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뉴스=최신형 기자] 속전속결이다. 하나의 ‘설(說)’에 불과했던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하 장성택)이 지난 12일 처행됐다. 북한이 장성택에 대한 실각 사실을 공식 발표한 지 나흘 만이다.
북한이 장성택 사형 집행 과정을 ‘속도전’으로 전개하자 한반도 정세도 요동치고 있다. 장성택 숙청에 따른 북한 권력내부 투쟁과 동북아시아 세력재편을 둘러싼 한·중·일의 헤게모니, 미국의 재균형 정책 등이 맞물리자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안갯속 형국이다.
이에 따라 새정부 출범 전부터 ‘한반도신뢰 프로세스’를 대북정책의 핵심으로 내건 박근혜 정부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전부터 전개된 남북 대치국면이 ‘김정은(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영도 체제’의 공고화로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분간 북한발(發) 위기가 남한 체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관측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문제는 장성택 처형에 따른 불안한 한반도 정세가 박근혜 정부 내치와 외치의 출구전략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치 위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장성택 사형 집행’ 이유다. 몇 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장성택 사형의 결정적 이유는 ‘국가전복음모(공화국형법 제60조)’ 행위다.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의 국가전복음모 행위와 관련해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 “만고역적” “반(反)당 반(反)혁명 종파분자” 등의 단어를 쓰며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면서 장성택이 국가전복음모 혐의를 ‘100%’ 시인했다고 밝혔다.
‘장성택 사형집행’ 北, 대남 도발 가능성 있나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이 이례적으로 장성택 체포와 처형의 전 과정을 경마식 보도했다는 점, 둘째 영도체제의 계승 방해 등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을 한 장성택의 죄목을 일일이 나열한 가운데 장성택이 이를 시인했다는 점을 명시한 부분이다.
내부변혁의 중대한 갈림길에 선 김정은 체제가 장성택 포함 그의 추종 세력을 완전히 제거, 김정은 1인 지배체제의 공고화와 더불어 군부 권력층 내부동요 체제를 안정화시키는 ‘일거양득’ 효과를 노린 셈이다.
박근혜 정부를 둘러싼 외치 환경의 핵심 포인트는 이 지점이다. 현재 북한은 권력 2인자였던 장성택을 숙청했다. 북한 군부가 내부권력 투쟁기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대남도발을 감행할 수 있느냐’의 본질적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김정일 위원장이 선친인 김일성이 지난 1994년 사망한 뒤 폐쇄노선을 고수하면서 3년 이상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들어간 터라 이번에도 장성택 추종자들에 대한 처형이 단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북한의 대남도발 가능성은 새누리당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홍문종 사무총장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이) 연말연초에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제2의 천안함, 연평도 포격과 같은 각종 대남도발을 계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해다. 북한의 내정간섭과 국론분열 등으로 남남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인 셈이다.
하지만 이날 국회에서 만난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북한이 장성택 사형으로 내부가 복잡해 (대남도발 등) 외부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많지 않다”면서 “현재 북한이 장성택 숙청 이후 대남 도발위협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없지 않으냐”라고 반문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성택 즉결처형과 관련해 “안보보다는 인권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장성택의 즉결처형은 북한이 가입한 유엔 인권규약 및 결의안에 위배된다”면서 유엔(UN)의 개입을 촉구했다.
근거 없는 한반도 위기론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등 외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의 장성택 처형 속도전이 ‘김정은 체제 권력기반’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징표이나, 김 위원장의 공포통치에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정전체제형 안보를 앞세운 박근혜 정부가 평화체제형 안보로의 대전환을 꾀할 수 있느냐가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인 이유다.
일각에선 북한 개혁개방 이끈 장성택 숙청으로 남북경제협력이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지만, 이 또한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장성택 사형 과정에서▲국가건설감독기구 ▲수도건설 사업체계 ▲지하자원 등을 비판했으나, 초점은 개혁개방 정책의 추진이 아닌 장성택이 김 위원장과 ‘합의 없이’ 또는 ‘거짓 보고’ 한 점에 맞춰 있다.
그간 중국과 좁은 의미의 개방정책을 추진한 북한이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선군정치 대신 당 우위의 체제 전환을 꾀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이 지점과 궤를 같이한다. 거의 모든 공산주의 국가의 체제전환도 이 수순을 따랐다.
특히 북한이 장성택 처형 소식 직후인 이날 오후 개성공단 남북 공동위원회 제4차 회의 개최를 우리 정부에 제안하면서 남북경협의 단절 의사가 없다는 점을 피력,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이런 가운데 장성택 사형 문제가 국내 정치권으로 들어오자 국정원(국가정보원) 개혁 문제로 불똥이 튀었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의)국내파트 대폭 축소나 대공파트 폐지는 북한 추종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긴급사태 발생에 철저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 있다(최경환 원내대표)”라고 한 반면 민주당은 “최근 북한 상황을 이유로 국정원 개혁을 좌절시키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근시안적이고 매우 어리석은 태도(박용진 대변인)”라고 각각 맞섰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이 꽉 막힌 내치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점에서 북한발(發) 이슈로 국정원 개혁특위 등 내치 문제를 돌파할 경우 만만치 않은 대여공세는 물론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내외치가 딜레마에 봉착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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