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석기 녹취록 논란에 ‘공안탄압’ 들고 나온 까닭
통합진보당, 이석기 녹취록 논란에 ‘공안탄압’ 들고 나온 까닭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3.08.30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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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재구성③]보수의 공격성-진보의 피해증, 선거구제 개편이 대안될까

▲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29일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건너편 오병윤 의원의 사무실로 이동하고 있다.@Newsis

[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녹취록 전문 완전히 정신병동이네요.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현실적 무력감을 심리적으로 보상받으려 집단으로 과격한 환상을 발전시키는 거죠. 현실에서 환상으로 도피한다고 할까. 이미 드러난 것 갖고도 옷 벗기 충분한 수준이다.”

진보논객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내란예비음모 등의 혐의를 받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녹취록과 관련해 한 말이다. 진 교수는 트위터에 ‘정신병동’, ‘소수극렬화 현상’, ‘과격한 환상’, ‘현실 도피’, ‘빨치산 용사 놀이’ 등의 발언을 써가며 이 의원을 강하게 비난했다.

구 민주노동당 시절 경기동부연합과 강하게 충돌, 양측의 감정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의원이 지난 5월 서울 마포구의 한 장소에서 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강연회 내용은 대중의 상식선을 넘어선 시대착오적 발상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연합뉴스> 등이 이날 보도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시작된 전쟁은 끝장을 내자 어떻게? 빈손으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전시상황 같은 중요한 시기에는 우리가 통신과 철도, 가스, 유류 같은 것을 차단시켜야 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이날 오전 같은 당 오병윤 의원실 앞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일부 언론이 공개한 이 의원 등의 녹취록과 관련해 “내란음모에 준하는 발언은 존재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홍 대변인은 “녹취록은 일부 참가자들의 발언 취지가 날조 수준으로 심각하게 왜곡됐다”면서 이는 국정원이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라고 짜깁기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발언 취지를 왜곡시킨 사례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통합진보당은 국정원의 전광석화 같은 압수수색을 “공안탄압이자 국정원 규탄 촛불을 끄려는 음모”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검찰 등에서 흘러나온 출처 불분명한 워딩을 ‘소설’이라고 반박했고 <조선일보> 포함 일부 언론을 향해 “법적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주목할 대목이다. 통합진보당은 이번 사태와 관련, ‘박근혜 정부-국정원-검찰’의 삼각 커넥션과 언론의 보도행태를 맹렬히 비난하며 전선을 ‘99대 1’로 나눠버렸다. ‘우린 피해자, 너희는 탄압세력’ 논리다.

앞서 지난해 19대 총선 전후로 불거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논란에서도 이정희 당시 대표 등은 “마녀사냥을 즉각 중단하라”며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색깔론을 진보세력 죽이기로 규정했다.

한국 정치의 불변의 법칙, ‘영남은 새누리, 호남은 민주’ 지역구도

진보진영의 이 같은 태도는 비단 통합진보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공무원 노조 가입, 현대차 희망버스 등에서도 진보진영은 ‘가해자 VS 피해자’ 구도로 전선을 나눈다.

이는 해방 이후 계속된 보수세력의 집권과 민주개혁진보진영에 대한 반복된 탄압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최초의 사법살인인 ‘조봉암 진보당 사건’, 유신정권 시절 ‘인혁당 사건’ 등 우리 정치 역사에는 기득권 세력이 진보진영을 향해 ‘빨간 딱지’를 붙이며 ‘마녀사냥’한 오점이 적지 않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16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각각 후보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하고 있다.@Newsis

이번 ‘이석기 내란예비음모’ 혐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검찰의 기소도 법원의 최종 판단도 아직 남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안당국이 통합진보당 내 경기동부연합과 이정희 대표, ‘이석기-김재연’ 의원 등에 대한 정치적 사살 목적이 없다고 단언할 근거는 없다.

그 이유로 첫째 압수수색의 주체가 검찰이 아닌 대선 개입 사태 의혹으로 국내정치파트 폐지 여론에 직면한 ‘국정원’이라는 점. 둘째 이들이 들고 나온 법리가 그간 진보진영을 탄압할 때 쓴 국가보안법이 아닌 33년 만에 부활한 내란음모 혐의(형법)라는 점.

셋째 언론이 공개한 녹취록 발언을 보면, 이 의원은 형법상 불능범(실행의 수단 등을 착오해 범죄의 결과를 발생시킬 수 없는 범인)에 가까워 내란예비음모죄 혐의와 법리적으로 충돌한다. 불능범을 체제전복을 한 자로 규정, 내란죄로 다스리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통합진보당이 이 의원 등에 대한 내란예비음모 혐의에 “박근혜 정부의 공안탄압이자 정치보복”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온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5월 이 의원과 RO 모임에 참여한 녹취록 관계자들도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기가도 부르지 않았고 (언론에 보도된 내용 등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진보진영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그간 한국 정치역사에는 보수진영이 (범진보진영을) 탄압한 사례가 많지 않았느냐”면서 “언론 등이 이 같은 역사를 감안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진보진영이 정파적 헤게모니에 골몰하면서 급진적인 의제화 전략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지만, 대중담론 접근에 실패한 원인이 단지 내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운동정치(정치문화 영역)’와 ‘선거구제 개편(제도개편 영역)’ 등의 논의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보수가 압도하는 기형적인 정치환경과 무관치 않다.

운동정치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로 소선거구제의 왜곡된 표심을 보완하고 궁극적으로 중대선거구제나 독일식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유권자의 표심’과 ‘의석수’를 비슷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정치가 고질병인 사표에 따른 민의왜곡, 망국적인 지역구도로 영남에선 새누리당이, 호남에선 민주당이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현실에 처해있어 선거구제 개편의 당위성에 힘이 실린다.

선거구제의 대안으로는 중대선거구제(하나의 선거구에서 2인 이상 다수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 독일식정당명부 비례대표제(정당전체 의석수를 정당득표율로 결정하는 방식), 권역별 비례대표제(의석수를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변경하는 안) 등이 꼽힌다.

하지만 ‘운동정치’와 ‘선거구제 개편’ 모두 위기에 처해있다. 당장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의 경우 민주당이 ‘이석기 파문’으로 이날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집회의 불참을 결정했고 선거구제 개편은 기득권 훼손을 우려한 국회의원들의 소극적 태도로 논의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진보진영은 80년대 낡은 구도, 운동권 동창회 등의 틀을 벗고 대중정당으로 가야 하고, 보수진영은 청와대의 국가권력기관 장악 등 낡은 구체제와 결별해야 한다. 결국 국민이 중요하다. 국민이 바꿀 수밖에 없다.” 보수의 공격성과 진보의 피해증이 만발한 한국 정치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적 대안을 묻는 질문에 진보진영 관계자 한 말이다.

밖으로는 운동정치, 안으로는 제도개편에 실패한다면, 보수의 공격성 VS 진보의 피해증 구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그 답이 있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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