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사라졌습니다”
[기자수첩]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사라졌습니다”
  • 연미란 기자
  • 승인 2014.12.03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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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대량해고’ 사태에 부쳐
▲ 한 아파트 자동문이 열려 있다.ⓒ연미란 기자

[에브리뉴스=연미란 기자]인격모독을 견디다 못해 분신 사망한 경비원 이 아무개(53) 씨 사건 이후 후폭풍이 거셉니다. 분신 사망 경비원이 근무하던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측은 경비원과 기술직 직원 106명 전원에게 해고 예고 통보를 했습니다. 신현대아파트가 밝힌 이유는 경비노동자를 고용한 업체 인 한국주택시설관리 측과의 계약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재계약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 한국주택시설관리 측도 경비노동자들을 해고했습니다. 일터와 고용주 두곳 모두 그들을 내친 셈입니다.

다만 모든 해고 과정이 이 씨의 분신(11월 7일) 이후 벌어진 일은 아닙니다. 신현대아파트가 한국주택시설관리와의 연장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 시점은 지난 11월 5일. 경비노동자들이 이 사실을 안 시점은 10일. 이들은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19일~20일 차례로 해고 예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내년부터 최저임금 보장 대상자에 경비원이 포함돼 월급을 올려야 하는 데다 분신 사건으로 언론의 집중 포격 등을 받으면서 보복성 해고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타이밍이 좋지 않게 엮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가 지어진 이래 30년간 단 한번도 바뀌지 않은 경비업체가 왜 하필 이 시점에 교체돼야 하는 걸까요. 보복성 해고에 자꾸 무게가 실리는 이유입니다.

경비원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및 환경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제가 사는 아파트로 시선이 옮겨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낯이 익은 경비아저씨 몇 분이 보이지 않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사라진겁니다. 그제야 한달 전쯤 아파트 현관이 자동문으로 교체됐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동마다 있던 한평도채 되지 않던 작은 초소가 없어지고 5개동을 아우르는 통합초소가 생겼습니다. 이 때문에 6명이던 경비 아저씨 중 4분이 일터를 잃었습니다. 동마다 2명씩 남은 경비 아저씨들은 한 데 모여 3평짜리 컨테이너 통합초소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인근 아파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이 하던 일을 자동문이 해주니 인력 감축이 불가피했던 겁니다. 입주민들이 내는 관리비는 조금 늘었습니다.

그런데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아파트 자동문이 제 역할을 하지않고 늘 열려있는 겁니다. 아파트 관리시실에 문의하니 “단지 청소 후에 나는 약품 냄새를 빼기 위해 열어놨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열려있는 몇 곳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자동문의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캐물으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 곳은 여전히 때때로 열려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사는 곳을 포함한 인근 아파트는 경비노동자들이 1~2년 주기로 자주 교체돼 왔습니다. 이유는 혹시 모를 ‘범죄 방지’였습니다. 경비원들과 입주민이 지나치게 친해지면 경계가 허물어지고 결국 범죄로 이어진다는 희한한 논리였습니다.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라니. 미개한 논리라고 생각했지만 금새 잊혀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경비원 분신 사망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대량해고는 ‘돈 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아파트 측과 입주민들이 경비노동자를 그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여겼다면 줄일 수 있는 문제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 모두가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경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인권 문제를 부자들이 사는 곳에서만 발생하는 ‘남의 일’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역과 동네를 불문하고 벌어지는 ‘우리 일’입니다.

얼마 전 집 근처 카페에서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됐습니다. 경비 노동자 한 분이 자신의 실수를 문제 삼는 입주민 때문에 스스로 일을 그만 뒀는데 몇달 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두 사람이 조우(遭遇)했다는 겁니다. 입주민은 자신의 일터에서 점원으로, 경비 노동자는 고객으로.

이번 계기로 나는 어떤지 우리 아파트는 어떤지 한번 들여다 보는 것은 어떨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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