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이야기, '반도체 소녀'를 만나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반도체 소녀'를 만나다
  • 음지원 기자
  • 승인 2014.11.1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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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뉴스=음지원 기자] 지하철 안에 승객들이 가득했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피로감이 묻어났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역사를 나서자 찬바람이 몸을 에워쌌다. 몇 발자국 걷자 추위도 이내 사그라지는 듯했다. 12일 저녁 기자는 대학로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 연극 <반도체소녀> 공식 포스터.ⓒ문화창작집단 '날'

평일 늦은 저녁이었지만 소극장 앞 매표소에는 <반도체 소녀>를 보러 온 관객들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연령대는 20대부터 40~50대까지 다양했다. 티켓과 연극 포스터속 소녀의 눈빛이 강렬하다. 하얀 마스크를 쓴, 맑은 두 눈으로 이야기를 건네는듯한 눈빛. 소녀가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문화창작집단 '날'의 10주년 기획공연인 <반도체 소녀>가 30일까지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맞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녀의 죽음을 함께 해준 호스피스 정민, 그리고 가족들의 모습도 섬세하게 담겨있다.

이미 2010년 초연을 치른 작품이지만 이번엔 특별히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크라우드 펀딩'은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활용해 자금을 모으는 투자 방식. 극단 '날'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십시일반 모은 금액으로 울산, 안동, 부산에서 순회공연을 마쳤다.

예술가가 세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 문화창작집단 '날'의 최현 대표.ⓒ에브리뉴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하자 자신을 '대한민국의 평범한 노동자'라고 소개하는 최현 대표. 현재 그는 극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무명배우 시절의 고단함을 버텨냈다. 친형인 최철씨와 함께 2004년 창단한 '날'은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의 산물이다. 형은 작품을 쓰고 동생은 무대에 올린다. 극단의 이름 '날'도 형이 지었다. 칼날의 '날', 날것의 '날', 여명의 ‘날'이라는 뜻이다.

극단 ‘날’은 이명박 정부를 풍자한 <삽질>,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한 <리스트> 등 작품의 예술성과 함께 사회적 이슈도 놓치지 않는다. 민감한 사안을 주제로 한 작품을 계속 올리는 이들. 부담은 없었을까?

최현 대표는 진정성을 담아내야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진정성은 결국 진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결코 쉽지않았다고. 그러나 그의 진심은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영혼의 치료를 받았다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말을 듣고 큰 감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연극을 보러와 달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던,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의 부모님들도 공연장에 찾아왔다고 했다. 최현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을 촉구하는 영화인 모임에 참여해 단식을 하며 농성장에 머무르기도 했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모두의 문제다"라는 최현 대표의 말이 뜨겁다. 2010년 초연했던 작품에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여러 사건들이 더해진 이유를 그의 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 연극 <반도체소녀> 한 장면.ⓒ문화창작집단 '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최현 대표는 울산에서의 초연 당시라고 답했다. 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지역 때문인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공연을 관람하러 왔다고 했다. 공연을 보며 우는 관객도 많았다고. 당시 자체적으로 공연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극을 올릴 수 있었다. <반도체 소녀>가 사람들에게 준 '울림'은 두 눈을 통해 흘린 것 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연극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그의 '말'. 부족하지만 잘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는 그의 '말' 속에 절실함이 배여있다. 최현 대표는 사회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작품을 꾸준히 내놓고 싶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마음속에 희망의 작은 씨앗을 심기 바란다는 그의 소망이 소망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물론 그 씨앗이 자랄 수 있게 키우는 것은 관객들의 몫일 것이다.

*<반도체 소녀>는 11월 30일까지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공연. 이번 달 예약은 인터파크와 대학로티켓닷컴에서 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전석 2만원이다. 문의는 02-953-6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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