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3주년, ‘서대문형무소’ 독립군 족적 찾기
경술국치 103주년, ‘서대문형무소’ 독립군 족적 찾기
  • 문세영 기자
  • 승인 2013.08.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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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재조명] 일본 극우의 야욕과 한국인 역사 인식 진화해야

[에브리뉴스=문세영 기자] 아베 정권의 우경화 양상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총칼을 앞세운 폭압적 수탈은 없지만 일본 극우세력들의 정신적 폭력은 한결같다.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강제 병합됐던 때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현재, 한일 양국의 감정대립 역시 여전하다.  

1910829,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3년 전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할 목적으로 한일합방조약을 발효했다.  

이보다 앞서 1905년 일제는 외교권 박탈을 목적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했고 일제 통감부를 중심으로 경찰권을 장악했다. 또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감옥 사무를 통감부에 이양했으며 언론탄압을 위한 신문지법과 집회·결사를 금지하는 보안법도 제정했다.  

대한제국의 군부를 폐지하기 위해 군대를 강제 해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조선인들은 일본의 병탄 공작을 막기 위해 항일의병무장투쟁을 일으켰다.  

의병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일제는 항전을 종결시킬 목적으로 한일합병 여론을 조성했고 1910822일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한일합병조약을 조인하기에 이른다.  

또 이로부터 일주일 뒤인 829일 합병조약이 공포되면서 대한제국은 본격적으로 일본 제국의 식민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경술국치, 국권피탈 등으로 칭해지는 한일병합조약이 반포된 지 103년이 흐른 현재,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는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 한일합방조약문
극우세력들의 망언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시점, <에브리뉴스>는 한일합방조약 103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이 남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다.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 일제에 의해 개소된 감옥으로 국권 회복을 위해 식민권력에 저항하고 맞서온 독립운동가들이 수감·순국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최고 통치기관은 조선총독부였으며 서대문형무소는 조선총독부 직속으로 편제돼 있었다. 형무소는 소장, 부소장, 간수장 등에 의해 지휘·운영되면서 수감자들을 감시했고 탄압했다.  

서대문형무소 박물관 측에 따르면 형무소 개소 초기에는 일제 침략에 무력 항거했던 의병들이 주로 수감됐고 1910년 강제병합 이후에는 의열투쟁과 비밀결사 요인들이 주로 수감됐다.  

“3.1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1919년에는 수감자가 급증하면서 3000여명에 육박하는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대표적 순국선열로는 의병부대 유격장으로 활약한 이강년 의병장, 서울탈환작전을 전개·지휘한 허위 의병장, 13도창의군을 결성한 이인영 의병장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독립군으로 활약하던 중 피체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수감 중 사형된 애국지사로는 하와이에 망명했다 매국노 숙청을 위해 귀국한 이재명 의사,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처단코자 폭탄을 투척했던 강우규 의사, 일본 밀정 고재근·박운환을 처단한 채경옥 의사, 일본인 2명과 순사 1명을 처단한 송학선 의사 등이 있다.  

이밖에도 일경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결성된 독립군들이 일제 군·경 및 친일파 처단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됐다. 광복회, 27결사대, 조선민족대동단, 의열단 등의 비밀결사 조직원들은 대부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사하거나 사형됐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이 독립군 수감자들의 열악했던 환경과 잔악한 고문 현장을 짐작케 하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 지하고문실의 '상자 고문' 도구
당시 수감자들 사이에 지하고문실로 불렸던 취조실에는 상자 고문(상자 안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집어넣어 흔든 고문도구), 벽관 고문(움직일 수 없는 좁은 공간에 감금해 고통을 준 고문도구) 등의 고문도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두 아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방문한 시민 권모(42) 씨는 아이들이 드라마 각시탈을 시청한 이후 드라마 세트장에 가자고 재촉했다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번에 형무소를 대신 방문했는데 오길 잘한 것 같다. 각시탈에 등장했던 고문도구들이 전시돼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역사 체험 학습이 될 것 같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취조 전 수감자들을 일시적으로 감금하는 임시구금실은 고문실 근처에 배치돼 있어 고문실 비명소리와 일경의 폭언을 들으며 수감돼 있었을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압박을 짐작케 했다. 1평도 되지 않는 독방과 취조실 고문 재현 현장도 마찬가지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중략)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훈의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심훈의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에 따르면 독립운동가들이 고문과 병마 속에서 조국 독립에 대한 의지로 강건하게 견딘 상황이 전해진다. 

지난 광복절 일본 아베 내각 각료들이 신사 참배를 감행했다. 아베 총리 역시 대리인을 통해 신사에 다마구시(비쭈기나무에 닥나무 섬유로 만든 종이를 달아 신전에 바치는 것)를 헌납하면서 일본 우익세력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일본 극우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국내 네티즌의 어처구니없는 댓글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 11일 위안군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가 별세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일부 네티즌들이 할머니를 창녀’, ‘일본군의 일회용품등으로 칭하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던진 것이다.  

교육부가 24년 만에 대학입시 필수과목으로 한국사를 포함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 수준이 낮다는 이유다.  

<에브리뉴스>는 일본의 높아지는 망언 수위와 한국인의 역사 인식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다.  

이용녀 할머니의 별세로 남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50여 명에 불과하다. 피해 생존자들의 수가 더 감소하기 전에 일본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공식사과와 한국인들의 올바른 역사관 형성이 시급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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