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준하 선생 개묘..'암살 의혹' 진실 밝혀지나
故 장준하 선생 개묘..'암살 의혹' 진실 밝혀지나
  • 윤창원 기자
  • 승인 2012.12.05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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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관련단체 관계자들이 '장준하 선생 암살 의혹규명 100만인 서명운동 선포식'을 하고 있다. @Newsis
[에브리뉴스= 윤창원 기자]박정희 정권시절 민주화 투쟁을 벌이다 의문사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사인 규명을 위해 5일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 공원에서 개묘 작업이 진행됐다.

장준하 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와 민주당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날 “양 기관이 사인 진상 조사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사인 규명작업에 나서 이르면 2개월 뒤 유골 감식결과를 발표할 것”이라면서 “지난 8월 선생 유골을 검안한 법의학자는 한번 개장을 하면 유골이 급격히 훼손되기 때문에 정밀 감정을 위해서는 빨리 개묘해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개묘 작업은 장준하 선생의 장남 호권씨 등 유족, 시만단체 회원, 취재진 등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전 11시 5분부터 선생을 추도하는 의식, 유골 수습, 유골 운구, 기자회견 등 순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책위 회원 4명이 오전 11시 20분부터 10여분간 삽으로 묘를 파자 40~50cm 깊이로 묻힌 목관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수의로 감싼 선생의 유골이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이어 진상조사단 감정단장을 맡은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의 주도 아래 유해 수습 작업이 진행됐으며, 대책위는 함몰된 선생의 두개골을 취재진에게 5분가량 공개했다.

두개골은 왼쪽 뒤 아래 부분이 직경 6cm 크기 원형으로 함몰된 상태였으며, 함몰된 부분 위쪽과 옆 쪽으로 10~15cm 크기의 금이 가 있었다.

수습한 유골은 비공개 장소로 옮겨 이정빈 교수 등 법의학자들이 정밀감식하게 된다.

대책위는 “그동안 청와대 등 정부에 수차례 사인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사건이 종결됐다거나 실족추락사라고 하는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면서 “진실 규명은 산자의 의무고 책임이라 믿는다. 역사적 사명감과 책임의식으로 반드시 사인을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장준하 선생은 1953년 월간 사상계를 창간하고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또 1960년대부터 1975년까지 무려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무릅쓰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싸웠던 ‘정치 라이벌’로 불렸다.

그러던 중 장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소재 약사봉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당시 중앙정보부 등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간단한 검안 외에 대대적인 조사는 없었다.

박정희 정부는 장 선생의 사망을 추락사로 규명했다. 당시 경찰은 등반대 45명과 산에 올랐다가 12m 낭떠러지에서 실족, 뇌진탕으로 사망한 것으로 내사 종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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