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판사 “법관 솎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돼 선 안 돼”
김영식 판사 “법관 솎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돼 선 안 돼”
  • 표민혁 기자
  • 승인 2012.02.0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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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혁 기자] 서울북부지법 서기호 판사가 연임 적격여부 심사 통보를 받고 7일 대법원 법관인사위원회에 출석해 소명한 가운데 현직 판사가 “연임심사가 대법원의 정책이나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 법관을 솎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서울행정법원 김영식 판사는 8일 법원내부게시판에 라는 제목의 글에서 먼저 “법관인사위원회에서 서기호 판사에 대한 연임심사가 있었고, 서 판사도 100페이지에 이르는 소명자료를 제출했다고 하니 충분한 토론과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서 이렇게 분수없이 글을 쓰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대법원이 평생법관제도를 지향하면서 그와 함께 법관연임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정책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고, 또한 법관사회만이 경쟁과 검증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어서도 안 되고, 법관사회의 활력과 신진대사를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연임거부는 불가피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그러나 “강화된 연임심사가 대법원의 정책이나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 법관을 솎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됨으로써 법관의 독립을 해하고 법관의 관료화를 부추길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판사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법관의 임기가 10년으로 제한돼 있는 것은 맞지만 우리 헌법 제106조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법관의 신분을 엄격하게 보장하고 있고, 위 규정은 법관 독립의 초석을 이루는 조항”이라며 “따라서 법관연임심사가 이러한 헌법의 정신을 형해화시키고 ‘법관 파면의 손쉬운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법관에 대한 연임심사는 부적격법관을 걸러낸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 기업들이 하는 상시적인 구조조정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판사는 “대법원은 서 판사의 근무평정 중 이른바 ‘하’ 등급을 5차례나 받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으나 일선 법관들이나 국민들은 서 판사가 왜 ‘하’ 등급을 받았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은 그동안 사건처리율, 항소율, 파기율 등 법관에 대한 통계를 근무평정의 주요 잣대로 내세워 왔으나, 실제로 서 판사의 업무 통계가 전국 평균, 해당 법원 평균에 비해 형편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평균에 거의 근접하고 있었지만 법관의 10%에게는 ‘하’ 등급을 부여해야 한다는 상대평가의 불가피성 때문인지, 그리고 만약 이렇게 평균에 근접하고 있으면서도 ‘하’ 등급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판사를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 연임에서 탈락시키는 것이 헌법과 법원조직법의 정신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는 “그런데 최근 제가 들은 바로는 서 판사의 업무 통계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하고, 서 판사가 그간 (법원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재판에 대한 남다른 열정마저 느껴진다”며 “그렇기 때문에 서 판사가 왜 ‘하’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런 근무평정만으로 연임거부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갖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에 연임심사 대상자라는 김 판사는 “제가 그다지 동료법관들보다 법원장 눈에 띄는 일도 없었고 또 통계도 고만고만해서 그 어려운 ‘상’ 등급을 받았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 ‘중’과 ‘하’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결국 한 해에 10명 정도에게 연임부적격통보가 된다고 보면, 저도 내년에 연임부적격 대상자로 통보받을 가능성이 큰데 생각만 해도 두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아마 제 동기들 중 절대 다수의 판사도 안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다들 연임심사 시기가 다가오면 법원장에게 잘 보여야 하고 마치 ‘선착순’ 게임을 하듯 어떻게든 동료법관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며 연임심사의 폐단을 꼬집었다. 김 판사는 “대법원은 ‘현실에 대한 지나친 과장’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일선 법관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라고 따져 물으며 “따라서 연임적격 심사는 철저히 헌법과 법원조직법의 정신에 맞게 엄격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고 또 섣부른 예단과 사회 분위기에 휩쓸릴 것은 더더욱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판사는 “대법원이 SNS 게시 글을 문제 삼지 않은 점은 다행이나, 이 문제와 관련해 일선 법관들은 그간 줄곧 일부 언론이 특정 판사에게 자진해서 법복을 벗을 것을 요구하거나 대법원장에게 연임심사에서 탈락시킬 것을 요구해 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얼마 전 법원행정처장께서는 특정 사건의 재판장에 대한 집단적인 불만표출행위와 재판장에 대한 사법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 이런 행위들이 ‘헌법이 수호하고 있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사법부는 어떠한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에도 흔들림 없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사명을 다할 것이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며 “그러나 자칫하면 서 판사에 대한 대법원장님의 연임거부는 위 두 사건과 전혀 다른 형태이면서도 동일하게 헌법이 수호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대법원장님은 국민들의 사법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할지 모르나, 그동안 사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 원인을 이른바 ‘일부 판사들의 튀는 판결이나 돌출 행동’이라고만 믿는 국민이 다수는 아니라고 본다”며 “우선 위의 두 사건만 보더라도 사법불신의 원인은 사법부의 권위적인 재판진행이나 양형에 관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결국 항간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 대법원은 해당 판사뿐만 아니라 일선 판사들을 설득해야 할 책임이 있지, 결코 대법원이 이른바 일부 퇴는 판사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해당 판사의 업무성적이 법관직을 지속하기에 부적절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행정절차법이 규정하고 있는 투명성, 처분의 사전통지 등 모든 절차를 충실히 지켜 해당 판사에게 충분한 소명과 방어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며 “여하튼 대법원장님이 법을 지키지 않아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 판사는 “생각해보면 법관 개개인은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데도 헌법은 법관에게 다른 공무원과 차원이 다른 엄격한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며 “결코 법관들의 능력이 출중하고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제도보장을 통해서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확립될 수 있다는 지난한 역사적 경험의 소산이기 때문으로, 부디 법관들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출렁임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또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재판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여러 가지로 법원이 시험대에 올라있고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인 만큼 이번 법관 연임 논란도 사법부답게 가장 합리적으로 그리고 법령에 충실하게 결론이 도출되기를 바라며, 그래서 제가 속한 사법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근무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이번 사건을 보면서도 자꾸 유신이나 5공화국과 같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대법원이 여러 구실을 붙여 시국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법관을 지방으로 내쫓았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이 허망한 기우에 그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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