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철 기자] 1987년 6월 민주항쟁 함성의 순간들이 벌써 25년이나 흘렀다. 한 장의 역사가 되버렸다.
1987년 7월9일 故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 당시 서울시청 앞 거리에서 선두에 섰던 20대 초반의 수많은 젊은이들. 이젠 50대를 바라보는 중년으로 성장했다.
당시 군사정권으로부터 직선제 개헌이란 6·29 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많은 희생들이 따라야 했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등이 그들이며, 그들이 민주의 제단에 피를 뿌린 지도 25년이 흘렀다.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았다. 6·10 대규모 민주화시위의 전날이었다. 그는 한 달 가까이 의식불명의 상태로 있다가 7월 5일 숨졌다. 그의 나이 22세,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사진은 7월9일 고 이한열 열사 영결식이다. 그를 추모하는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행렬은 연세대를 출발해 신촌로터리→서울시청 앞→광주 5•18묘역으로 이어졌다. 전국 대학생들과 시민 등 100만 명이 서울시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일부 시위대들은 서울시청 옥상과 주변 호텔들의 태극기를 조기로 게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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