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또 하나의 전쟁'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또 하나의 전쟁'
  • 박세호 기자
  • 승인 2012.06.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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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밤 10시~ KBS1TV '역사 스페셜'
[박세호 기자] 많은 외국인들이 아직도 기억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비극적이었던 한국전쟁이, 막상 한국에서는 다음 세대들에게 점차 '잊혀진 전징'이 되어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여 준다. 국내 초중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생들마저 6.25 한국전쟁이 언제 발발하였으며,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관심조차 두지 않으려는 자세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고, 역사와 교육적인 관점에서 재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6.25 한국전쟁 시 한반도 내륙에 또 하나의 전쟁이 있었다! 휴전 이후에도 2년을 더 끈 빨치산 토벌작전이다. 차일혁 대장의 ‘전장기록’은 전투경찰 창설부터 마지막 토벌까지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1950년 12월, 압록강을 눈앞에 두고 국군과 연합군이 퇴각하는 상황에서 전주에서 전투경찰이 창설된다. 이들의 임무는 전선의 사수가 아닌 내륙의 빨치산 토벌. 25,000명의 빨치산 토벌을 위해 태백산지구, 지리산지구, 운문사지구, 철도기동대 등 4개의 전투경찰사령부가 생기고 이중 지리산지구전투경찰사령부 산하 18대대를 차일혁 대장이 맡는다. 훈련조차 받지 못한 18대대에 전해진 두 번째 임무는 남한 유일의 발전소인 칠보발전소를 사수하는 것. 당시 아군들은 칠보발전소에 갇힌 채 포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칠보발전소 주변의 빨치산은 2500명. 하지만 18대대는 105명이었다. 차일혁 대장의 기지로 전투는 토벌대의 기적적인 승리로 끝난다. 빨치산 대장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양쪽이 합의해 칠보발전소 파괴를 막고 단순부역자 등 비무장인원을 내려보낼테니 선처해 달라는 것이었다. 차일혁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빨치산들은 전투경찰 창설 후에도 5년을 더 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은 광기로 치달았고 민간인 학살이 이어졌다. 빨치산 두목 이현상이 사살되자 차일혁대장은 이를 거두어 섬진강가에서 화장한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이 전쟁은 어쩔 수 없는 동족상잔이 아니겠습니까.’ - 차일혁의 전장기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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