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몸짓 '마임'의 세계..."영원히 빚쟁이로 남을 지라도..."
꿈의 몸짓 '마임'의 세계..."영원히 빚쟁이로 남을 지라도..."
  • 이호준
  • 승인 2012.10.0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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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마임리스트' 이경식을 만나다

"누군가 저에게 마임을 가르쳐달라고 하면 취미 이상으로 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아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 최면을 걸죠. 열정이 식으면 바람처럼 가자. 배고픔, 부자, 철학, 기쁨, 슬픔... 마임리스트에겐 필연적 딜레마입니다."

 

▲ 마임리스트 이경식

[에브리뉴스=이호준]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지역문화 축제들, 하지만 지역 특색과 인프라를 무시한 주먹구구식 진행이 지방문화를 획일화시키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1988년 기획돼 24년을 이어온 ‘춘천마임축제’나 1995년 기획돼 17년을 이어온 ‘인천국제클라운마임축제’처럼 지역문화콘텐츠로 자리를 잡은 문화가 있는데, 그것이 마임(mime)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중앙무대에서 외면 받고, 대중들에겐 생소한 문화장르라는 것 또한 일반적인 견해다. 이에 <에브리뉴스>는 지역을 기반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마임리스트 이경식(40세)씨를 통해 마임과 지방문화예술인들의 현주소를 들어다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통회사를 다니던 제가 마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원봉사를 할 때였어요. 일반인을 상대로 수화를 가르쳤는데, 청각장애인들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거란 담당 복지사의 권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기대 반 의심 반으로 1999년 마임리스트 조성진씨의 마임워크숍에 참여하게 됐죠. 그런데 그 3개월 동안 내성적인 제가 세상과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발견하게 된 거예요. 한마디로 내 인생이 송두리째 뒤 바뀌어버린 거죠. 그렇게 3개월간의 워크숍을 마쳤죠.  마임을 향한 갈증을 감당할 수가 없더군요. 무작정 조성진씨를 찾아갔죠. 당시 대구지역에서 유일하게 활동하는 마임리스트가 조성진씨 였거든요.”

고대 그리스어 mimos(모방하다)가 어원 인 마임(MIME)은 저속하고 외설적인 연회에서 당시 곡예사, 요술쟁이, 약장수, 배우들이 공연의 전체내용을 소개하던가, 공연 중간에 중요한 상황이나 내용을 몸동작으로 표현했던 것을 일반적인 마임의 시초로 본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견으로 밝혀진 원시동굴벽화를 보면 원시시대 제의나 놀이 속에 이미 마임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시대와 시대를 거듭하며 소멸과 탄생을 이어온 몸짓들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성격을 창조하고 묘사, 소통하는 기술로 발전해 온 것이다.

“그렇게 마임리스트 조성진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마임 공부했어요. 하지만 모아놓은 돈이 떨어지자 곧 생활고에 허덕여야했죠. 예술이 배고프다는 말이 뭔지 알겠더라구요. 그렇다고 기획한 마임을 마음 놓고 공연할 장소나 극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심 끝에 거리로 나가기로 결심했죠. 그 당시 이미 거리를 무대로 공연을 하고 계셨던 스승 조성진님의 적극적인 권유도 있었지만, 거리에 맞는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그렇게 ‘도둑이야’라는 작품으로 거리공연을 했죠.”

그런 원시적인 표현수단에 불과했던 인간의 몸짓을 프랑스의 에티엔느 스크루가 현대마임으로 개념화하고 체계화시켰다. 그는 1923년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연극학교를 찾아갔다 말없는 몸짓의 세계에 감동해 "마임 배우는 벗은 몸, 순수한 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의 몸을 극장의 모든 장식과 조명 장치 의상 분장 음악 및 희곡과 연출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선언하고, 당시 코믹함 이상을 넘지 못했던 팬터마임을 진지한 예술장르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4년을 대구거리를 누비며 공연을 했어요. 대중들의 시선보다 공연에 대한 갈증해소가 우선이었죠. 그런데 '왜 거리에서 이러느냐'며 규범과 제도적 물음을 던질 땐 현실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껴야했어요. 그래서 2004년 저의 철학과 사상을 나누고 담을 수 있는 극단 동심을 창단하게 됐죠. 그런데 참! 세상은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몇몇 분을 제외하고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던 마임아닙니까. 지방에서 극단을 만들고 창작품을 올렸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가까운 지인들조차 비관적이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매일 매일이 진짜 죽기 아니면 살기였습니다.”

현대마임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68년 독일인 ‘롤프 샤레’의 공연에 자극받은 몇몇 연극인들이 흉내 내기 마임공연을 발표하면서 부터였다. 그렇게 70년대에 들어서 마임이라는 장르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는데, 극단 ‘에저또’(대표 방태수)를 중심으로 한 정기적인 마임공연에 전문마임연기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를 유진규, 김성구, 김동수로 대변되는 한국 마임의 도약기라고 한다. 유진규, 김성구는 무언극, 현장무언극, 침묵극 등으로 동양미의 독창적형식과 세계를 찾기 위한 작품 활동을 했고, 김동수는 더욱더 디테일한 서양식 마임을 추구했다. 그렇게 미적 감각들이 독창적인 몸짓들로 정리 되면서 70년대 말에는 조종두, 최규호, 박상숙, 80년대엔 심철종, 유홍영, 임도완 등의 걸출한 마임연기자들이 출현해, 광대마임, 오브제마임, 소리 마임 등 다양한 형태의 마임을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는 군사정군이란 폭압에 의한 암흑기, 마임 또한 비켜갈 수 없었다.

“그런 우려 속에서도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한 30편정도 창작마임을 공연했어요. 극을 올리기 위해 막노동부터 식당일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죠. 그렇게 했는데도 남은 것은 빚뿐입니다. 수입이라면 강연이나 초청공연이 주수입인데, 차비 빼면 남는 게 없어요. 그나마 그건 양호한 겁니다. 자비를 들어가면서 해야 하는 공연들이 있는데요. 뭐, 이런 거죠. 복지단체나 고아원 같은 댄 돈이 없다는 걸 알거든요. 그래서 연락이오면 좋은 일 한다는 셈치고 자비를 들여 공연을 해줍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무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이라 최면을 거는 거죠.”

그렇게 태동기와 암흑기를 함께 경험한 70~80년대 격동의 한국마임, 9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마임협회설립과 더불어 마임리스트 유진규를 중심으로 춘천마임페스티벌이 기획되고 마임전용극장이 설립되면서 도약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기획된 춘천마임축제는  24년을, 그보다 7년 뒤에 기획된 인천국제클라운마임축제는 17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지역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제요. 소통이죠. 그 순수함의 철학을 위해 꿈을 꾸듯 몸짓을 해 왔습니다. 현실이 필연적으로 안을 수밖에 없는 걱정과 근심이 저에게 강요한 것들이기도 해요. 그러나 그것은 돈은 안 되지만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해요. 그 주체할 수없는 철학적 향연을 풀려다보니 빚쟁이를 벗어날 수가 없었던 거죠. 아마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오늘도 관객을 향해 꿈을 꾸듯 몸짓을 합니다. 몸짓이라는 소통으로 행복해지길 바라는 꿈의 몸짓을..............”

2012년 현재는 자치문화란 미명하에 지역 지역의 페스티벌이나 극장공연, 거리공연, TV의 CF등 다양한 영역에서 마임리스트들의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그 지역에서 조차 능력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이경식(40)씨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보다 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지원책이 만들어져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바란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위한 예술 활동을 펼칠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바란다.

“문화경영이라고 합니다. 마임도 그렇게 돼버렸어요. 적자생존이라는 거죠.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 더하고 나누고 빼는 것 말입니다. 아티스트라면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죠. 그래서 누군가 저에게 마임을 가르쳐달라고 하면 취미 이상으로 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아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 최면을 걸죠. 열정이 식으면 바람처럼 가자. 배고픔, 부자, 철학, 기쁨, 슬픔,........................마임리스트에겐 필연적 딜레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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