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아이를 품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정글같은 감옥이다”
“우리 사회는 아이를 품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정글같은 감옥이다”
  • 노정금 기자
  • 승인 2012.10.17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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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 아동성범죄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홍보팀장

▲ 2일 아동성범죄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명동집회 현장

사회안전망 확보, 사회적 인식 변화 시급···IT기술에 의한 음란물 전파 무방비

“아빠도 나서야 한다며 적극적 도움을 주시는 남성도 있고, 곧 딸을 낳는데 어찌 키워야할지 모르겠다며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나온 임신부도 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 나주에서 일어난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은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아동 성폭력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 사건의 가해자 고모(23)씨는 잠을 자고 있던 초등학생 A(7)양을 납치해 가까운 다리 밑에서 성폭행은 물론 목을 졸라 살해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선 경찰이 A양을 발견했을 때 이미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신체 주요부위는 찢기고 대장파열로 급기야 수술을 했다. 7살짜리 아이에게 평생 씻기지 않을 상처가 생긴 것이다. 잇따른 흉악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경찰과 정부는 성범죄자들의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같은 대책들은 아동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동성범죄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아동성범죄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홍보팀장을 만나 아동성범죄의 심각성과 정부 대책의 문제점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를 진행한 홍보팀장이 언론 보도를 통해서 실명이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 카페 닉네임인 ‘토끼이모’로 대신합니다.>

<본문>
▶‘발자국’은 어떤 단체인가요.
-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아동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입니다.

▶‘발자국’을 결성하게 된 계기는.
- 올해 7월, 경기도 여주에서 4세 여아가 이웃 아저씨에게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단신 기사 정도로 보도돼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건인데요. 우연히 카페 매니저 아이디 지유엄마가 이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지유엄마도 4살 딸을 가진 엄마로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구요. 조두순 사건 당시 여론이 들끓고 이후에 법도 만들어 졌지만 여전히 계속해서 아동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응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구요. 그래서 아동성범죄에 대해 공론화하고, 대응책을 수립하는데 목소리를 내보자는 생각으로 온라인 카페를 만들게 되었구요. 동시에 여주 4세 여아의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라는 아고라 청원을 진행해 서명 받고, 포털을 통한 모금 운동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 단체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의 면면이 궁금합니다. 또 현재 활동하고 있는 회원은 몇분 정도인가요.
- (9월) 7일 현재 8,000명 정도 됩니다. 지금 매일 1,000명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동성범죄 사건에 크게 분노하며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들은 주로 아이 엄마들인데요. 하지만 집회 현장에서 보면, 아빠도 나서야 한다며 적극적 도움을 주시는 남성도 있고, 곧 딸을 낳는데 어찌 키워야할지 모르겠다며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나온 임신부도 있습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도 있구요. 아동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좋은 신호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회원이나 회원 중 피해가족도 있나요.
- 저희는 피해자 모임은 아니고, 순수하게 이런 문제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모임입니다. 혹시 가입한 회원 중에 피해가족이 계실지는 모르지만 그걸 드러내놓고 활동을 하시지는 않아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나주 성폭력 사건을 비롯해 아동성폭력이 잇따라 발생하는데요.
-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2054건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하루 5~6명의 아이들이 성폭력 피해자가 된 셈입니다. 2002년 600건과 비교해보면, 10년 동안 3배로 늘었지요. 한국 사회 전체가 아동 성폭력을 조장·방치한 결과입니다.
성범죄자가 집까지 들어와 아이를 이불채로 들고 나가는 우리 사회는 찜통더위에도 창문을 열고 잘 수 없고, 밤거리를 홀로 걸을 수도 없고, 누가 채갈까봐 아이를 잠시라도 품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정글이자 감옥입니다. 정부는 자꾸만 출산 장려를 하는데, 이런 사회에서 누가 애를 낳고 싶어 하겠습니까?

▶ 기억에 남는 피해사례가 있다면.
- 저희 모임이 탄생한 계기가 된 여주 4세 여아의 경우를 보면, 아동성범죄가 아이뿐만 아니라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끔찍한 범죄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여주 여아가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아빠는 뇌출혈로 쓰러져 두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반신마비가 되었습니다. 아이와 아빠를 돌보기 위해 엄마는 작은 가게도 닫았고, 가족은 생계마저 막막해졌습니다. 아빠를 간호하느라 아이를 시댁 가족에게 맡긴 동안 40개월 여아의 정신연령은 29개월로 퇴행했고, 엄마는 다시 한번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피해 아동은 정부 지원으로 치료를 시작했지만, 아빠의 병원비는 온전히 가족의 몫입니다. 그간 모아둔 돈으로 첫 수술비는 냈지만 나머지 병원비를 내지 못해 퇴원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네티즌들의 관심 덕에 온라인으로 진행한 모금이 금방 마무리되어 피해 가족에게 지원될 수 있게 된 점이 천만 다행이지요.

사건 이후 아이는 심한 남성기피 증상을 보였고, 엄마나 외할머니와 잘 놀다가도 갑자기 폭력적인 돌발행동을 하는 이상 증세를 보였습니다. 치료도 받고 엄마가 잘 돌보면서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그 상처가 언제 완전히 치유될 수 있을지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정부가 아동성폭력 대책으로 전자발찌 부착 및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등 내놓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페 회원들 내에서도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회원이 공감하는 점은 아동성폭력 문제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지금까지의 단편적 대응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놓는 대응 방안이라는 것이 여론 잠재우기식 미봉책이 많은데요.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1년 동안, 2년 동안, 더 길게라도 연구를 해서 확실한 대책과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쳤으면 합니다.

▶강력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일각에서는 인권도 중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 이 문제에 대해서도 카페 회원 개개인 간의 의견이 엇갈려서, 찬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찬성을 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말 중에 우리 사회가 귀담아 들어야할 정의에 대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화학적 거세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미 인격살인을 당한 성범죄 피해 아동의 인권은 누가 보장해줍니까? 약자와 피해자의 인권이 먼저 고려되어야 합니다.”

▶아동성폭력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대책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아동성범죄의 형량이 현실화되어야 합니다. 법에 규정된 형량 자체가 낮기도 하고, 재판부에서는 초범이라서 혹은 술 먹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핑계로 감량을 해줍니다. 그 형량이 판례가 되어 다른 재판의 기준이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범죄자를 정신 차리게 할 수도 없고, 사회적 경종을 울릴 수도 없고, 피해자는 물론 국민적 정서를 달랠 수도 없습니다. 엄마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극형을 주장했나? 우리는 이런 끔찍한 범죄에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처벌을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판부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극단적 발언을 하게 된 것이다.” 범죄자 처벌을 강화하되, 재발 위험이 있다면 복역 중에 치료와 재활 절차를 거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보다 근본적인 아동성범죄 근절 대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아동성범죄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벌어진 묻지마 칼부림 사건 같은 것을 특수한 정신이상자가 벌인 예외적 사건처럼 바라보기가 쉬운데요. 사실은 경제 양극화와 소외현상 때문에 사회에서 낙오됐다고 느끼거나 제대로 교육과 보호를 받지 못한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부모가 생업 때문에 돌보지 못하는 방임 아동들이 이런 사건에 피해자가 됩니다. 사회안전망 확보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회적 인식 변화도 중요합니다. 성담론을 터부시하면서도 성범죄에는 관대한 이중적 태도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습니다. 아이들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발달된 IT기술 덕분에 음란물 천국에 노출됩니다. 왜곡된 성의식을 가질 위험이 큽니다.

한편, 국회의원, 목사, 의사 할 것 없이 성범죄 이슈로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정작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범죄 중에서도 가장 저질 범죄라고 지탄하기는커녕 ‘그냥 덮고 갈 수 있는 정도의 일’쯤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니, 국민 누구라도 성범죄를 우습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도층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 ‘발자국’의 앞으로 활동 계획은.
- 아동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 확대와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할 계획입니다. 우선은 나주 사건 피의자의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탄원 서명운동과 피해자를 위한 기부금 모금을 진행 중입니다. 아동성범죄 규탄 및 근절 대책 촉구 집회가 7일 서울, 8일 부산에서 열립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집회를 준비하고 있어서, 계속해서 시위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아동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문제의식 확산을 위한 ‘밟지마세요! 지켜주세요!’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아동성폭행 기사에 음란 댓글을 단 악플러 고소도 추진 중입니다. 현재까지 1000여 명 이상 공동고소인단 참여 의사를 밝혀주셨고, 이달 중순께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각 정당의 관련 정책과 국회의 관련 법규 입법 모니터링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제대로 된 근절 대책 수립이 이루어지는지 감시해나갈 계획입니다. 엄마들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고, 생활 속에서 살아 있는 정책 아이디어를 뽑아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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