때문에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색이 안 빠지는 편이다.
한복의 대중화에 대한 생각은.
나는 한복의 대중화를 제창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이 매일매일 한복을 입고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행사 때나 추석과 같은 명절, 그런 때에만 입어줘도 충분히 기쁘다. ‘명절에 입던 우리 전통 옷’이었던 한복에 대한 수식어를 생각해보면 이제는 명절에도 입지 않는 우리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 결혼식에서도 젊은 친구들은 자신들의 예쁜 몸매를 뽐내고자 섹시미만 강조하는 드레스를 입는 경우가 많고 한복을 등한시하는 편이다. 한복에는 한복 나름의 온유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한복의 매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한복 입는 날은 1996년부터 문화관광부가 매월 첫째 토요일을 지정해서 시행했고, 종로구청에서도 자체적으로 매월 첫째 주 화요일을 한복 입는 날로 정해 구청 직원들과 함께 입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막상 날에 맞춰 한복을 입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한복과 관련된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페스티벌이 많을수록 한복에 대해 인식할 시간도 많아질 테니 말이다.
개량 한복 대중화에 앞장서고 계신다는데.
나는 한복에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다. 개량 한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개량 한복이라는 단어는 없다. 개량 한복이라는 말은 기자가 만들어낸 말로 어원도 없는 말이다. “이 옷이 뭐에요? 퓨전이에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누군가가 “아, 개량한 거예요”라고 답하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개량 한복이라고 불리는 한복도 그저 우리 옷일 뿐이다. 일본에 기모노와 유카타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한복과 생활 한복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미디어에 계시는 분들이 말을 잘 전파해주면 좋겠다.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말해봤자 학생들만 알고 넘어가지 사회에 전파가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활 한복에 대한 견해는.
한복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전통 한복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시대가 변하고 디자인 할 소재가 많아졌으니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생활 속에서 입으려면 입고 벗기 편한 새로 고안된 한복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예를 들어 당의에 비즈를 달아봤다. 예전에는 양장에만 비즈를 달았지만 이제는 한복과 서양 패션이 믹스가 되는 부분이 많다. 자재를 쓰는 부분이 이렇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상당히 좋아한다. 젊은 사람들의 눈에 맞춰야 변화가 있고 발전이 있는 법이다. 또, 결혼식 때 입는 한복이나 드레스는 보통 한번 착용하면 그만인데, 그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한 꺼풀 벗고 나면 생활 한복으로 착용 가능한 한복을 구상하여 전시회에 선보일 생각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광화문의 아침’이라는 생방송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그곳에서 소개했던 생활 한복은 처음 구매 비용이 일상적으로 입는 여름옷들에 비하면 비싸지만 집에서 손질해서 계속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이다. 방송에 나간 생활 한복은 여름용으로 모시 소재로 제작되었는데, 일단 모시의 특성으로 인해 계절에 맞춰 착용하기 좋은 점도 있고 손세탁도 가능하다. 모시는 물에 젖으면 부피가 상당히 줄어드는데, 손세탁을 한 후 아직 축축할 때 잘 펴서 옷걸이에 걸고 나중에 다림질을 해주면 완전히 새것처럼 된다. 현대인들은 손세탁이 귀찮아서 세탁기에 넣어 돌리는 옷을 선호하다보니 꺼리기도 하지만, 한 번 장만하고 나면 언제든지 새것처럼 예쁘게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이제까지 많은 유명인사들을 만나셨다.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사람은.
지금까지 만난 유명인사들 모두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중에서 굳이 한명을 꼽자면 처음으로 만난 무비스타였던 안소니 퀸이다. 안소니 퀸은 ‘노틀담의 꼽추’, ‘25시’ 등 유명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다. 그의 나이 82세 때 자신의 조각전 오픈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오셨었는데, 아내 나이가 나와 동갑인 삼십대 중반이었던 점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이후로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일찍 가시게 되어 정말 마음이 아프다.
한복의 대중화, 세계화가 목표라고 하셨는데.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시작한 한류 열풍은, 5년 전 쯤부터 외국에서 아이돌들이 인기를 얻고 특히 싸이를 통해 케이팝이 더욱 유명세를 타는 등 계속해서 연결되어 오고 있다. 불고기, 김치 등 우리 음식도 한류 열풍을 타는데 속상하게도 의복만큼은 발달과 전파가 더딘 편이다.
의복 외에도 우리나라의 문화와 전통, 우리 것에는 모자란 것이 하나도 없다. 일본의 도자기 문화는 우리의 문화재에 반해 기술인들을 데려가서 자기들 것처럼 변화시켜 발전시킨 것이고,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의 천연 색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컬러를 받아가 화학염료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천연 색을 이태리 물감, 어디 물감 이런 식으로 이름 붙여진 상품들로 수입하고 있고, 도자기도 지금은 노력을 해서 많이 좋아졌다지만 원료가 나쁜 문제 등으로 인해 아쉬운 점이 보인다. 이렇듯 훌륭한게 많은 나라인데 우리 자신들의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명맥이 끊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물론 전통 문화를 유지해가는 사람들은 굉장히 바쁘다. 인터넷이나 SNS를 꾸미는 것도 쉽지 않으니 소식 전달이 느려서 사회에서 잘 알아주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져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대기업에서 사업 계획을 세워 나 같은 사람을 데려간다면 한복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관심 정도가 단번에 바뀔 지도 모른다.
그래도 최근에는 SNS 등을 통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복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높아지고 그들끼리도 행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생활 한복을 중심으로 한복의 아름다움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 정말 일본의 유카타처럼 생활 한복이 발전해나갈 가능성도 있다. 사람들이 한복에 애정과 관심을 갖은 상태에서 한복이 해외로 뻗어나간다면, 다른 이들에게 뺏기지도 않고 우수성을 널리 알리면서 세계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유럽과 미국 쪽으로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모두 한복을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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