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택시기사의 카사블랑카
[칼럼]택시기사의 카사블랑카
  • 이지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12.10.17 1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지영의 '일상에서 음악 즐기기'

[에브리뉴스=이지영 칼럼니스트] 필자와 한 10년 정도 친분을 이어온 중년의 택시기사분이 계신다. 가끔씩, 어떤 땐 잃어버릴 만하면 음악작업실 문을 밀고 들어와 “좀 급해서...” 화장실로 종종걸음을 쳤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볼일을 마친 느긋한 걸음으로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건네며, 택시영업 중에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그렇게 듣는 둥 마는 둥 나의 관심이 시들해 질 때쯤이면 핸드폰 액정을 향한 금테안경을 눈썹위로 치켜 올리며 “이 노래 어떻습니꺼?” 이곡 저곡을 들려주셨다. 대부분이 귀에 익은 70~80년대 히트곡들인데, 나의 관심여부와는 상관없이 2~3곡이 지나면 비브라토가 실린 막걸리 톤을 자랑하며 노래를 따라 불렸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운전을 하시며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취미인 것 같아 “사장님이 가수 같네예! 하하.... ” 농담을 건네면 “그래예! 좋지예?”하는 너스레로 커피 잔을 홀짝이다 “아이쿠,  이거,  아직 상납금도 못 채웠는데,”를 인사로 자리를 털며 일어나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여느 때와 같이 작업실 문을 밀고 들어와 화장실을 거쳐 자판기 커피 두잔을 뽑아들고 와 앉는데, 좀 기운이 없어 보였다. 걱정스러움이 앞서 어디 편찮으시냐고 물었더니 어젠 일도 못하고 누워있다 이제 나왔다며 신문에서 본 가수 최헌씨의 식도암으로 별세한 기사를 담담하게 늘어놓았다.

정말 “오동잎 한 잎 두 잎~”하며 따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70~80년대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많은 인기를 누렸던 가수 최 헌(1949년~2012년)이 부른 노래, 그는 ‘오동잎(1976)’뿐만 아니라 ‘가을비 우산 속(1979년)’ ‘카사블랑카(1984년)’같은 애절한 가사를 허스키보이스로 풀어내 대한민국 가요사를 매혹시켰던 최초, 최고의 허스키보이스였다. 특히 번안 곡 카사블랑카는 애절한 허스키보이스의 음색이 1891년 버티허긴스[Bertie Higging]가 부른 영화음악 카사블랑카를 능가한다는 평과 함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부패, 자유, 투쟁, 의리, 불륜 등을 그린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 수 있는 곡으로, 가을에 부르고, 듣고 싶은 곡 TOP10에 들어가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오늘 겨우 마음 안정시키고 일하려고 나왔다이요. 이선생도 건강관리 해가면서 음악작업 하이소!” 금테안경을 눈썹위로 치키는 변함없는 핸드폰 조작과 함께 가을을 알리는 매혹적인 허스키보이스가 가슴을 후벼판다.  

그대와 같이 본 영화 카사블랑카
어둠속에 두손을 꼭잡고
마음을 전하여주던 따스한 그대손길이
살며시 떨리는걸 느꼇네
사랑의 아픔을 본 영화 카사블랑카
희미한 불빛 그대얼굴 스칠때
뜨거운 눈물 나는 보았네

젊음을, 청춘을 보내고, 좋아하는 노래에 기대여 힘든 세월을 달래며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기억과 얽혀있는 관계들을 정리하고 떠나보낸다는 것은 정말로 큰 안타까움과 슬픔일 것이다.

언제나처럼 따라 부르지도 커피 잔을 후르륵거리지도 않는다. 젊은 시절, 애인이라도 생각난 것일까? 어쩜  큰 맘 먹고 잡은 손을 땀 차도록 부비면서 영화 카사블랑카를 봤을지도 모른다.

“이제 가봐야겠네. 나왔으니 상납금이나 채워야지.”자리에서 일어난 중년의 신사, 사무실 문을 밀고 나가는 어깨가 슬프다.

오 잊지 못할 영화 카사블랑카
아픈 이별의 입맞춤이
얼룩져 있는 카사블랑카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네.

▲ 이지영 작곡가


 <이지영 프로필>

   밴드 The Unclerock (베이시스트) 1집, 싱어송라이터,  팝칼럼리스트, 에덴실용음악학원대표, 문화복지실천)여섯줄사랑회 이사,  문화분권포럼 회원  

< 저작권자 © 에브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기사제보 : 편집국(02-786-6666),everynews@everynews.co.kr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에브리뉴스 EveryNews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진미파라곤) 313호
  • 대표전화 : 02-786-6666
  • 팩스 : 02-786-6662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0689
  • 발행인 : 김종원
  • 편집인 : 김종원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열
  • 등록일 : 2008-10-20
  • 발행일 : 2011-07-01
  • 에브리뉴스 EveryNews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1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에브리뉴스 EveryNew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verynews@ever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