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법,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법안’의 비정상화
선행학습 금지법,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법안’의 비정상화
  • 연미란 기자
  • 승인 2014.02.19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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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교사들 우려 팽배…“공교육 선행학습 막으려다 사교육 더 키울 것”

▲ 수험생과 학부모가 '2015 대입 재수생 전략설명회'와 '2015년도 대학입시전략설명회'에 각각 참석해 입시전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Newsis

[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 사교육 경감 효과를 위한 ‘선행학습 금지법’이 실제 학교 현장과 거대 사교육 시장의 본질을 살피지 못한 까닭으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 1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이상민 의원과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발의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안’이 선행학습을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통과됐다.

특별법은 초·중·고교 및 대학을 중심으로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넘는 행위 금지 ▲사교육기관의 선행교육 광고 금지 ▲교육과정 범위를 벗어난 입학 전형 금지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이를 위해 ‘시·도교육과정정상화심의위원회’를 설치해 학교의 선행교육·선행교육 유발행위 여부를 평가한다. 규정을 어길 경우 관련 교원 징계, 재정지원 중단 또는 삭감, 학생·학급 감축 등의 중징계 조치가 내려진다.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키고 공교육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사교육 시장을 축소시키겠다는 의미에서 이 법의 취지는 높이 평가할만했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사교육 시장 축소를 전제로 선행학습의 본질은 그대로 둔 채 공교육만 제한하는 법안 내용을 지적나고 나섰다.

도봉구의 한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심서준 씨(29·가명)는 <에브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과 관련해 “사교육 시장은 그대로 두고 학교의 선행만 금지시키는 것”이라고 평가하며 “사교육 시장을 규제할 수 없다면 (선행의 역할을) 공교육이 가져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행교육 금지법의 취지는 사교육비 절감이 가장 큰 목적인데 공교육의 선행 교육 규제로 (교육비가) 줄어들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난해 11월 8일 오후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Newsis

안산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정미연(30·가명) 씨도 이와 관련 “과열된 사교육의 본질은 대입 경쟁”이라며 “학교의 선행 교육이 사라진다 해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학생과 학부모의 의지는 또 다른 사교육을 낳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본질적으로 사교육은 선행학습을 위해서라기보다 다른 학생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데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사교육 시장의 선행학습이 최종적으로는 대학입시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 입시 체제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사교육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선행학습’은 심화학습인가 예습인가?…기준無

정 씨는 “법안에 사용한 ‘선행학습’이라는 단어는 핵심을 비켜간 표현”이라며 ‘선행학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교과 진도에 맞춰 심화학습·예습·선행학습 등을 구분할만한 학교 내부의 기준이 없어, 시험 문제를 낼 때 해당 문항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오답여부를 둘러싸고 학생과 학부모가 문제제기를 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19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전국 초·중·고 교원 386명을 대상으로 ‘선행학습 금지법’과 관련한 설문조사 결과 일선 교사 70% 이상은 사실상 선행학습 여부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힘들다고 답변했다. 또 ‘선행학습 유발 시험문제 여부를 가릴 교육청 또는 학교 차원의 출제 기준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없다’가 72.54%(280명)로 집계됐다.

교총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일선 학교에서 나선형 교육과정을 따르는 교과목의 경우 예습과 선행학습을 구분 짓는 것은 쉽지가 않다”며 “무엇보다 선행학습 문제 출제 여부를 가릴 학교급별, 교과별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사교육 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애초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학원의 선행교육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으나 관련 조항은 ‘선행학습 내용이 포함된 광고 금지’로 대폭 수정됐다. 이를 어겨도 처벌할 만한 조항은 없다.

김무성 교총 대변인은 “수능 체제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에서의 선행교육을 금지하면 불안해진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원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 시민단체 관계자는 “법안 취지에는 동의를 하지만, 특히 선행학습은 학교보다는 학원, 교습소 등 사교육기관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처벌조항 없는 선언적 의미의 광고 금지 법적 조항이 과연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선행학습 금지법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로 TV토론 당시 박 대통령은 “지나친 경쟁, 입시 위주로 변질된 교육을 꿈과 끼를 살려주는 행복교육으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며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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