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술에 찌든 황폐한 삶 내려 놓고 ‘희망 탄 일회용 커피’ 천사로 ..
[현장르포] 술에 찌든 황폐한 삶 내려 놓고 ‘희망 탄 일회용 커피’ 천사로 ..
  • 이호준 칼럼니스트
  • 승인 2012.10.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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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손모씨 24시간 밀착취재..노숙인들에게 희망을 배달하는 노숙인 이야기

지난해 7월 20일 코레일은 노숙인 심야노숙금지를 발표했다. 그리고 풍선효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우려한 노숙인 단체와 활동가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같은해 8월 22일 300여명의 노숙인들을 서울역에서 강제 퇴거시켰다. 이에 서울시가 내놓은 노숙인 관련 대책들이 겉돌면서 많은 역효과를 낳았다. 특히 서울역의 노숙인 퇴거 조치로 불똥이 튄 곳은 부산역으로 노숙인들이 30%나 급증하는 등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급기야는 부산역에서도 지난해 11월 18일부터 27일까지 밤11시부터 새벽1시 30분까지 노숙인 출입금지계도기간을 거친 뒤 28일부터 전면적으로 노숙인의 출입을 금지 하겠다는 강력한 대책을 발표했다. 결국 24일 40대 노숙인이 부산 구포동 구포역 인근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뉴스와 함께 퇴거조치가 단행됐다.

이에 부산시가 50명의 노숙인에게 일정기간동안(2~3개월) 임시거처(여관방)를 얻어주는 대책으로 부산역 노숙인 퇴거조치는 철회됐다. 부산역 노숙인들의 24시간을 밀착 취재했다.

일회용커피

지난 12일 새벽4시 50분쯤 실직노숙인조합사무실에서 일회용봉지커피 20개와 녹차 5티백 그리고 종이컵 25개를 챙겨 가방에 담아 든 손모(58)씨가 발을 절뚝거리며 불 밝힌 부산역을 향한다.

지난해 3월부터 노숙을 했다는 손씨는 노숙하기 전 직업은 목수였다. 수상경력 한번 없는 몇 번의 기능대회 출전을 열거하는 모습에서 남다른 애착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노숙하게 된 동기가 술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1985년 나이 30에 해운대에 놀러온 잡지사기자와 만나 결혼해 예쁜 딸을 낳았다. 그러나 2년 만에 이혼을 했는데 기독교가 모태신앙인 부인이 손씨의 음주행위로 인한 성격차이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었다.

“노가다 판 목수 일이라는 게 일 끝나면 으레 모여 술 한 잔씩 하는데 이혼하자고하데요. 그래 편한 대로 해라 했죠. 알고 보니 만나는 남자가 있었더라고요.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중풍에 걸린 어머니와 엄마를 부르며 울어대는 딸아이... 결국 딸아인 엄마에게 보내고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 했어요.”

손씨는 중풍으로 고생하시던 모친이 1992년 사망하자 그나마 하던 목수일도 때려치우고 술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부산역 3층. 손씨가 동전을 넣어야 작동하는 컴퓨터책상위에 가방을 내려놓자 모여드는 노숙인들.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인사를 건네며, 손을 흔들며, 아는 체 너스레를 피우며, 한눈에 읽혀지는 자연스런 나열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을 들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커피 한잔이지만 희망을 담았다는 손씨가 이 일을 시작한지 한 달 쯤 됐다. 실직노숙인조합에 저녁배식봉사를 하러 갔다가 일회용봉지커피가 쌓여있는 박스를 보고 이호준 위원장에게 자청해 시작 한 일이다. 이 위원장은 “후원 들어 온 물품인데 어떻게 나눠줄까 고민했다”며 흔쾌히 허락했다.

부산역 바닥을 배계삼아 잠을 청한 탓인지 추위에 경계의 눈빛을 날카롭게 반짝이던 30여명의 노숙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조잘조잘 입가에 미소가 베인다.

“지난해에 서울역에서 많이 내려왔죠. 살벌했어요. 백주대낮에 술 먹다 병으로 때리질 않나 카터 칼로 밥 먹는 사람 목을 찌르질 않나, 묻지마 폭행은 어떻고요. 걸어가는 사람 뒤에서 돌로 내려치고, 잠자는 사람 병으로 내려치고, 화장실에 있는 사람 머리를 내리치고,.. 다 소통이 안 된 탓이라고 봐요. 그래서 노숙인지원센터에 가서 개인적으로 건의를 했죠. 내가 노숙하는 사람들을 잘 아니까. 커피를 조금 마련해주면 새벽에 나와 타주겠다고. 그런데 자기들이 나와 빵과 우유를 나눠주면서도 묵묵부답이데요. 하여간 요새는 많이들 좋아졌어요. 얼마 전 부산시에서 방 얻어 준 후 남은 약 20~30명의 노숙인들이 커피 한잔이지만 추위를 녹이며 공통의 할 일이 생겼으니까요.”

장애

7시. 노숙인들과 술 먹지 마라, 뭐든 아침 챙겨먹어라, 티격태격 담소를 나누던 손씨가 부산역을 내려와 다시 실직노숙인조합으로 향한다.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자 목수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아예 술로 세월을 보냈죠. 결국 늑골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안보이더라고요. 근데 의사는 독한 약을 많이 먹어 그렇다고 하고 미치겠데요. 결국 1년 6개월만에 퇴원을 했죠.”

손씨는 시각장애 3급 장애인이다. 거기다 다친 다리 수술이 잘못되어 심하게 절뚝거린다. 그때부터 생활보호대상자로 받는 수급비30만원(장애수당포함)으로 해운대구 재송동에서 월세 방 생활을 했다. 하지만 삶에 의미를 잃어버린 매일 매일을 술로 보냈다. 결국 옆방 이웃의 괴롭힘에 못 이겨 10년 월셋방 생활을 청산했다고 한다.

“옆 방 사는 형님이 있었는데 상습적으로 내 수급비를 가로챘어요. 한 8년을 그러더니 2년 전부터는 술만 먹으면 밤 늦게 찾아와 사람을 못살게 괴롭히고 아예 방새까지 가로 채더라고요. 그러고도 미안하단소리 한번 안 하 길래 대판 싸웠죠. 112도 오고, 119도 오고... 아무튼 대단했습니다.”

노숙

지난해 3월에 집을 나온 손씨는 춥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무작정 부산역으로 왔다. 그리고 여러 노숙인단체를 들락거리며 노숙생활을 했다. “노숙인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먹고 자는 것이 전체인 것 마냥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고요. 진짜 필요한 것은 무작정 욕하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이죠. 의미 없는 온정주의가 서로에게 불신과 오해를 갖게 한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도 술의 자제하지 못했던 손씨는 생활보호대상자수급 받는 날을 노린 묻지마 폭행에 표적이 되어 7개월 동안을 수급비를 빼앗겼다. 결국 보다 못한 친구 소개로 부산역건너편에 달셋방(17만 원)을 수급 받는 날 주기로 하고 얻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지마 폭행을 가하고 수급비를 빼앗아간 범인을 잡았는데 용서해줬다.

“나하고 똑같은 장애인이데요. 부산역에서 본 앞면도 있고 부산역에서 알게 된 친구 도움으로 방을 얻고 며칠 술을 안 먹으니까.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 그냥 용서해줬습니다. 그때부터 자원봉사를 해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술로 보냈던 인생이었는데 장애를 갖고 무일푼으로 거리에 나오고서야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을 알게 된거죠.”

그렇게 아침을 보낸 손씨는 11시쯤 급식단체에 가 점심을 먹기 위해 실직노숙인조합을 나섰다.

“3년 전인가 딸이 찾아 왔더라고요.”

손씨는 시력을 잃어 모든 사물이 흐릿하게 보임에도 자갈치 시작에서 생선 궤짝 짜는 일을 하며 밤에는 배을 경비하는 도방을 봤다.

“그날도 생선 궤짝을 짜며 마신 술에 취해 누어있는데 생판 모르는 아가씨가 와 아버지하고 부르데요. 나는 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쌍욕을 하며 외면했는데 울며 뒤돌아서는 모습이 내 딸이구나 싶데요.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지금 28살이 됐겠네...”

손씨에게 유일한 가족인 딸과의 상봉도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무료급식소를 전전하며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는데 화, 목, 토요일은 실직노숙인조합에서 급식을 돕고 해결합니다. 아무튼 노숙인 문제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하겠다고 덤비니까 문제인 것 같아요. 양산될 수밖에 없는 사회현상이잖아요. 그렇다면 건전한문화를 형성해 함께 할 생각을 해야죠. 그런데 서울역처럼 여기서 저기로 마치 폭탄을 돌리듯 쫓는다면 언젠가 그 폭탄을 돌려받지 않겠습니까. 2007년 클린부산으로 쫓았던 노숙이니 2011년 서울역을 돌아 다시 돌아온 걸 보면 알 수 있잖아요.”

그렇게 부산직역에서 부산역으로 실직노숙인조합을 돌며 거리 노숙인들의 친구로, 형으로, 신세 한탄을 들어주고 타이르더니 오후 7시가 되자 숙소인 달셋방으로로 귀가 했다.

“내가 살아봐야 얼마를 살겠습니까. 부귀도 영화도 싫고 이대로 어려운 사람들 사정 들어주며 살다가 죽었으면 싶습니다. 다만 딸을 그렇게 보낸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합니다.”

누가 장애인이 된 손씨 어깨위에 노숙이라는 견장을 달아준 걸까. 아무도 그런 사람은 없었고 다만 죽지 못해 선택 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손씨가 선택한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해주지 않았다. 색깔이 다르다고 손가락질하고 욕하며 한쪽으로 치우는 것에 열중했을 뿐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대통령이 되고, 국회위원이 되고, 재벌이 되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떠 벌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회란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제도 속에서 선택한 권리가 철저하게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노숙일지라도, 그래야 손씨가 새벽마다 커피 잔에 타 돌리는 희망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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