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된 한글 사용에 습격당한 대한민국
일탈된 한글 사용에 습격당한 대한민국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3.10.0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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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재조명]23년 만에 공휴일로 재지정된 한글날…한글 사용 실태는?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야외마당에서 설치된 '한글 꽃, 한글 꿈' 전시장에서 어린이들이 작품 체험을 하고 있다.@Newsis

[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조선 제4대 왕인 세종(1397∼1450) 재위 기간 집현전에서 이뤄진 학문연구 등 문화유산의 결정판. 이를 통해 왕권 강화 등 확고한 국가 기틀과 유교정치 기반 구축. <고려사>·<고려사절요> 등 역사서와 <삼강행실도>·<오례의주> 등 유교경전, <팔도지리지> 등 지리서 등의 간행사업을 펼치는 계기로 작용. 이후 조선어연구회는 지난 1926년 11월 4일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한글’과 9일로 567돌을 맞은 ‘한글날’얘기다.

“고객님, 그 상품은 품절이세요.”

며칠 전 기자가 주문한 상품이 오지 않아 A 회사 고객상담실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주문내역을 확인하더니 곧이어 “그 상품은 품절이세요”라고 말했다.

상냥한 목소리를 가진 고객센터 상담원의 친절한 대답이었지만, 상품 자체에 높임말을 쓰는, ‘틀린 높임말’ 사용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힐 만했다.

한글 사용의 일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외래어와 외국어 사용의 남발은 물론 줄임말 등 신조어의 등장으로 한글 파괴 현상이 극에 달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탈된 한글 사용에는 ‘남(선진국)의 것이 좋다’는 사대주의 사상과 ‘우리끼리 문화’를 추구하는 세대 간 단절현상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결국 소통 부재가 언어 일탈 현상의 핵심이란 얘기다.

장면 하나) ‘메탈 피스’, ‘에어막 쿠션’, ‘툴킷 작동’ KBS의 애니메이션 <뛰뛰빵빵 구조대2>에 나오는 정체불명의 외래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한글날을 맞아 지상파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의 언어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불필요한 외래어 사용과 더불어 제목에 <키즈CSI 과학수사대(MBC)>, <아이엠몽니(SBS)> 등 영어 사용 표현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한글 파괴, 세대 간 소통부재 현상이 핵심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글문화 큰잔치-한글아 놀자' 행사에서 세종대왕 동상에 입체영상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Newsis

장면 둘)
지난 5월 20일 소녀그룹(걸그룹) <시크릿>의 전효성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얼마 전 경솔한 발언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글이 늦어져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앞서 같은 달 1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해 물의를 빚은 데 따른 사과였다.

전효성이 사용한 ‘민주화’가 극우성향 인터넷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생각이 다른 소수를 집단에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란 뜻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역사교육 부재’와 ‘증오 심리’가 맞물려 벌어진 사회병리(社會病理) 현상이다.

장면 셋) “야야! 열폭하지마. 너 자꾸 열폭하면, 여병추다.” 전날(8일) 서울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에 오른 고교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의 대화 중 일부다. 문장의 전체적인 음조가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뜻은 알기 어려웠다.

집에 가서 인터넷을 찾아본 후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열폭은 '열등감 폭발', 여병추는 '여기 병X 하나 추가‘라는 의미다.

흔히 10대 은어로 사용되는 줄임말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과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자는 일탈 심리가 결합돼 있다는 분석이 많다. 외래어와 외국어의 남용, 은어의 사용도 마찬가지다. 결국 한글 파괴 현상의 원인이 세대 간 소통 단절에 있는 셈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567돌 기념 경축식’에서 “무분별한 비속어, 저속어,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언어에 의한 가해 행위는 물리적 폭력에 못지않은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한 뒤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문자 가운데 만들어진 말과 만든 이유, 창제 원리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는 유일한 문자가 바로 한글”이라며 올바른 한글 사용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한글은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며 “문화융성의 중요한 토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말과 글이다. 우리 겨레가 문화 민족임을 큰 자랑으로 여기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도 한글이라는 우리 글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도 일제히 논평을 내고 올바른 한글 사용을 권면했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초·중·고 재학생 95%가 일상어에 욕설을 섞어 쓰고 있다. 우리 사회가 깊은 반성을 함과 동시에 올바른 한글 사용을 위해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언론에서, 공공기관에서, 또 정치권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자 중에서 만든 이, 만든 날, 만든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유일한 문자는 한글이다. 그래서 한글은 소통의 문자”라면서도 “그러나 정작 우리가 처한 현실은 온통 불통의 벽이다. 불통을 극복하는 공감과 소통의 대한민국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대변인도 “민중의 글인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뜻을 깊이 헤아려 누구나 교육받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정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또한 한글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실천에 함께할 것임을 약속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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