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삼성 반도체 피해유가족 영화 주인공 된 사연
'또 하나의 가족', 삼성 반도체 피해유가족 영화 주인공 된 사연
  • 우종한 기자
  • 승인 2013.03.19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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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故 황유미씨 부친 황상기씨

▲ 故 황유미씨와 함께. @반올림
[에브리뉴스= 우종한 기자] “또래들은 대학 가고 그러는데 (유미는)삼성 들어가서 일한다고 하니까 대견하고 그랬어요”

지난 3월 6일은 황상기씨가 딸(故 황유미)을 먼저 보낸지 꼭 6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딸을 잃기 전까지 속초에서 택시를 몰며 지내는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자 딸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맞서 딸의 사망원인을 놓고 수 년째 싸우고 있다.

이런 황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이 오랜 기다림 끝에 제작에 들어갔다. 민감한 소재인 만큼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진은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제작두레를 통해 작년 1억 여원을 모금한데 이어 올해 다시 모금 활동에 나섰다.  

제작진은 지난 14일 을지로의 한 가게에서 영화 제작비 모금을 위한 일일주점 행사를 열었다. 실제 주인공인 황상기 씨 역시 행사 참석을 위해 속초에서 서울로 올라와 있었다.

이에 행사가 열리기 전 황씨를 직접 만나 유미씨와 삼성,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전 사진에서 본 황씨의 표정은 항상 어두뒀다. 매체에서 원하는 표정을 편집해 내보낸 것이겠지만, 피해 유가족이라는 점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웃는 것도 실례가 될까. 이 질문은 무례해 보일까. 자체 심의를 거친 뒤 무거운 걸음으로 약속장소로 나갔다. 하지만 을지로입구역에서 만난 황씨는 사진과 달리 먼저 웃음을 비치며 오히려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언제 올라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오전 일 끝내고 오후에 막 올라왔어요. 반올림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 번씩 올라옵니다.

▲아직 택시일은 하고 계신가요?

-네, 일은 계속 하고 있어요.  요즈음은 손님도 없네요.

▲‘삼성’에서는 그 이후 별 다른 말이 없던가요.

-2010년 6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산재 인정 판결이 나온 후로는 잘 안오네요. 그 전에는 (삼성)인사과 사람이 계속 들락거렸어요. 한번은 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노크도 없이 방문이 훌쩍 열리는 겁니다. 인사과 사람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쑥 들어오는데, 놀라서 나가라고 했죠. 

 

▲노크도 없이?

-그 사람들은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문제가 심각해요. 아주 심각해. 삼성도 잘못이 있지만 정부 잘못도 크다고 생각해요. 환경문제는 철저한 검증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해요. 미워서 벌을 주자는 게 아니라 재발을 막고 안전을 위하자는 거예요. 노동자들은 암에 걸려 죽어 가는데도, 환경에 대한 교육이 없으니, 심각성을 전혀 모르죠. 한계라는 벽에 딱 부딪히는 거예요.  

 

▲ 함께 동행한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양삼봉 사무국장(우측)과 영화 예고 영상에 등장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다.

▲3월 6일이 유미씨 기일이었죠.

-우리 유미가 백혈병에 걸린 해가 2005년이었는데, 처음에는 병에만 신경 쓰느라 산재 생각도 못했어요. 산재 신청해달라고 하면 펄쩍 뛰고 그랬으니...처음에는 의심만 갖고 삼성과 싸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8년이 흘렀지만 삼성은 여전히 저에게 한마디의 진실도 말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려고만 하고 있어요. 지금이라도 삼성에 바라는 점은 더 많은 환자가 생기기 전에 진실을 말했으면 좋겠어요. 삼성의 맨얼굴이 어떤 건지 꼭 보고 싶어요.

▲유미씨가 일했던 작업장에는 가 보신 적 있으세요.

-유미가 병에 걸린 게 2005년 6월초였고, 2007년 6월 1일 산재 신청을 했어요. 좀 늦었죠. 그래서 2007년 9월 1일 역학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했어요.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한 역학조사였어요. 사고가 난 시점에서 2년이 훨씬 넘어 시작한 역학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유미는 작업장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칸막이 없이 기계만 있는 곳에서 마스크를 끼고 일하는데 너무 더워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가 작업장에게 몇 번이나 혼났다고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9월 역학조사 때 참관인 자격으로 작업장에 들어갔더니 유미가 말한 것과 다른 거예요. 서늘한 공기에 칸막이 시설까지 다 갖춰진 곳이었어요. 2년 사이 보수를 한 거죠. 이렇게 개선을 하고 역학조사를 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가서 따졌어요. 그렇게 한바탕 치르고 나오니 삼성 직원이 회의실 같은 곳으로 조용히 부르더라구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만히 있으면 10억쯤 해드리겠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리고는 “밖에서는 사회단체 사람과는 만나지 말아 달라”는 말도 했어요. 이 사람들이 허튼 수작을 하는구나 싶어 그냥 아무말도 안했어요.

▲업무와 백혈병의 상관관계를 찾는 조사였겠군요.

-그랬어요. 그런데 역학조사 결과를 11월에 발표했어요. 상식적으로 두 달 만에 역학조사 할 수가 없거든요. 제대로 조사를 하려면 몇 년씩 시간을 들여 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조사는 9월에 시작해 11월에 끝이 났어요. 그러고는 개인적 질병이고, 업무와 백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발표를 하는 거예요. 전 완전 거짓말이라고 했어요. 만약 역학조사를 했다면 과정이나 수치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공개를 해야 하는데,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면서 공개를 안해주더라구요. 산업안전전문의를 역학조사에 포함시켜 달라고도 말했는데 그런 요청들은 다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한 거면 공정한 게 아니잖아요.

▲ 제작두레 회원들이 보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김태윤 감독. 김 감독은 이날 제작비 모금 행사에서"시나리오를 쓰면서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는데 여기까지 오게됐다. 꼭 시사회 때 뵙겠다"며 제작의지를 드러냈다.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원래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었지만 유미가 든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싸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삼성에서 백혈병 걸린 사람이 5~6명이었어요. 워낙 적어 긴가민가했죠. 처음에는 이 사람들도 개인적 질병이라 생각했고, 삼성 대변인도 발암물질은 쓰지도 않고 취급도 안한다고 얘기했으니...그런데 지금 피해자는 180여명 정도로 알고 있어요. 이제 너무 많은 사람이 신고하니 무서운 생각도 들더라구요. 내 생각인데 아직도 암에 걸린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만약 역학조사 발표대로 문제가 없다면 환자도 더 이상 안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 덮어 두고 아니라고만 하면 누가 믿겠어요?

▲유미씨와 본인의 이야기가 영화화 되는데, 망설임은 없으셨나요?

-망설임 전혀 없었어요. 누군가는 고쳐야 하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김 감독(김태윤)님의 경우 2011년 8월쯤에 만났어요. 감독님이 기사 같은 걸 보고 속초까지 오셨더라구요. 기사를 보고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 싶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시더라구요. 감독님 표정이 진지해 보여서, 영화를 맡기면 잘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잘 이해시킬 것 같아서 허락하게 됐어요.

▲ 한 제작두레 회원의 메시지.

▲배우 박철민씨가 황상기씨 역할을 맡으셨죠.

-제작비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준비됐다고 들었어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게 제작두레 영상을 보여줬더니 본 사람들은 전부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박철민(극 중 상구)씨와는 몇 번이나 만났어요. 박철민씨 딸이 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는 이건 무조건 하라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박철민씨도 읽어본 뒤에 이걸 안하면 안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구요. 용기를 낸 배우들에게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시나리오 작업 때 유미씨의 이야기가 많이 오갔을텐데.

-왜 안 슬프겠어요. 지금 영상(제작두레 영상)도 유미가 죽기 며칠 전에 찍은 거에요. 힘도 없어 제가 살살 설득했어요. 유미야 우리가 억울하게 일을 당하고 있는데 니가 힘들더라도 나와서 이야기를 해줘야만 세상에 억울한 일이 밝혀지지 않겠냐면서요. 그런데 아이가 힘도 없고 목에 가래가 끌어 콜록대는데 얘기를 못하는 거예요. 너무 힘이 들어가서...그런 거 생각하면...마음 아프죠.

▲많은 걸 알고 계신데 백혈병과 반도체에 대한 정보는 따로 공부하신 건가요.

-(동석한 양삼봉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이 “황 선생님은 노무사를 해도 될 정도”라고 거들었다)속초서 택시 운전만 하다 보니 몰랐는데 나와서 싸우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반올림’에서 활동하시는 보건전문의와 노동안전보건소 상근 직원분들과 대화하다보니 저절로 배우게 됐어요. 근데 이건 사실 그 분들이 가르쳐 준 게 아니라 삼성이 가르쳐 준거예요.  

 

▲ 반올림 회원들과 함께. 황상기씨는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여러분들의 시선으로 삼성의 잘못을 고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두 가지쯤 있어요. 첫째는 정부에서 노동자를 방치 하지 말았으면 해요. 산재보장법을 고쳐 노동자가 병들어도 가족이 해체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화학약품을 많이 쓰는 업장에는 지금보다 더 강화된 관리 기준을 두고 단속하면 안전한 작업장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역학조사를 할 때는 피해자가 인정할 수 있는 산업안전전문의가 참석해야 하고 (미리)준비된 작업장이 아닌 불시에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둘째는 삼성도 노동자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지 말았으면 해요.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 할 수 있게 하고, 또 서로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준다면 더 안전하고 탄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회사가 될 거라 믿어요. 큰 기업이면 큰 기업답게, 큰 마음으로, 사회적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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