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회 “제주 4.3사건 희생자 3만여명, 대물림된 고통 악몽같다"
유족회 “제주 4.3사건 희생자 3만여명, 대물림된 고통 악몽같다"
  • 문세영 기자
  • 승인 2013.03.17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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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제주 4.3 유족회 홍성수 회장

▲ 영화 <지슬>의 스틸
[에브리뉴스=문세영 기자] “낮엔 무서워서 밖에 나오지 못하고 밤이 되어야 나와 나무뿌리, 감자, 무를 뜯어 먹었다. 산에서 내려와 밤중에 송당으로 걸어 나온다는 것이 세화 상동으로 내려오게 됐다. 거기에 보초를 서던 사람들이 폭도 새끼 잡았다며 나를 세화지서로 넘겼다. 때리는 사람은 꿇어 앉혀(엉덩이 아래) 나무를 대고 생명이 오락가락 할 정도로 허벅지를 때렸다. 모진 고문을 받고 다시 성산 4구서로 옮겨가 열흘 동안 취조를 받았다. 발목 두개를 천장에 달아매 때리고. 무지한 놈들이다. 매달린 채 죽여만 줍써울었다. 하도 굶고 온몸이 뜯어져 사람 꼴이 안돼, 더 때릴 나위가 없어도 그냥 죽이는 거였다. 당시에 약이 있었으면 그냥 약을 먹고 죽을 형편이었다. 주전자에 물을 담아 코로 지르고, 열여섯~열일곱 살에 그 고통을 당했다” -제주4.3 피해자 박춘생(, 1932년생)의 증언

위 증언담은 제주 4.3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제주4.3사건 피해자의 증언 자료다그동안 이와 유사한 증언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증언들에 따르면 당시의 학살은 단순 사살이 아니었다. 무자비한 고문과 폭행이 자행된 비인간적인 유린의 장이었다. 아기를 총살하거나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살해를 유도하기도 했고 여성 나체 고문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1954년 입산 금지가 풀릴 때까지 무력충돌은 셀 수 없는 희생자를 낳았다.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는 대략 3만 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연좌제를 비롯해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된 고통을 고려하면 악몽 같은 기억을 간직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제주 4.3사건의 시발점은 194731, 제주북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3.1절 기념식이 개최된 날에서부터 비롯된다. 행사에 참가한 한 어린아이가 경찰의 말에 채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이 아이를 방치하고 군중들은 경찰을 향해 야유를 퍼붓게 된다. 그리고 경찰은 야유하는 군중을 향해 발포하고 그 자리에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게 된다. 이 사건에 항의하고자 제주 직장인의 95% 이상이 가담한 3.10 총파업이 일어나고 또 이를 막기 위해 경찰과 서북청년단(서청)이 맞서게 된다.

194843일 경찰과 서청의 탄압을 중지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남로당의 주도 하에 무장봉기가 일어난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폭로 진압에 나서고 무장대는 일본으로 피신하거나 산간마을을 거점으로 삼아 입산하게 된다. 같은 해 1017일 정부는 해변선 주변을 제외한 중산간 지대를 통행금지 지역으로 선포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제주도민들이 학살당하게 된다. 이 문제를 놓고 아직도 논란이 가시질 않는다. 경찰발포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발심인가, 남로당의 선동이 빗어낸 비극인가 아니면 정부의 무분별한 학살인가 하는 문제다.

이전에는 남로당의 선동이라는 점에 비중을 두어 1980년대 초 연좌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그들의 자손들도 지독한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제주4.3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19991226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문제는 이로써 해결된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정부차원에서 희생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졌는가, 남은 후손들은 레드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운가, 또 일반 대중들은 이 사건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면 넘어야 할 산이 험준할 따름이다.

남로당 무장대가 지서 등을 습격하면서 무고한 희생자들을 발생시킨 측면도 물론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유혈사태의 희생자들 상당수가 10세 이하의 어린이와 60세 이상의 노인들이었다는 점과 3만여명의 인명 피해를 낳았다는 점에서 500명이 채 되지 않는 무장 세력에 의해 이 같은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정부의 과도한 진압과정에서 일어난 공권력의 학살인가?

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찰나에 오멸 감독의 독립영화 <지슬>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31일 먼저 제주에서 개봉을 시작했고 오는 21일 전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가 바로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정부는 해변선 주변을 제외한 지역을 통행금지 지역으로 선포했고 마을에 남아있을 경우 폭도로 간주했다. 폭도로 오인될 것을 두려워한 마을주민들은 굴속으로 피신했다. 굴속에 있다가 발각되면 15~40세 남성들은 총살, 나머지는 수용소행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영화는 이처럼 피신을 떠나는 제주도 마을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슬>은 제주도 개봉 열흘 만에 관객 8000명을 넘는 독립영화로써는 제법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개봉 첫날에는 민통당 문재인 의원, 영화배우 안성기, 강수연 등이 영화 관람을 위해 제주도를 방문했다. 배우 강수연은 서울 개봉일인 21일 광화문 인디스페이스 한 회 티켓을 전량 구매했다고 한다. 이미례 감독은 100석의 단체 티켓을 구매했고 종로에서 음식점을 하는 일반인도 100석의 티켓을 구매했다고 전해졌다. 좀처럼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어려운 독립 영화가 이처럼 대량 티켓 구매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제29회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에서 만장일치로 심사위원 대상(Grand Jury Prize)을 수상하기도 했다. 흑백화면이 담아내는 미장센, 저예산이 만들어낸 영상미 등에 대해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반면 감성팔이라는 비난과 함께 별점 테러를 받는 현상도 일어났다. 이처럼 극단적인 평이 엇갈리는 가운데 영화 <지슬>이 전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시점에서 <에브리뉴스>는 제주 4.3 사건을 재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했다. 제주 4.3 연구소의 김창후 소장과 제주 4.3 유족회의 홍성수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제주 4.3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또 유족들에 대한 처우는 어떤지 등에 대해 물었다.

▲ 영화 <지슬>의 스틸
* 제주 4.3 유족회 홍성수 회장과의 인터뷰

- 2000년 제주4.3특별법이 제정·공포되고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착수됐는데 이후 진상규명에 진척이 있는가.

없다. 2005년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2006년 개정안이 국회에 통과되면서 추가진상조사를 한다고 했는데 법만 개정됐을 뿐 실질적으로 조사에 진척은 없었다. 제주4.3평화재단에서 추가진상보고서를 만들고 작년부터 추가진상조사에 나서고 있으나 국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현재 조사는 미약하게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자금도 넉넉지 않다.

- 정부차원의 진상규명 문제도 있지만 일반 국민들의 시선 역시 신경 쓰이는 부분일 것이라 생각된다. 남로당에 의해 선동된 폭동이라는 시선이 있다. 토벌대에 의한 학살이 아니라.

2008, 2009년 이후로는 폭동이다혹은 반란이다하면서 괴롭히지는 않는다. MB정부 초반에는 우익보수단체들이 4.3위원회를 상대로 법적 소송까지 했다. 이들이 낸 소송이 7건정도 될 꺼다. 이들이 4.3진상규명 운동을 모두 무력화시키려고 소장을 제출했지만 결국에는 전부 패소했다. 그 이후에는 괴롭히지 않는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보다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 영화 지슬은 봤는지.

두 번 봤다. 배우들이 제주도 사투리로 대사하고 그게 표준어로 번역되고 영문으로도 자막화 된다. 제주도에서는 322일까지 하는데 제주도에 놀러온 관광객들도 영화관에 와서 보고 그런다.

오멸 감독이 고생을 많이 했다. 자금이 부족해서 촬영이 미뤄지고 그랬는데 아마 부채도 아직까지 갚고 있는 중일 꺼다. 영화에 보면 김경률 감독 <끝나지 않은 세월>2탄이라고 나온다. 마을에서 이뤄진 4.3 사건 당시의 현실을 영화화한 거다. 그 마을 말고도 하루에 300~400명까지 사살된 마을들이 여럿 있다. 그런 곳들에 대해서도 영화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3탄도 기대하고, 전국 개봉되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전국화, 세계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영화 개봉처럼 이전에도 문화예술인들이 제주 4.3사건을 간혹 언급한 적이 있다. 또 유족회나 위원회 등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4.19혁명이나 5.18민중화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민들, 특히 젊은 층이 이 사건을 생소해 한다. 왜 그런가?

섬에서 일어난 일이라 그렇다. 육지에서 일어났으면 그렇게 27000명이나 희생을 당했는데도 가만히 있었겠는가. 벌써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제주에 비례대표도 4명뿐이다. 모든 것이 약하다. 이번 영화가 전국 개봉되면서 제주 4.3 사건을 많이 알렸으면 좋겠다. 보상 차원에서도 해결되고.

* 제주 4.3 연구소 김창후 소장과의 인터뷰

- 제주 4.3특별법이 개정되고,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제주4.3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민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법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조사에 진척이 있는가?

없다. 제주 4.3사건은 화해와 상생이다. 그런데 이건 얻어맞은 놈이 때린 놈한테 화해 신청하는 격이다.

- 제주4.3 사건이 남로동의 폭동이라는 시선이 있다. 경찰이나 서청의 물리적 폭행인가, 남로당이 선동해 일어난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20034.3특별법에서 진상보고서가 다 나왔다. 제주도민이 당한 것이라고 이야기됐다. 군경이 학살한 것이 맞다. 10월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에 와서 사과했다. 그때 말을 인용하자면 국가공권력이 잘못된 사용을 했다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2006년에 대통령이 와서 또 사과했다. 두 번씩이나 와서 사과한 그런 사건이다.

-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6.25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던 사건인데도 대중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하고 문화예술인들에 의해서도 언급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근현대사에서 이데올로기 문제가 있는데 그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이런 잘못된 부분에 대한 뿌리가 너무 깊어서 해결이 안 난다. 가해자들의 반성도 문제다. 반성이 아닌 반성을 한다. 그냥 본인들이 좀 지나쳤다 이 정도다.

- 연좌제에 대한 레드 콤플렉스가 유족들에게 고통을 줬는데 연좌제 폐지 이후에도 여전히 빨갱이라는 시선으로 피해 신고를 꺼리는 경우는 없나?

아직도 있다. 2월말까지 추가신고를 받았는데, 그리고 아직 분명 피해자들이 더 있는데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피해 신고가) 어느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다. 5.18같은 경우는 정부가 돈을 제법 지원해주면서 해결에 나섰다. 그렇지만 정작 정부차원의 진상보고서처럼 정부의 입장은 없었다. 반면 4.3같은 경우는 정부보고서는 있는데 재정적인 지원이 전혀 안 된다. 정부이름으로 보고서 만들고 하는 것은 5.18이든 뭐든 없다. 4.3사건만 그렇다. 그런데 겨우 한해 20억 지원해주니 위령제니 유족관련 업무니 하다보면 5억 정도 남는데 그걸로 뭘 할 수 있겠나.

- 추가 진상규명이라든가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있는지.

박근혜 정부가 제주4.3 완전한 해결이라는 공약을 걸었다. ‘완전이라는 게 뭔가. ‘완전이라는 단어는 정의 내리기 나름인데. 진짜 완전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기라도 해야 완전아닌가. 국가추념일을 제정한다고 하는데, 그리고 그게 4.3사건을 국가차원에서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하는데, 그건 너무 부족하지 않나 싶다.

- 영화 지슬은 봤는지.

보진 못했지만 저예산으로 어떻게 그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대단하다. 기존에 제주 4.3사건과 관련해 이처럼 성공한 영화 사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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