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원 해장국 팔아 나눔 실천"
"4500원 해장국 팔아 나눔 실천"
  • 박봉민 기자
  • 승인 2012.10.26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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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으로 함께 배부른 곳, 봉천동 ‘박막례 청진동 해장국’

▲ 나눔으로 함께 배부른 곳, 봉천동 ‘박막례 청진동 해장국’ ⓒ박봉민 기자

[에브리뉴스=박봉민 기자] “나누면 기쁨이 배가 된다.”

교과서 같은 이 말을 실천에 옮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기는 힘들고 서로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닌가.

그러나 세상이라는 곳이 또한 혼자 살 수 없는 ‘인연(因緣)의 공간’이고 보면 나눔이란 선택이 아닌 필수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마음에서 우러나 기쁘게 하느냐, 마지못해 억지로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흔히들 나눔이라고 하면 많이 가지고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진 것에서 조금을 나누는 것이 진짜 나눔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 그릇에 4500원 해장국을 팔아 나눔을 실천하는 서울 청룡동(봉천동) ‘박막례 청진동 해장국’의 박막래 사장. 처음 본 그녀의 인상은 이웃집 아줌마 같은 소탈함과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미소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맛 보다 특별한 그 무엇

그녀가 내놓은 해장국 한 그릇. 사실 뚝배기에 담긴 그 모습은 별반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맛은 매우 깊고 진했다. 지극히 평범한 외형의 깊은 맛. 이곳의 경쟁력은 바로 이 맛일까?

아니면 다른 곳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소 많은 양(?). 그것이 전부라면 그저 그런 맛집 기행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이 정도를 특별하다기엔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특별한 것을 찾으려는 노력 아닌 노력.

하지만 그 노력은 이내 무색해지고 말았다. 그곳의 진짜 특별함은 맛이나 싼 가격, 많은 양이 아니었다. 그곳의 특별함은 바로 ‘정(情)’이었다.

박막래 여사가 여기에 해장국집을 연 건 2004년 7월, 올해로 꼭 8년째다.

일반 가정주부였던 그녀가 생업 전선에 뛰어든 건 IMF 경제 위기 때문. 택시운전을 하던 남편의 수입이 줄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녀에게 돈은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됐다.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남의 식당 일을 시작한지 5년 만에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내건 해장국집을 차렸다. 그때의 감격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평생 내 것이라고는 이게 처음이었어요.”

그 한마디에 그녀가 느꼈을 감동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생활에 안정을 찾으면서 그녀의 눈에 소외 받는 이웃이 들어 왔다.

그녀 자신이 어린 시절 가난으로 배움을 다하지 못하고 배곯기를 밥 먹듯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배고픈 이를 보면 그녀는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기부’. 처음엔 배고픈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기부’가 이제는 그냥 일상이 됐다. 그녀는 현재 구청과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 등을 통해 매월 적게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정도를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장사가 잘 되고 수입이 좋을 때야 그 돈이 그리 큰돈이 아니겠지만 예전보다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는 지금 그 돈은 부담이 될 법도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이제는 ‘생활’이라고 했다.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아닌 일상이 되어 버린 ‘기부’.

기자가 찾은 그날(9월 12일)도 박 여사는 청룡동이 주최하는 기부행사에 참여해 200만 원을 기탁했다.

‘박막례 청진동 해장국’의 특별함은 바로 그것에 있었다.

“당신이 먹은 이 한 그릇에서 100원이 다른 배고픈 이의 한 끼가 된다면...”

‘박막례 청진동 해장국’의 또 하나의 특별함은 1년 365일 무휴에 있었다. 명절에도 쉬지 않는다고 했다. 왜일까?

그 이유는 근처 고시원에 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였다. “명절이면 모든 식당이나 가게가 쉬는데 우리마저 쉬면 저 사람들은 굶어야 하지 않느냐”는 남편의 생각에 따라 1년 365일 단 하루도 문을 열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한다.

“사실 그런 날(명절)은 몇 그릇 팔리지도 않아요. 전기요금도 안나오지.”

약간은 투덜대는 듯 했지만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든가 그녀 역시 남편의 그런 인품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했다.

음식에 대한 철학을 물었다.

“내가 먹을 수 없는 건 남들에게도 팔지 않아요.”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 말에 또 하나 궁금해졌다.

“그럼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으시나요?”
“조미료?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안 쓴다면 거짓말이지. 내가 그렇게 요리 솜씨가 특출나지도 않고...(웃음) 하지만 해장국에는 MSG는 사용하지 않아요. 쇠고기 맛 조미료만 조금 쓰고, 김치 담을 땐 MSG도 조금 쓰지만...”

그녀의 솔직함에 놀랐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해요. 절대 내 가족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손님상에 올리지는 않아요.”

그녀의 음식에 대한 철학 하나는 분명해 보였다.

해장국을 다 먹어 갈 때쯤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기자 양반, 어때요? 입맛에 맞나 모르겠네. 사실 뭐 4,500원짜리 해장국 한 그릇이 얼마나 맛있겠어요. 그냥 한 끼 때우는 거지. 나도 알아요.”

무슨 말인지 의아했다.

“하지만 기자 양반, 당신이 먹은 이 한 그릇에서 100원이 다른 배고픈 이의 한 끼가 된다면 이 해장국 한 그릇이 제값은 다 하는 거 아니오?(웃음)”

그렇구나. 나 혼자 배부른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와 더불어 배부른 음식. 그것이 바로 ‘박막례 청진동 해장국’의 진짜 특별한 가치였다.

취재가 끝난 후 그냥 가라는 박막래 여사의 손에 굳이 5,000원을 쥐어 준 채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도망치 듯 나왔다.

이제 청룡동(봉천동)을 지날 때면 ‘박막례 청진동 해장국’이 생각 날 것 같다. 미처 받지 못한 거스름 돈 500원과 함께 아주 특별했던 그 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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